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는 어떤 물건이든지 뚝딱 만들어낸다. 영화에서는 물체를 스캔한 데이터로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기술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기계는 이미 27년 전에 3D 프린터라는 이름으로 발명됐다. 앞으로 산업계에 큰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놀라운 기계, 3D 프린터에 대해 알아봤다.

3D 프린터는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린터는 평면 종이에 화면 속 그림이나 글을 그대로 종이에 옮기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인쇄를 종이 위에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1988년, 미국의 3D시스템즈(3DSystems)사는 잉크 대신 플라스틱 액체를 사용해 입체물체를 만들어내는 프린터를 최초로 개발했다. 그동안 2차원적인 종이에 새겨지던 인쇄물이 3차원적 공간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초기 3D 프린터의 주된 역할은 실제 상품과 똑같은 모양의 시제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기업에서 어떤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시제품을 만들면, 제품에 문제점은 없는지 미리 점검할 수 있다. 알람시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알람시계를 신상품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가정해보자. 시침과 분침은 잘 돌아가는지, 알람은 제때 울리는지 시제품을 통해 점검하면 실제 상품을 만들어 평가 할 때보다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 그래서 초기 3D 인쇄 기술은 공장이나 연구소 등 제조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많이 이용돼왔다.

깎아 내거나 쌓아올리거나
미술 용어 중에는 조각과 소조라는 기법이 있다. 조각은 큰 덩어리를 깎아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소조는 작은 덩어리들을 합쳐서 모양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3D 프린터도 입체를 만드는 형식에 따라 절삭형(컴퓨터 수치제어 조각방식)과 적층형(쾌속조형 방식)으로 나뉜다. 절삭형은 조각하는 것처럼 큰 덩어리를 조금씩 깎아내서 입체를 만든다. 가장자리를 깎아내기 때문에 단면이 매끄럽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료가 많이 들고 오목하게 파인 부분을 절삭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물건을 만들기 때문에 색상의 한계도 있어 채색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

적층형은 절삭형과는 다르게 0.01~0.08mm의 얇은 층인 레이어를 쌓는 기법을 사용한다. 레이어가 얇으면 얇을수록 더 정밀한 입체를 얻을 수 있고, 각각의 레이어에 다른 색을 입힐 수 있어서 복잡한 무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적층형으로 작업한 3D 프린트 제품은 겉으로 보기에 매끈해 보여도 확대해보면 계단처럼 각이 져 있다는 단점이 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나
3D 프린터에는 잉크 대신 가루와 액체, 실 형태의 재료가 사용된다. 적층형 3D 프린터에서 이 재료들은 아주 얇은 레이어가 된다. 가루 형태의 재료는 보통 미세한 입자의 나일론이나 석회를 사용한다. 프린터 헤드가 가루로 가득 찬 용기 위를 지나가며 데이터 만큼의 접착제를 뿌린다. 접착제가 뿌려진 가루 표면은 서로 엉겨 붙어 하나의 레이어를 만든다. 만들어진 레이어는 가루 속에 묻히고, 다시 헤드가 접착제를 뿌리면 두 번째 레이어가 완성된다. 반복된 헤드의 움직임으로 수만 개의 레이어가 형성돼 입체물체가 만들어진다. 인쇄가 끝난 뒤, 완성품을 경화제에 넣었다가 5~10분 정도 말리면 3D 인쇄 작업이 마무리 된다.

액체 재료로 인쇄하는 방식도 가루 재료와 비슷하다. 보통 액체 형태의 광경화성 플라스틱을 쓰는데, 이 플라스틱은 빛을 받으면 고체로 굳어진다. 액체 플라스틱이 담긴 용기 위에 프린터 헤드는 접착제를 뿌리는 대신 빛이나 자외선을 쏜다. 빛을 받은 액체 표면은 굳어서 하나의 레이어가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한 뒤, 완성된 물체를 액체 속에서 꺼내기만 하면 인쇄가 완료된다.

