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예술고등학교 진윤선

길에서 길로

 

 남자는 자동차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오락가락하던 문의 감금장치를 그냥 내버려 둔 것이 화근이었다. 남자는 멍하니 자동차 내부를 바라보았다. 자동차 열쇠는 운전석 바로 옆에 놓여져 있었다. 문이 잠겼고, 열쇠는 자동차 안에 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뒤로 틀었다.

 “진짜 깡 촌이네……”

 남자가 산 꼭대기에 살짝 걸쳐있는 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가 서 있는 도로는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남자는 차체에 몸을 기댔다. 한참을 해만 바라보고 있자 눈이 아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눈을 찌푸리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해를 잡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도망가거나 놀라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웅크리는 손 틈 사이로 빛이 빠져나갔다. 남자는 그 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조심 히 손을 오므렸다. 마침내 주먹을 쥐어 제게로 가져왔을 때, 해는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다. 결코 길로 내려오는 법이 없었다. 해는 늘 그렇게 제 길만 따라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남자는 차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평하지 않은 것에 기대었던 탓에 등이 뻐근했다. 차가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차 앞에 쓰러져있는 노루가 보였다. 저 노루가 차에 치이지만 않았다면, 남자는 처음 생각처럼 계획 없는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노루에 의해 제 시간을 방해 받았음에도 남자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다만 죽어가는 노루를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제 길을 넘어가면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하며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노루와 눈을 맞췄다.

남자는 얼마 전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에 당황한 남자가 상사에게 무슨 연유인지 물었으나 상사는 끝내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부당하다고 외치던 그의 이야기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사라졌다. 그렇게 남자는 직장을 잃었다.

남자의 집은 전 직장과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였다. 그 때문에 해고당한 남자가 다음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커튼을 치는 것이었다. 남자의 친구들은 그의 해고 사실을 듣고 계속해서 안부를 물었다. 남자는 그런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항상 괜찮다 이야기했다. 너무나 멀쩡한 목소리에 모두가 남자의 이야기를 믿었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남자의 말에 함께 울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죽였어요?”

 남자가 생각하던 틈을 타 한 아이가 남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를 가진 아이는 맨발을 하고 있었다. 쭈그리고 있던 탓에 아이의 발을 가장 먼저 본 남자는 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해를 등지고 있어 아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자기가 길을 넘어가려다 차에 치인거지.”

 남자는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저렸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이는 그런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그 모습에 처음 보는 타지 사람이 신기한가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아이는 항상 외부 사람들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이 도로가 아이의 기억에 전부였기 때문이다. 첫 시작점도, 끝도 모두 이 도로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었다.

 “결국 아저씨가 차로 들이받아서 죽은 거잖아요.”

 아이의 말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었다. 차마 뭐라 이야기 하지도 못하고 남자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이에게 어디로 가면 마을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어야 했다. 마을에 가 그곳 주민 중 한 사람에게 망치를 빌리면 된다. 그것으로 창문을 깨고 손을 뻗으면 자동차 열쇠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열쇠를 찾고, 문을 열고 이 길을 벗어나 그대로 집으로. 실현 가능한 계획에도 차마 남자는 아이에게 마을이 어디냐 길을 묻지 않았다.

 남자는 해고 당한 뒤 집 밖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딱 한번 해고 당한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는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났고 그대로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그 김에 편의점이나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양복 대신 후드를 입고 남자는 승강기를 탔다. 그리고 그 곳에는 동료였던 여직원이 타고 있었다. 회사와 워낙 가깝다 보니 많은 직원들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애써 그 여직원을 모르는 척 하며 승강이에서 내렸다.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가자 큰 길이 나왔다. 매일 출퇴근하던 그 길이었다. 남자를 제외한 그 길에 서 있던 모두가 목에 사원 증을 달고 있었다. 꼭 남자의 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원 증을 목에 단 사람들뿐 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이 길 위에 서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남자는 오늘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미안해해야 해요. 길을 넘어갈 수 있는 애였는데……”

 아이가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는 늘 길을 넘어서길 꿈꿨다. 그러나 이 도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으므로. 아이의 말에 남자는 노루를 내려다 보았다. 자신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해고 된 이후 매일 자신의 실이 어디일까 만 생각해왔다. 남자는 노루의 눈을 바라봤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싶어 길로 뛰어들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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