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계산대 직원에서부터 분신자살을 시도한 어느 경비원의 이야기까지. 우리 주변의 감정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다룬 한 연재 기사를 보았다. 사회에서 ‘을’로 살아가야 하는 그분들의 삶에 마음이 아팠다. 요즘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 <미생> 역시 주인공 ‘장그래’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을’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드라마 <미생> 속 장면들은 현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건 아니었다.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씁쓸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드라마 속 그의 고충은 곧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내 친구, 얼마 전 입사한 내 친구 언니의 모습이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기막힌 일들이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니 참 서글펐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했던 건 이러한 문제가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이 꽤나 익숙할 만큼 이에 대해 꼬집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또한 나와 친구처럼, 아마 거의 모든 이들이 자신이 보고 들은 혹은 직접 맞닥뜨린 우리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열을 내며 토로하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극 중에서 남성 직원이 셋째 아이를 가졌다니까 애국자라고 추켜세우고, 같은 상황의 여직원에 대해서는 아예 대놓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기겁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 직원들의 인식조차 이처럼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니. 더군다나 그들도 누군가의 ‘을’로서 사회의 부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너무나 견고한 ‘갑’과 ‘을’의 구조가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갑-을 구조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요, 언제나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탓일 것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예컨대 계산대 직원들은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들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선 ‘갑’에게 ‘무조건’ 맞춰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이 불편하게 느끼는 ‘을’로서의 설움은 곱씹고, ‘갑’으로서의 횡포는 돌이켜보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갑-을 관계를 끊고자 한다면 우리부터 누군가의 ‘갑’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나 하나 잘 살기에도 바쁜 사회라지만, 이것이 결국 내가 더 잘 살아가는 데에도 보탬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주영 (한국어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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