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을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던 길이었다. 한 할머니께서 손자 손녀를 데리고 버스에 오르셨는데, 뒤쪽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는 바람에 아이들 차비는 현금으로 지불해야만 했다. 기사님이 다인승 처리를 해주시면 그때 앞쪽에 카드를 대야 하는 건데. 기사님은 답답하다는 듯 조금은 퉁명스럽게 할머니가 잘못하셨으니 아이들 요금은 현금으로 얼마 얼마를 내시라, 하셨다. 할머니가 크게 망신을 당하신 것도, 기사님이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짜증을 내신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버스에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씀하셔야 했나, 싶어서였다.

그 기사님도 할머니께 말을 ‘톡’ 쏘아 붙이고 나서 조금은 후회하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툭툭 말하고 나서 혹은 말하는 그 순간에 ‘아, 너무했나?’ 하는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나중에라도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라며 사과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 다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사이에서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하면 우리는 그 대상으로 가족을 먼저 떠올리지만, 어쩌면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을 대할 때 가장 ‘말조심’을 덜하게 되는지 모른다.

요즈음에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말’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한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윗사람이나 동료로부터 인정받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소리다. 나도 교수님이나 어른들께 말씀을 드릴 일이 있으면 ‘예쁜’ 표정과 말투, ‘예쁜’ 말들에 신경을 쓴다. 메일을 보낼 때에도 두 번 세 번 살핀다. 대외활동이나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도 아마 누구나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 보이도록 노력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예쁜 말씨를 택해 쓰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고 전략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은 ‘포장’과는 분명 다르다는 점이다.

버스 기사님을 꼬집어 비난하려거나, 글을 읽게 될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려는 건 정말, 결코 아니다. 다만 가끔씩 이렇게, 어떤 때에는 나 자신부터도 ‘말’을 ‘포장’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느낄 때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말’은 우리 마음에서 비롯하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아차,’ 하면서도 ‘포장’이 덜 되어 나타날 수 있다. 예쁘게 포장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김주영(한국어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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