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팅, 성폭력 등의 범죄에 노출돼‥평생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

아버지가 지진으로 죽은 것을 본 남자아이는 쇼크에 걸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버지의 문신만은 기억하고 있다. 동생의 기억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의 누나인 타케코는 아버지와 같은 문신을 새기려고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문신을 새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타케코는 그 후 남성처럼 지내기 시작한다. 한편 타케코를 사랑하던 9살 여자아이 샤오뤼는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10년을 살아간다. 시간이 흐른 뒤 샤오뤼는 타투이스트이자 동성애자인 타케코와 또 한 번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제9회 서울여성영화제에 출품한 ‘스파이더 릴리’ 내용이다.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제9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는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과 같은 성적소수자들을 다루는 섹션이 독립적으로 마련됐다. 그동안 숨겨져 왔던 퀴어, 즉 성적소수자가 영화 코드로 급부상할 만큼 부각되고 있다.


성적소수자사전에 따르면 퀴어(queer)는 사전적 의미로 ‘이상한, 기묘한, 괴상한’의 뜻이다.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됐던 퀴어는 1980년대 동성애 운동가들에 의해 의미가 확대됐다. 최근에는 동성애자를 비롯해 이성애 제도에서 소외된 성적소수자를 일컫는다.

성적소수자가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게 된 때는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탤런트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며 커밍아웃을 하자 암묵적으로 덮어뒀던 성적소수자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왔고, 탤런트 당사자의 모습은 한동안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한국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 스타가 방송계에 나타나면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적소수자의 이미지를 활용해 상품화시키는 등 편견을 고정화 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성적소수자는 사회학적으로 따져볼 때 인구의 약 5%로 추산된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지난 2005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상담한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나이 파악이 불가능했던 217명을 제외한 467명 중 20대는 204명(43.7%), 10대는 183명(39.2%)으로 나타났다. 10대와 20대가 82.9%를 차지할 만큼 그들은 성정체성을 깨닫고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을 비롯해 젊은 세대에서 성적소수자가 늘고 있지만 그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다.

성적소수자들은 협박을 통한 금품 갈취 및 성폭력, 스토킹과 같은 범죄에 노출돼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 피해를 입어도 타인에 의해 자신이 성적소수자임이 폭로되는 ‘아웃팅’ 위협을 당하거나 법적 대응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게 될 것을 우려해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는 “언론을 통해 동성애자 이미지가 드러나고 겉으로 성적소수자의 인권이 인정되며 살기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은 어렵다.”며 성적소수자가 평생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위장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성적소수자를 향해 쏟아지는 폭언과 악성 루머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측은 동성애를 에이즈의 주범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게재하거나 문란하고 변태적 성행위로 묘사되기도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밝혔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무지가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모든 초ㆍ중등 성교육 프로그램 및 교안 내용에서 양성평등의 범위를 성의 다양성의 범위로 인정하는 교안을 마련하고 있다. 세부적인 교육방침과 보호자 서신을 마련하면서 다문화 가정 뿐 아니라 ‘인간존엄성과 소수자 보호’ 등의 항목으로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권 교육을 해나갈 계획이다.

 
교육 뿐 아니라 성적소수자의 활동도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매년 국내에서 성적소수자를 위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면서 대중 곁으로 가깝게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성적소수자 운동이 법적인권운동으로 전환되며, 동성애단체 아카는 7년에 걸친 움직임 끝에 1997년 동성애자가 사법제도를 통해 최초로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미국 샌프라시스코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데 이어 국내에서는 지난 해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 신청이 사법사상 처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회적으로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의 폭을 좁히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볼 수 있듯 성적소수자들 역시 성적존엄성과 가치를 보장받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4항에도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에 성적 지향 항목이 포함된 것처럼 그들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만난 대학생 소유빈(21ㆍ여) 씨가 “성적소수자들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이 상업적인 영화 못지않게 작품성을 갖고 스케일이 크게 나온 것은 의미있다.”고 했던 것처럼 그들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의 폭을 좁히려는 사회의 법적 구제, 교육과 함께 그들을 위한 움직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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