플라스틱 실을 재료로 사용하는 3D 프린터는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내듯이 헤드에서 실을 뽑아낸다. 플라스틱 실을 실타래처럼 둘둘 말아놨다가 한 줄을 뽑아 프린터 헤드에 달린 노즐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때 헤드는 700~800℃의 강한 열을 발생시켜 플라스틱 실을 녹이고, 그대로 그림을 그리면 녹은 실은 상온에서 굳어 레이어가 된다.

의료부터 음식까지
3D 프린터 시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의료분야다. 인공 치아, 인공 턱, 인공 관절 등의 인공조직은 획기적인 조직 대체물로 각광받지만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원하는 부위의 본을 뜨고 보형물을 조금씩 깎아서 만드는 기존의 제작 방식에 비해 3D 프린터는 단 몇 시간 만에 인공보형물을 만들어낸다는 장점이 있다. 엑스레이로 얼굴을 촬영해 환자의 턱에 적합한 턱뼈를 제작하거나 콜라겐과 연골세포, 영양물질 등을 섞어 젤리 형태의 인공 귀를 만들기도 한다. 현재는 뼈와 관절뿐만 아니라 인간의 세포를 복제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3D 프린터 활용 범위는 제조업과 의료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나 음식산업에서도 3D 프린터는 각광받고 있다. 2010년 <아이언맨 2> 제작 당시, 특수효과 팀은 더 정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특수효과나 분장이 아닌 실제 소품을 이용했다. 영화에 나온 아이언맨의 슈트의 일부분을 CG가 아닌 3D 프린터로 직접 제작한 것이다. 덕분에 아이언맨 역할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로 만든 슈트를 입고 실제 영화촬영을 했다. 또한 영화촬영에 필요한 소품을 즉석에서 인쇄하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물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 <리얼스틸>의 주인공인 로봇 아톰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실물 크기의 5분의 1크기로 만들어 졌다.(사진 1) 영화산업에서 3D 프린터는 복잡한 물체들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3D 프린터의 발명으로 음식산업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영국 엑세터 대학과 브루넬 대학이 공동으로 제작한 3D 초콜릿 프린터 ‘초크 크리에이터’는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초콜릿을 디자인한다. 또, 오레오 쿠키 제조사인 미국 식품회사 몬델레즈 인터내셔널에서는 ‘오레오 트렌딩 자판기’를 소개하기도 했다.(사진 2) 오레오 자판기는 12가지 맛 중 하나를 고르면 2분 만에 쿠키를 만들어 제공한다. 그러나 초콜릿을 비롯한 많은 음식 재료들은 정확한 온도조절이 필요하고 쉽게 변질되기 때문에 보존기술에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행보는
3D 프린터는 실과 바늘 없이 옷을 짓거나 여러 약품을 섞어 알약을 만들고, 원하는 색깔의 화장품을 만들어내는 등 활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3D 프린터의 영향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 8일(목), 일본에서는 한 남성이 3D 프린터로 권총을 만들어 사용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사회적 이슈가 됐다.(사진 3) 어떤 물건이든 무제한으로 복제할 수 있는 3D 프린터의 특성 탓에, 3D 프린트 기술이 남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본교 컴퓨터과학부 문봉희 교수는 3D 프린터에 대해 “아직은 프린터의 재료나 소재가 미약해 제한된 부분이 있지만, 소재가 다양해지면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기 제작과 같이 3D 프린터가 범죄에 악용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분야에서 좋은 의도로 쓰이더라도 일부는 그 기술을 악용하기 마련”이라며 “이것은 과학의 이면이기 때문에 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제도를 바꿔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초창기 1, 2억 원을 호가하던 3D 프린터는 이제 백만 원 대에서 구입이 가능할 만큼 가격인하 속도가 빠르다. 누구나 3D 프린터만 있으면 디자이너가 된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한다. 이 모든 일은 인쇄 버튼만 누르면 이뤄진다. 그러나 3D 프린터가 우리 생활과 점점 밀접해지는 만큼 그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참고문헌>
『3D프린터의 모든 것』동아시아
『3D프린팅의 신세계』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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