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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없었다
정서빈 기자  |  smpjsb8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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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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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격변의 시대를 몸소 부딪치며 살아온 우리시대 아버지. 그때 그 시절,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언제나 가족을 위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들. 이는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 영화의 내용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아버지에겐 가족을 위한 삶이 당연했을까. 더 나아가 왜 남성들에겐 남성다움이 당연한 것이 됐을까.

◆ 권리를 찾아나선 여성들
일반적으로 성 고정관념을 생각하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떠올린다. 특히 ‘여성다움’은 여성을 육아나 가사노동에만 전념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사회화된 노동이나 정치활동영역에 해당하는 사회 내 공적 영역과는 거리를 둔 채 가정 내에서 진행되는 사회적 재생산 기능만을 수행했다. 여기서 사회적 재생산 기능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심신의 피로를 풀고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가정의 역할을 말한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서양의 부르주아 계층 여성들이 대학교육에 참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 내 공적 영역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성학과 여성운동이 등장했다. 여성이 스스로 여성이라는 성에 대해 자각하고 시민(citizen)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남성과 함께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적 역할을 얻게 됐다. 즉, 여성학이 주장한 것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닌 여성의 ‘주체성’이었다.

◆ 남성다움에 갇힌 남성들
남성도 예외는 아니다. 성 고정관념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된다. 여성다움이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했던 것처럼 남성은 지배적이고 강압적인 ‘남성성’에 억압당해 왔다. 남성이 기득권의 입장에 있다는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이 가려졌던 것이다. 실제로 남성들은 남성성에 대한 외부적 압박으로 상당한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에 본교 정치외교학과 이화영 교수는 “사회가 남성들을 남성다움이라는 말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맨 콤플렉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슈퍼맨 콤플렉스란 남성이라면 마땅히 모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아버지들은 항상 이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서 가정부양의 책임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들은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가정 내,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남성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는다. 이외에도 ‘사내대장부 콤플렉스’가 있다. 이는 남성은 ‘성공한 남자’ ‘대범한 남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희생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사회적 남성성에 맞추려 남성이 스스로를 바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남성들이 ‘남성성’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성과  맞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인형을 좋아하는 남자도 있고, 여자보다 더 섬세한 남자도 있다”며 그들이 남성성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 서강대학교 교육문화학과 정유성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정 교수는 “남성들도 개인마다 차이가 존재한다”며 “자신의 본모습을 억누르고 사회적 남성성에 맞춰 행동하는 것은 자기 파괴에 가깝다”고 말했다.

   
 

◆ 남성, 목소리를 내다
‘남성연구’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등장했다.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남성의 이미지로부터의 탈피가 남성연구의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개인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근래 남성연구는 섹슈얼리티 담론 외에도 육아나 가사에 대한 남성들의 참여부터 부성의 회복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남성연구의 목표는 바로 ‘남녀평등’과 ‘인간의 주체성 확립’이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의 위치에 반기를 들었듯 남성도 지배적이고 강압적인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남성연구의 핵심 이론은 남성에게 강요되는 성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이라 말했다. 덧붙여 그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제한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전근대적 봉건사회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나 역할이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연구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진 학문도 등장했다. 바로 ‘남성학’이다. 한국에 남성연구가 소개된 건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부터다. 당시의 남성학은 ‘아버지’의 존재에 초점을 맞춰 발전했다. ‘사실 우리 아버지들도 불쌍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성학은 단순히 학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운동’이나 ‘좋은 아버지 운동’으로 나아갔다. 이 운동들은 ‘가정과 이웃집의 안전을 지키는 아버지’라는 표어를 내세웠다. 원만한 가정을 유지하고 이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학습하는 가족답사, 전국 아버지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권위적인 이미지가 약화됐고 이는 근대의 젊은 남성들의 가정적인 모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학은 분명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남녀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남성학은 남성연구와 동일하지만 남성학이 주장하는 평등은 ‘표면적 평등’에 그치기 때문이다. 표면적 평등이란 여성과 남성에게 제도적으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투명한 벽’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인구의 반이 여성인 사회에서 여성이 사회 내 공적영역에 진출하는 비율이 20%도 채 되지 않는다”며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은 미흡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 교수는 “남성학이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은 우리사회가 ‘기울어진 추’임을 간과한 표면적인 평등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남성학은 남성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남성연구는 남성을 사회적 남성성에 억압당한 이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남성학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 교수는 “남성학은 잃어버린 남성의 권리를 되찾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학문
남성연구와 여성학은 겉보기엔 상반된 학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학문의 근본적인 목표는 동일하다. 바로 인간의 주체성, 즉 ‘자유로움’이다. 남성연구는 사회적 남성성에 억압받는 남성들을 주목한다.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남성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여성학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운동은 ‘여성스러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남성연구와 여성학은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성에 얽매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남성연구와 여성학을 두고 이 교수는 인간의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이 교수는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선호의 차이는 남녀의 차이가 아닌 개인의 차이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세 개의 스펙트럼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100개의 스펙트럼에서 하나를 고르는 자유는 다르다”며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개개인에게 보다 넓은 선택의 스펙트럼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개인의 선호에 대해 성 고정관념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며 “그 모두를 개개인의 차이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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