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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몰랐던 그때 그 시절
김경주, 정서빈, 박민주 기자  |  smpkkj87.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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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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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축전에서 청파제로

28일(수)부터 3일 동안 계획돼 있던 축제가 2학기로 연기됐다. 첫 ‘청파제’를 경험할 수 있었던 14학번 학우들에겐 아쉬운 소식이다. 청파제는 50년 전의 ‘청파축전’이라는 본교 축제에서 유래됐다. 그렇다면 청파축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청파축전은 1963년 4월 20일, 개교 25주년 기념행사로 첫 팡파르를 울렸다. 지금의 숙명인들이 청파제 때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듯, 청파축전 때에도 사진전, 시화전, 연극 공연, 장기자랑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됐다. 청파언덕에서는 과별로 다양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손님을 끌었다. 그 중 국문과의 ‘몽로주점(夢路酒店)’이 가장 인기였다. 대부분의 학과가 주점을 여는 요즘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여자대학의 교정에서 대낮의 음주가 허용되는 유일한 행사였다.
  그 후 몇년 간 학문적인 방향으로 개편된 청파축전에는 연회 및 세미나가 열렸으며, 가족 초대 특별프로
그램인 ‘촛불 청파’가 1967년에 개최됐다. 촛불 청파는 노래, 게임, 포크댄스 등의 행사로 진행됐으며, 마지막 순서에는 참석자 전원이 촛불과 함께 교가를 부르며 마무리됐다. 한편 1973년에는 개교 35주년을 기념해 학문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체육대회를 열었다. 본 청파체육대회는 교정에서 경기가 치러졌고, 가장행렬이나 응원상도 마련돼 있었다. 청파체육대회를 계기로 청파축전은 문화공연 및 전시회나 경연대회가 결합된 축제로 변모했으며, 그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축제 마지막 날 열리는 ‘쌍쌍파티’였다. ‘쌍쌍파티’는 남녀대학생들이 짝을 이뤄 데이트를 즐기는 행사였다. 그러나 1979년부터 청파축전은 다시 강연을 여는 등 학술적인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숙명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로 추진된 청파축전은 숙명인으로서의 연대와 친목을 강화하는 장이 됐다. 1987년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이후 ‘청파축전’은 ‘청파대동제’로, 2003년 ‘청파대동제’는 ‘청파제’로 이름이 바뀌며 지금에 이르게 됐다.

숙명의 이색대회

1960~70년대, 본교에서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특별한 대회들이 열렸다. 첫 번째는 1965년 아름다운 숙대 교정을 목표로 개최된 ‘여왕 장미 선발대회’다. 여왕 장미는 전교생이 교정의 모든 장미 중 가장 아름다운 장미에 투표해 선정됐는데, 1965년에는 ‘133번’ 장미가, 66년과 67년에는 각각 ‘미스 프랑스’와 ‘퀸 엘리자베스’ 장미가 그 영광을 차지했다. 투표 후에는 여왕 장미를 위한 대관식을 열고, 여왕 장미에게 투표한 학생들 중 1명을 추첨해 상품을 증정하기도 했다. 인물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선정한 것은 특정 인물을 뽑아 선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꽃의 아름다움을 겨뤄 학생들 나름의 심미안을 높이자는 의미였다. 1968년 이후로는 장미 묘목 식수 행사가 함께 진행됐으며, 진·선·미를 뽑는 장미 경연 대회로 행사의 성격이 변해갔다. 그러나 점차 대회에 대한 열기가 식어가면서, 결국 찬미 대회는 개최 6년 만인 1971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1970년 4월에 개최된 ‘통학복 경연 대회’다. 1970년대 본교에서는 학생들이 저렴하고 단정한 복장을 입도록 장려했다. 당시에는 미니스커트가 한창 유행이었던 터라 여대생들에 대한 복장 간소화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의 취지와 달리 제1회 대회에서는 데이트 복장이나 톱 유행 의상 등을 표현한 학우가 많았다. 이에 제2회 대회에서는 총학생회 임원들과 학생처장 및 가정대 학장이 심사에 참여해 행사 취지에 부합한 통학복을 선발하고자 노력했다. 대회 예선은 6명의 심사위원들이 5일간 교문에 서서 단정한 복장의 학생들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본선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진·선·미뿐만 아니라 행운상, 인기상, 스마일상까지 뽑았다. 그러나 통학복 경연 대회는 본래 취지에 맞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총학생회의 평가로 1970년 11월 열린 제2회 대회가 마지막이 됐다.

