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억울한 자들의 사연을 접수받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 신문고는 정보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중앙행정부와 백성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사회 전반의 문제해결을 위해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어느 공동체에나 소통을 위한 수단이 발달하곤 한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소통 공간의 형식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크게 바뀌었다. 그렇다면 숙명여자대학교 내의 소통은 어디서 이뤄질까? 바로 숙명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숙명인 게시판>이다. 2005년 신설된 이래 올해로 10년차를 맞은 숙명인 게시판은 여전히 많은 학우들과 교직원, 교수들 간의 소통의 끈을 이어주고 있다. 108주년 창학기념일을 맞아, 숙명인 게시판을 통해 지난 10년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취업부터 취미까지, 홍보의 장
숙명인 게시판은 일반ㆍ홍보ㆍ행사ㆍ공모ㆍ봉사ㆍ분실물의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 게시물의 수가 가장 많은 카테고리는 ‘홍보’다. 스터디원이나 공모전에 함께 참여할 학우를 찾는 목적으로 게시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리더십그룹의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게시물 역시 증가했다. 취업을 위한 준비뿐만 아니라 여가와 자기 계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취미활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학우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숙명인 게시판의 ‘홍보’에서는 다양한 모집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홍보 목적뿐만 아니라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은 글도 꾸준히 게재되고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주로 취업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입사한 한 학우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운 점과 자신이 취득한 자격증과 공부 방법에 대한 내용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담은 후기를 올렸다. 토론 면접에서 주어진 주제와 발표 면접에서 자신이 고른 주제 등 자세한 경험담을 제공하며 취업을 고민하는 학우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홍보 게시판에는 오케스트라 단원, 취미밴드 회원을 모집하는 등 다양한 동아리 모집글이 올라온 다. 본교 리더십그룹 역시 숙명인 게시판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IT리더십그룹, IT's U(잇츠유), 학사모니터요원, 숙명통신원, ABLE 등 본교를 대표하는 리더십그룹들이 숙명인 게시판을 통해 활동 소개와 지원 조건을 게시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주로 취업에 대한 정보가 많이 올라왔던 ‘홍보’에 햄스터나 새끼 고양이를 분양하는 등 학업 이외의 새로운 소재에 관한 글도 올라오고 있다. 소통의 주제가 점차 일상적인 소재로 확장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돼 가고 있는 모습이다.

잃어버린 물건, 숙게에서 찾으세요
최근 200개의 게시글 중에서 ‘분실물’을 찾는 글이 가장 많았다. 오늘날의 학우들에게 숙명인 게시판은 분실물 센터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체 카테고리 중 ‘분실물’ 카테고리가 가장 인기가 많다. ‘분실물’ 카테고리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 다른 학우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이 많았다. 그때와 달라진 오늘날의 특징은 분실물을 찾아달라는 요청글과 누군가의 분실물을 습득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주인을 찾는 글이 늘었다는 점이다.

한 학우(아이디 su***)는 <디카플라자 USB 분실물>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찾은 8개의 USB 사진 을 찍어 올렸다. 각 USB 옆에 간단한 글을 함께 적어 사진을 찍었는데, ‘USB 열었을 때 보이는 파일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도서관 2층 디카플라자에서 꼭 찾아가세요’라는 당부의 글 역시 잊지 않았다.

또 다른 학우(아이디 danbi***)는 <삼성노트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 시간 전에 노트북을 잃어버렸는데 찾으신 분 있으시다면 꼭 연락주세요’라는 글과 연락처까지 남겼다. 2시간 뒤 다른 학 우(아이디 sherlo***)는 ‘누가 학생회관에 맡겨놨다고 에브리타임에 글 올렸던데 혹시 흰색인가요? 얼른 가보세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처럼 쌍방향으로 소통이 이뤄지기는 소통의 성격이 강화되기도 했다.

