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토)에 열린 마사회 규탄 용산 주민 문화제에 참가한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학우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 1호선 남영역, 그곳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엔 용산이 있다.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이지만 용산에 가는 이들을 찾기란 어렵다. 가끔 전자제품을 사러 전자랜드에 간다거나 멀리 놀러가기 어려운 공강 시간에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정도다. 우리에게 가깝지만 동시에 멀기도 한 용산, 지금 그곳이 떠들썩하다.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중·고등학생들의 손에는 연필이 아닌 시위 피켓이 들려있다. 도대체 이웃 마을 용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거리로 나온 용산구 주민들
지난 13일(토) 저녁 7시, 용산을 찾았다. 여느 때와 달리 용산 전자랜드 근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을 촉구하는 ‘용산 주민 문화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도롯가에는 경찰 기동대 버스 3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그 옆으로 경찰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위치한 마사회 용산 지점. 전국 최대 규모의 화상경마장이 입점해 있는 건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화상경마장은 지상 18층, 지하 7층, 총 25층 규모다. 문화제가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건물 앞 인도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맨 뒤에 서서 문화제를 지켜보는 주민들도 있었다. ‘화상경마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손수건을 목에 묶은 주민들은 문화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꼬마아이부터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까지 다들 한 자리씩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똘똘 뭉친 주민들, 그들이 주말 저녁에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 용산 주민과 마사회 간의 대립
사건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5월, 용산역 근처에 있던 화상경마장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화상경마장 인근에는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총 7곳의 교육기관이 위치해 있다. 주민들은 이를 근거로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이전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마사회 측은 학교보건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학교보건법 제5조에 따르면 학습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 경계선이나 학교설립예정지 경계선으로부터 200m를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구역에 경마장을 포함한 사행행위장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다. 화상경마장에서 가장 가까운 성심 여중고는 235m 거리에 있다. 마사회 측은 법적 기준을 준수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그들은 “학교 교정에서 화상경마장이 훤히 보일 정도로 가깝다”며 반발했고 이에 두 차례 경마장의 개장이 연기됐다. 그런데 지난 6월 28일(토) 마사회 측은 돌연 임시 개장에 들어갔다. 이후 주민들과 마사회의 대립이 극에 달했고 화상경마장 반대 농성은 현재 진행 중이다.

 

 

◆ 드디어 시작된 용산 주민 문화제
“학교와 주택가에 도박장이 웬 말이냐” “도박장을 막아내고 교육환경 지켜내자” 오후 7시가 넘은 시각, 주민들의 힘찬 구호가 들려왔다. 마사회를 규탄하는 용산 주민 문화제가 시작된 것이다. 문화제 사회를 맡은 이원영 화상경마도박장 입점 저지 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공동대표는 “도박이 먼저냐 교육이 먼저냐, 공공기관인 마사회가 지금 매출을 올리려 혈안이 돼있다”며 문화제를 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사회를 맡은 대책위 공동대표 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문화제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곧바로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여기가 정녕 시위 집회 장소인가 싶을 정도로 현장은 흥겨운 분위기였다. 기타 연주와 함께 음악 소리가 장내에 흐르자 주민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공연이 진행되는 중간에 참가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어두운 저녁이었지만 수많은 촛불이 모여 어느새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노래 공연이 끝난 후에는 촛불을 든 6명의 여대생들이 무대를 채웠다. ‘한국대학생문화연대(이하 한문연)’ 소속의 대학생들이었다. 한문연 대표이자 본교 재학생인 조아나(인문 09) 학우는 연대 발언을 시작했다. 조 학우는 “학교와 가까워 자주 영화를 보러 오던 이곳에 온갖 도박꾼들이 모여든다는 생각을 하면 꺼림칙하다. 교육보다 도박이 더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며 “용산 주민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저희 대학생들도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발언 중간중간에는 조 학우의 의견을 지지하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연필 대신 피켓을 든 소녀들
조 학우의 발언이 이어지던 그때, “화상경마 절대 반대”를 외치며 집회 장소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성심여중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었다. 화상경마장 이전을 촉구하는 ‘인간띠잇기’를 막 끝마친 것이다. 교정에서 출발해 화상경마장까지 행진해 온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도착하자 그들을 향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문화제에 참가한 성심여중 한예원(여·15) 학생은 “10시가 넘은 시각에 학원을 끝마치고 집에 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술 취한 아저씨들이 화상경마장에서 나올 때면 무서워 피해가게 된다”며 “화상경마도박장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주말도 마다하고 시위에 참가한 성심여중고 학생들. 그런데 그런 그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단다. 친구와 함께 문화제를 지켜보던 성심여고 김현지(17·여) 학생. 김 학생은 “외부에서는 학생들이 선동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얼마 전, 수능을 앞둔 3학년 언니들이 앞장서 전교생이 모여 집회를 여는 등 오히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으로서 문화제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손에는 ‘경마장 반대’가 적힌 빨간 피켓을 들고 나머지 한 손에는 촛불을 든 그들의 표정에는 사뭇 진지함이 묻어 나왔다. 자신들의 앞에 놓인 힘겨운 상황에 웃음을 잃을 법도 한데 다행히도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기 가득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낙엽이 굴러가도 웃음이 날 나이라 했던가. 친구와 장난을 치는 그들은 영락없는 소녀들이었다.

 

 

◆ 문화제 이모저모
문화제를 잠시 뒤로하고 시위 대열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대열 밖으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봤다. 발걸음을 돌려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그곳에서 자녀와 함께 문화제에 왔다는 주부 김진아(35·여) 씨를 만났다. 사촌이 대책위로 활동하고 있어 이 자리에 오게 됐다는 그는 “여기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이 건물이 화상경마장으로 이용되는지 전혀 몰랐다”며 “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용산 화장경마장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시위에 참가한 주민들 옆으로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리본은 화상도박경마장의 이전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우리나라 우리학교가 안전하고 행복해지길...”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한 글자씩 적어내려 갔을 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문구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 마사회는 떠나라!”고 적힌 리본이 바람에 펄럭였다. 리본들을 구경하던 도중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화상경마장 건물 안으로 보이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업 방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마사회 측에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이를 녹화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민들 속으로 숨어 들어가 집회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한다고 말했다. 주민의 말만 듣고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사회 측과 주민들 간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만은 사실인 듯했다.

문화제가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난 시각, 갑자기 여학생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이윽고 무대 위로 성심여중고 김율옥 교장이 올라왔다. 김 교장은 “아이들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과 행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아이들에게 ‘정의가 이긴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가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의 손에는 노란색 종이가 들려 있었고 그들은 노란 종이 위에 화상경마장에 대한 자신의 바람을 적었고 마음을 담아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이윽고 이원영 공동대표가 “도박장은 물러가라”고 외치자 주민들은 이를 큰 소리로 되풀이하며 화상경마장 건물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이 순간, 화상경마장의 경비원으로 보이는 몇몇 남성들은 건물 안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용산 주민들이 반대 농성을 시작한 지 어느덧 500일이 지났다. 지난 4일(목), 마사회는 업무방해의 혐의로 주민 17명을 고소·고발했다. 이렇듯 용산 주민들은 마사회와 힘든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용산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웃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있는 학우는 드물다. 자신과 관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일까. 그러니 한 번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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