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재미없어. 그냥 동거만 해. 같이 있고 싶을 땐 같이 있고, 기분 안 내킬 땐 넌 네 집에 가서 자.” 최근 방영 중인 SBS 주말극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속 한 장면이다. 극 중 현수(엄지원)는 결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비혼주의자다. 그는 결혼이 서로를 구속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 속에서만 나오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현수와 같이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비혼을 택한 것일까.

증가하는 비혼 여성
비혼 여성의 수를 집계한 통계자료는 없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 여성의 미혼율을 통해 그 수를 파악할 수 있다. 여성주의 단체인 언니네트워크의 활동가 몽은 “비혼 여성은 결혼 적령기라고 여겨지는 연령대(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에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을 의미한다”며 “때문에 비혼 여성의 수치를 미혼 여성의 비율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분석한 <2012 한국의 성인지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25~39세 여성의 미혼율은 35.5%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의 27.4%보다 8.1% 증가했고, 2000년의 18.3%보다는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처럼 비혼 여성의 비중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비혼을 택한 숙명인들은 얼마나 될까. 숙명인 3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6일~28일, 신뢰도 95%, 오차범위 ±1.9)에 따르면 숙명인 11%(40명)가 비혼주의자라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1명꼴로 비혼을 택한 것이다.
 
비혼 여성, 그들은 누구인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이런 말도 있어요’는 새로운 말 중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코너다. 2010년, ‘비혼녀’라는 단어가 올라왔다. 국립국어원은 비혼녀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혼과 달리 자발적으로 혼인을 선택하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로 정의했다.     

그러나 언니네트워크가 생각하는 ‘비혼’의 의미는 다르다. 몽 활동가는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로 그 단어를 정의해서는 안 된다”며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여성들 역시 비혼 여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몽 활동가는 “아직 결혼 하지 않은 상태임을 뜻하는 미혼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며 “이는 비혼 여성들에게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인 ‘비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식으로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아닌 만큼 비혼에 대한 학우들의 인식은 낮았다. 63%의 숙명인들이 비혼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다솔(경영 11) 학우는 “설문에 참여하면서 ‘비혼’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며 “미혼과 같은 의미일 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37%(135명)의 학우들은 비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변혜진(무용 14) 학우는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을 미혼 여성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보니 이들에 대한 시각이 바뀌는 것 같다”며 “때문에 여성들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들은 왜 비혼을 택했나
비혼이란 말은 최근에 들어서야 쓰이지만 사실 비혼 주의 현상은 예전부터 나타났다. 2003년 한국여성개발원이 전국의 3,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혼 여성들은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않거나(31.7%), 일에 열중하기 위해(28.6%) 등 개인적인 이유로 결혼을 계획하지 않았다.

비혼 주의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양육과 가사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 때문이다.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아지는 등 점차 변화해 오고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에 관해서 만큼은 예외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성 4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결혼 후 합리적인 가사분담의 형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자가 주로 한다’는 응답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전히 가사는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적인 성역할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부부가 맞벌이 일 때, 맞벌이 남편 가사노동 시간은 평일 평균 17분으로 외벌이 남편과 비교했을 때 노동시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조사도 있다.(<<한겨레21>> 2014. 2. 18 발간 제948호 <남편은 골프장, 아내는 아이랑 사우나> 참조)

경제활동은 함께 하면서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정 내 구조는 여성으로 하여금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렵게 만든다. 이 때문에 차라리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결혼은 곧 육아라는 문화에 관해 부담을 가지고 있다”며 “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혼 여성들에게 불리한 대우를 하는 기업의 태도 역시 비혼을 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엄동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저출산과 결혼 프리미엄’ 보고서를 통해 “여성은 육아, 출산 등으로 결혼 프리미엄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결혼 페널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차화연(생명과학 10) 학우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며 “비혼 여성들은 사회적 억압에 구애받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비혼을 택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이 대표적 예다. 등장인물인 지민과 철은 대학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뒤부터 연인으로 함께 살아간다. 그들에게 ‘언제 결혼할거냐’ ‘결혼을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일상이 됐지만, 그들은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결혼을 통한 다른 관계들 속에 억지로 포함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3>에 등장하는 이민정(박효주 분)은 자유연애주의자로 결혼 대신 가벼운 만남을 원한다. 혼전 임신을 했지만 결혼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혼자 아이를 낳기를 선택한다.

숙명인 역시 개인의 가치관을 이유로 비혼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불행했던 가정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며 “가정을 이룬다 해도 좋은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위기에 놓인 비혼 여성들
비혼 여성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고 있지만 사회는 이들의 선택에 대해 부정적이다. 언니네트워크 유여원 사무국장은 한 토론회에서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출산은 여성의 국가적 의무이고 결혼 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인 짓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은 증가하는 미혼 여성의 비율에 대해 ‘기혼 여성의 출산율 조절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저출산 시대에 비혼 여성의 증가는 심각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활동가 몽은 “대부분 여성들은 저출산 문제 해결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택한다”며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혼 여성들을 이기적인 존재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39%의 학우들 역시 그들의 선택에 대한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연숙(법 11) 학우는 “부모님께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며 다그쳤다”고 말했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부정적인 인식만이 아니다. 부족한 사회적 지원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비혼 여성들은 주거선택의 기회조차 박탈되는 경우도 있다. 35세 미만 미혼인 경우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 역시 결혼한 가정에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비혼 여성의 경우 주거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위한 의료혜택조차 지원받지 못한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2011)>의 감독이자 극에 출현한 지민 감독은 임신 후에도 비혼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들의 아이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결국 혼인 신고를 하게 된다. 법적인 부부가 아니었던 그들은 수술지원금 혜택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혼인이라는 선택을 한다.

한국에서 비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전문가들은 비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활동가 몽은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며 “‘결혼하지 않고서 출산을 하는 것은 미성숙한 행위다’ ‘결혼이나 출산, 양육을 통해서 형성된 가족이 정상이다’라는 시각은 비혼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본교에서 결혼과 가족을 강의하고 있는 김명나 교수 역시 “자신의 의지에 따라 비혼을 택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들을 가족의 형태로 받아들여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는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부담감에 아예 결혼을 외면해 버리지만 단지 가족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책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하다. 김 교수는 비혼을 택하는 여성들에게 신중을 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비혼을 택할 때에는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혼자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경제생활, 건강관리 등 전반적인 사회활동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더불어 직업, 자기실현의 문제, 건강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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