학교 비판과 감시 역할 톡톡히
본교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가 있거나 학교 내 중요한 사안이 발표될 때 숙명인 게시판은 더욱 활성화 된다. 작년 10월, 중앙일보 대학평가 발표에서 본교가 종합 31위를 한 사건이 있었다. 많은 학우들은 숙명인 게시판에 모여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고 앞으로 학교의 발전에 대해 자발적으로 논의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측과의 공식적인 간담회 요청을 했고, 이는 제1회 전체재학생간담회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지난 7일(수) 제2회 전체재학생간담회에서는 공학계열 학과개편과 신설과 단과대학 구성안을 공개했다.(5월 12일자 <숙대신보> 1면 참고) 사전에 협의 없이 일방적 통보를 받은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 학우들은 대부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숙명인 게시판에는 몇몇 학우들과 단과대 학생회장의 글이 올라올 뿐, 다소 잠잠한 분위기다. 2010년 3월에 일어난 경영·경제학부 학제개편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 학제개편안의 내용은 경영학부가 경영대학으로 독립하면서 경영학부, 글로벌마케팅학부, 글로벌금융 회계학부로 분할되고 경제학부는 사회과학대학으로 편입돼 경제학부와 소비자경제학과로 분리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숙명인 게시판에는 경영학부 교수 17명의 이름을 건 학제개편 반대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경제학 부 안석환 교수가 기획처장과의 일대일 공개토론을 요구하기도 했다. 학우뿐만 아니라 교수들이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학제개편에 부정적인 여론이 힘을 얻게 됐다. 결국 학교 측은 이러한 의견을 일부 수용해 경상대학 단과대는 그대로 두고 학과 개편만 진행했다. 교내사안에 대한 숙명인 게시판의 비판과 감시 역할을 톡톡히 보여주는 사례다.

학교 부처-학생 간 실시간 소통의 매개체
숙명인 게시판은 학교 부처와의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012년 6월경, 숙명인 게시판에는 한 학우(아이디 메렁)의 경험담이 올라왔다. 내용인즉, ‘우리학교 재학생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성이 새벽에 열람실 앞 벤치에 누워있어 열람실을 지키던 보안요원이 제재를 가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사과는커녕 아버지뻘 되는 보안요원에게 언성을 높이며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 글쓴이는 ‘숙명인의 안전을 위해 힘쓰는 보안요원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며 ‘속상한 마음 풀었으면 좋겠다’고 글을 썼다. 뒤이어 많은 학우들이 댓글을 달았고, 대부분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힘냈으면 좋겠다’며 보안요원을 응원했다. 이에 보안팀장은 댓글을 통해 ‘수많은 학우들의 댓글에 감동했다’며 ‘당사자인 보안요원을 비롯한 모든 보안요원께 학우 님들의 진심을 전달했으며 항상 학우들의 안전한 교내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숙명인 게시판을 통해 본교 홍보팀과 학우들 간의 오해를 푼 일도 있었다. 2009년 9월경,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172회 ‘품절남 특집’ 제작 당시, 제작진 측에서 본교 홍보팀에 촬영협조를 부탁했지만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며 숙명인 게시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재학생은 숙명인 게시판을 통해 촬영 기회를 떠나보낸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고, 이에 공감하는 학우들이 강한 비판의 내용을 담은 댓글을 쓰기도 했다.
당시 본교 홍보팀 홍보실장을 맡았던 한규훈 교수는 촬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숙명인 게시판에 올리며 해명했다. ‘촬영 및 편집권이 제작진에게 있는 상황에서 우리대학이 부정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에 아이디 081****의 학우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글을 읽고 나니 이해가 간다’며 ‘현명하게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고 댓글을 남겼다. 발빠른 홍보팀의 해명에 총 94개의 댓글 대부분이 ‘이해한다’ ‘잘 해명한 것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숙명인 게시판 내에서 오가는 학우들과 학교부처 간의 소통은 전화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진다.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소통할 수 있기에 더 많은 주제와 의견을 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숙명인 게시판이 개설된 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숙명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