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던 오전, 고요한 적막을 깨는 이들이 등장했다. 바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었다. 공현과 호야(활동명) 씨는 이 모임의 회원이다. 그들이 투명가방끈 모임에 참여하게 된 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부터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학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본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공 현 - 서울대 자퇴생 (27세·남)
올해로 스물일곱, 공현 씨는 남보다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한다. 느직한 오전 9시, 또래들은 직장에서 업무를 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그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다. 어젯밤 늦게까지 활동하는 단체에서 발간하는 신문 원고를 수정한 탓이다. “요즘은 할 일이 너무 많아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해요” 최근 공현 씨는 청소년 인권 단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 교육을 진행한다. 이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칼럼을 싣기도 한다. 그의 하루는 오늘도 바쁘게 돌아간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국사회의 학벌주의나 대학입시제도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 했지만 주위 어른들의 권유에 마음을 바꿨다. 명문대 학생의 발언이 사회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말 때문이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때 그는 수업을 들으며 흥미를 가진 적도 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는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누구나 꿈꾸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그는 행복보다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서울대를 졸업한다고 세상을 바꿀 힘이 생길 것 같진 않았어요” 그가 대학을 자퇴하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그는 확고했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것, 제가 더 우선시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그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의 가치관이 아니라 단지 대학 졸업장유무의 차이 뿐이니 말이다. 다만 학자금 대출이 천만 원을 넘겨 지금쯤 빚쟁이가 돼 있을 거라는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현재, 그는 투명가방끈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가끔 놀라기도 한다. 7년 전만 해도 이런 단체에서 활동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대학진학은 당연했고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가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전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선택사항이라는 것이다. “대학 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대학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해요”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에 가야하고 선생님이 되려면 사범대학에 가야하는 것처럼 분명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뤄질 수 있는 학문적 탐구가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세상을 향해 외친다. 대학 진학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 호 야 - 대학진학 거부 (23세·여)
“제 인생에서 대학은 당연한 거였어요” 호야 씨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그녀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갑작스러웠다. 고3 시절, 지원했던 모든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녀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제 그녀 앞에는 두 가지 선택권이 놓여있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하거나 아예 대학을 가지 않거나. 주변에서는 1년만 참고 공부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1년이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내린 결정은 ‘대학 거부’였다.

물론 3년 동안 밤을 지새우며 공부한 것이 허무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은 오랜 시간 꿈꿔 온 교사라는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소수가 된다는 두려움 또한 그녀를 괴롭혔다. 전 국민의 85%가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거부는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했다.

하지만 대학을 거부했음에도 그녀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를 따라다녔던 고민을 해결한 것이 그 첫 번째다. 호야 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입시 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대학 입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큰 고민이었다. 대학 거부는 이로부터 그녀를 해방시켰다. 그녀는 대학 거부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또, 그녀는 인생에 특별한 의미를 찾았다. 대학진학을 거부한 이후 투명가방끈 모임이나 인권교육 활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해볼 수 있다는 게 제게 큰 의미예요”

그는 이제 대학생들과도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대학을 거부한 이들과 대학생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차이가 언젠가 같은 교실에서 같은 옷을 입고 떠들던 ‘우리’를 Y자처럼 벌려놓고 있다. 그녀는 바란다. 대학생과 대학 거부자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기를. “서로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대학이라는 벽은 허물어지고 서로의 생각이 자유롭게 공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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