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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올 때마다 도전해요”[이다도시 교수 인터뷰]
권나혜 기자  |  smpknh86@sm.ac.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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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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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방송연예인, 사업가, 두 아이의 엄마, 한 집안의 가장 등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다도시 교수. 1991년 한국에 온 이다도시(Ida Daussy Noelle Danielle)는 24년간 변화한 한국 사회의 모습 중 여자들의 사회 진출 증가가 가장 흥미롭다고 한다. 또,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숙명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 <사진=이다도시 교수 제공>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본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전임교수 이다도시입니다. 현재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인 동시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또 세계적인 기업의 외국인 CEO, 외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죠.

주로 어떤 내용의 강의를 하나요.

최근 대한민국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의 역사, 사회에 대해 궁금해 해요. 특히, 주재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지예요. 한국 회사의 기업 분위기에 관심이 많아요.

전, 그들에게 한국의 문화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을 알려주죠. 최근 ‘토탈’이라는 회사 주재원들,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어요.

많은 일을 하고 계신데 힘들지 않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해내는 건 힘들지 않아요. 무엇보다 지금 매순간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모든 게 제 마음에 들어서 지금 이 순간이 변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굳이, 더 하고 싶은 일을 꼽는다면 박사 공부를 준비할까 생각 중이긴 해요.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낯선 땅 한국에서 살고 계신데요.

매일 아이들 얼굴을 보면 한국이 보여요. 이제 제게 한국은 또 다른 국적이라고 생각해요. 어디가든 저를 프랑스 한국 여자 혹은 한국 프랑스 여자라고 소개해요.

물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정이 들었죠. 이제는 다른 곳에 가서 살아도 프랑스와 한국은 영원히 제 고향이에요. 그리고 사실 점심메뉴로도 김밥을 가장 좋아해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한국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썼죠. 그 덕분인지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어요.

대신 프랑스식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주고 있어요. 아이들을 최소한으로 도와줄 뿐 제가 어떤 것도 대신 해주지는 않아요. 방 정리, 제가 절대 해주지 않아요. 그리고 전 아이들에게 숙제를 할 것을 요구하지 않죠. 숙제를 하지 않아서 낮은 점수를 받는 건 제가 아니라 아이들이거든요.
물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제가 대신 아이들의 인생을 살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 프랑스의 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숙명인을 가르칠 때도 이런 교육 방식을 이용하나요.

가끔 제게 ‘이 단어 번역 좀 해주세요’ ‘이 문장 좀 해석해주세요’ 부탁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걸어다니는 사전이 아니에요. 한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물어볼 때 절대 그 자리에서 바로 번역을 해주지 않아요. 대신 조금 더 쉬운 단어로 설명을 해주거나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죠. 제가 대신 공부해 줄 수 없으니까요. 특히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스스로 욕심을 내서 도전하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다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어떤 방법을 추천하나요.

회화를 강력하게 추천해요. 언어가 서툴러도 회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거든요.
그리고 부족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반드시 보충 수업을 받아야 해요. 저도 마흔이 넘는 나이인데도 5년 전까지만 해도 지속적으로 한국어 보충 수업에 참여했거든요. 보충 수업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자신의 언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 든다면 참여해야 해요. 비로소 그 때, 배울 자세가 준비됐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도전을 했어요. 프랑스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있었죠. 특히 대한민국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생 시절, 잠시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기회가 된다면 대한민국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다짐했죠. 곧 기회가 왔죠. 프랑스에서 다니던 대학교에서 연세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자리가 있다며 제게 알려줬어요.

생각해보면 당시 같은 20대에게 수업을 하는 자리라 무서울 수 있었죠. 하지만 20대 때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죠. 한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 줄은 몰랐어요.

방송활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연세대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EBS에서 전화가 왔죠. 불어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한데 혹시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물론 흥분되고 신났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죠. 방송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한다고 했죠. 만약 그때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공중파 방송에 나오지 못 했겠죠.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

젊음은 좋았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여유롭거나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았을 때였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되고 막막했죠.

프랑스의 한 지방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녔는데 여름방학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필수였어요. 냉장고에 물건을 넣는 정말 단순한 노동에서 고위공무원 비서로 인턴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만들었죠. 그러면서 어려운 일을 많이 했어요. 많이 배우고 재미도 있었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 중에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항상 달을 따기 위해 노력해라. 실패하더라도 별 한 두 개라도 딸 수 있으니까” 두려워도 도전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실패하더라도 무엇인가는 반드시 얻거든요.

그리고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항상 아이를 갖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아이가 있어서 오히려 제게 힘이 됐죠.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91년도의  한국사회는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였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학생들만 봐도 적극적이고 자신의 꿈을 위해 많이 노력하죠.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아져 아이를 책임지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죠. 하지만 엄마가 되는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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