'스노우'를 아시나요

108년 숙명의 역사만큼, 숙명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의 역사도 깊다. 2014년 현재 본교의 마스코트는 숙명
의 로고인 눈꽃을 캐릭터화한 눈송이 캐릭터다. 눈송이 캐릭터는 2002년 5월 새롭게 리뉴얼된 눈꽃 UI에
서 착안됐으며, 2013년 11월 지금의 모습으로 리뉴얼됐다. 대부분의 학우들은 눈송이 캐릭터만 알고 있으
나, 과거 본교에는 실제 학생처럼 만들어진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사이버여대생 ‘스노우’이다. Sookmyung Network for Open World의 첫 글자를 따 이름을 붙인 스노우는 1998년 탄생했으며, ‘숙명가상교육센터’의 사회교육 과정에 재학했다. 당시 부드럽고 개방적인 성격의 신세대 사이버여대생이었다고 한다. 스노우는 25세의 168㎝ 키를 가진 단발머리의 여대생이었으며 스키, 수영, 골프, 노래 부르기 등의 취미도 있었다.
  학교 문구류에 삽입되거나 1차원적인 캐릭터에 불과한 눈송이와 달리 스노우는 본교 가상교육센터의 각 과정을 안내하는 홍보도우미로 활동하면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리포트를 내고, 학점도 받았다. 또한 가상대학에 들어온 다른 학생들과 채팅도 하고, 30분 이상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 학생 앞에서는 졸린 표정을 짓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스노우는 홍보도우미로 일할 때 개량한복을 입고, 약료전문가 과정의 학생일 때는 흰 가운을 걸치는 등 상황에 맞는 옷을 착용했다. 사이버 졸업식에 참석해 교가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다른 재학생들처럼 ‘98919999’라는 본인의 학번까지 부여받은 스노우는 개인 홈페이지 주소와 전자우편 주소도 갖고 있었다.

남색 치마 입은 숙녀

현재 본교에도 학칙이 존재하지만, 예전에는 더욱 엄격했다. 우선 모든 학생들은 지금과 달리 교복을 착용했다. 1907년, 자줏빛 원피스 형태의 양장 교복이 최초로 만들어진 후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한복, 이후에는 하얀 블라우스에 짙은 남색 치마의 교복이 있었다. 1940년대 학칙 제10조에는 ‘등교 시에는 물론 다른 외출 시에도 교복을 착용하고 본교 소정의 휘장을 달아야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알 수 있다. 기숙사 규칙 또한 지금보다 제한적이었다. 1920년대 기숙사생들의 기상시간은 아침 6시, 취침시간은 밤 10시로 정해져 있었으며 목욕은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학구적인 분위기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교내에서의 하이힐 착용도 금지됐다. 학우들은 등교시간마다 교문에서 학생위원들에게 검사를 받아야 교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숙명인들은 외부 활동에서도 통제받았다. 1940년대에는 학생들에게 버스 이용이 금지돼 ‘전차로 통학하는 학생도 학교로부터 지정된 구간은 반드시 도보로 해야 한다’라는 학칙이 있었다. 지금의 숙명인들은 MT와 학술기행을 떠나지만,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때처럼 소풍과 수학여행을 떠났다. 친목과 오락을 위해 떠나는 MT와 학술기행은 선택적으로 참석할 수 있지만,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전원 참석해야 했다. 또 수학여행에서는 교복을 착용해야 했는데, 교복에 매야 할 리본이 도착하지 않아 출발하지 못하고 교수와 학생들 모두가 서울역에서 기다렸다는 재미난 일화도 있다. 엄격한 학칙들은 1960년대에 규율이 완화되며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규율들 덕분에 정숙한 숙명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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