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묵고등학교 김혜빈

달력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달력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매우 커다란 종이였다. 해가 갈 때마다 조부모님께선 직접 달력을 내려주시고 마음껏 그리라고 색연필도 내미셨다.

“잘 그리네 우리 손녀!”

옆에서 내가 자신의 몸집마냥 큰 달력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 할머니께서는 마냥 웃으시며 칭찬해주셨다.

“할무니, 할무니도 그려.”

그 당시 할머니는 나에게 화가였고 마술사였다. 순식간에 하얀 종이를 공주님도 있고 성도 있는 동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림들을 모아서 벽 한쪽 면을 빼곡히 장식하고는 엄마, 할아버지, 이모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자랑했다.

“엄마 오늘은요 할무니랑요 그림 그렸다요.”

“와~ 정말 잘 그렸네?”

1년, 2년 그렇게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그림들은 나에겐 수많은 상장이었다.

그러나, 나와 할머니의 그림 놀이는 내가 학교 들어가기 1년 전에 끝났다. 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 하신 할머니와 세균성 대장염으로 입원한 나 때문에 집안은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어린 나이라 빨리 퇴원한 나는 할머니가 다시 와서 달력에 같이 그림 그려주길 기대하며 혼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랜 투병 끝에 내 동생이 돌도 안된 시점에 돌아가셨다. 7살, 죽음이란 의미도 몰랐지만,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온몸에 수분이 빠질 때까지 꺽꺽 거리며 울어버렸다.

“그만 울어. 할머니도 너 그렇게 많이 울면 편히 못 가셔.”

엄마의 다그침에 눈물을 참아보려 했지만 반대로 눈물이 더 많이 나왔다.

“싫어! 할머니 내놔!”

정말 말도 안 되는 떼란 떼는 다 피우면서 부정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발인 후, 나는 그림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다. 할아버지께서 달력을 주고 그림 그려봐라 고 해도 선만 몇 개 직직 그려두고 한 쪽으로 밀쳤다.

“할머니 보고 싶어?”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할머니 보고 싶냐 물으며 할머니가 있는 공동묘지로 데려갔다.

“할머니께 인사해야지?”

엄마가 할머니라 칭한 동그란 묘. 나는 그 모에 달려가 또 울었다.

“할머니 왜 안 와?”

“할머니는 하늘에서 너 보고 계셔. 네가 울면 할머니도 슬퍼하시고 네가 웃으면 할머니도 좋아하셔. 늦었다. 할머니한테 안녕, 하고 가자.”

수십 번 손을 흔들며 집에 와서는 달력 뒷편에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할머니 사진 앞에 두고는 자랑했다.

 “할머니, 내가 그린 거야. 다음엔 같이 그리자. 약속한 거야?”

 나 혼자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벌써 12년이 흘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 밑으로 3명의 사촌들이 더 태어났고 7살 때 한 약속은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그런데 사촌 중 막내가 6살리 되던 해. 할아버지께서 지난 달력을 막내에게 주며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다.

 사촌동생을 보자 문득 생각난 할머니와의 약속 그 약속을 왜 까먹었을까. 한 달 남은 달력의 뒷편에 천천히 그리고 아주 크게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사촌 동생에게서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잠들었다.

 여전히 달력 뒷편은 내 과거가 있는 공간이고 과거로 갈 수 있고 향수에 취할 수 있는 조그만 내 방이다. 이사를 다니며 할머니와 그렸던 그림은 사라졌지만. 어릴 때의 추억은 달력과 함께 내가 잊지 않는 한 항상 계속 될 것이라 믿는다. 아니 꼭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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