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곧 용기를 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셰릴(크리스틴 위그)이 월터(벤 스틸러)에게 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여건이 안 된다’, 혹은 ‘두렵다’는 이유로 그것을 실행하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만 그 소망을 상상하곤 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월터는 어느 날 회사의 구조조정 대상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살던 ‘머릿속 세상’에서 문을 열고 나와 현실이라는 세계로 한 발자국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마음 속 문을 열고 한 발자국을 나서기만 한다면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한 걸음’을 떼는 데 머뭇거린다. 그들에게 에릭남(본명 남윤도·27)은 ‘Just do it.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전하세요’라고 말한다. 에릭남의 인생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취업을 앞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용기를 내 ‘가수’라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갔으며,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있다.

 

◆ 우연과 노력의 묘한 결합
에릭남에게 있어 2011년 <위대한 탄생2>(이하 위탄)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를 확정지은 후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그에게, 위탄 제작진이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입사를 앞두고 있던 찰나 머릿속에 한 풍경이 떠올랐어요. 회사에 들어가서 대학원 MBA를 따고 몇 년 쯤 일하다가 서른이 되면 결혼을 하는 장면이었죠. 그 순간 제 미래가 너무 재미없고 두려워서 인도로 무작정 봉사활동을 갔지만 빈약한 인프라와 인적 환경에 좌절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음악이 떠올랐어요. ‘하나님, 제가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꼭 저에게 (그것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했죠. 거짓말같이 2주 뒤에 위탄 제작진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가 왔어요.”

위탄에 참가하게 된 에릭남은 예선 심사 때 ‘음악을 하려고 태어난 목소리를 가졌다’는 극찬을 듣고, 방송 직후 ‘엄친아’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적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저는 그 당시엔 정말 (인기에 대해) 몰랐어요. 그냥 ‘사람들이 알아봐 주시는구나’로 끝났죠. 인기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노래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컸어요.”

미국 애틀랜타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부정확한 발음과 한국 가요에 대한 무지함은 큰 콤플렉스였다. 그것을 이겨내려는 그의 노력은 엄청났다. 멘토들의 지적들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적어, 그것을 종이가 너덜거릴 때까지 메모하고 읽는 모습이 방송에 비춰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음도 안 좋지만, (더 큰 문제는) 팝송과 한국가요를 부를 때 제 목소리 톤과 색깔이 확연히 차이나는 거예요. 그 갭을 줄여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니까 듣는 조언마다 다 공책에 쓰고 반복해서 읽었죠.”

그 후 에릭남은 승승장구하며 위탄 최후의 5인까지 남게 된다. 오디션이 끝난 후, 그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입사 예정이었던 안정적인 회사에 예정대로 취직하느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설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였다. “위탄을 하면서 계속 고민했어요. 가수라는 직업이 워낙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이니까 부모님도 많이 반대하셨죠. 그래서 회사에 ‘그만 두겠다’는 말을 빨리 하지 못했어요. 두려웠던 거죠.”

그는 도전이 두려웠지만 결국 단호한 결심을 내렸다. 많은 고민 끝에 회사에 사직서를 낸 것이다. “뉴욕과 LA 등을 돌아다니며 아는 형과 누나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다 같았죠. ‘인생은 하나 뿐이고, 회사 취직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가수가 될 기회는 한 번 뿐이니 꼭 해봐라.’ 이 말을 듣고 가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한국에 와서 지금의 소속사와 계약하게 된 거예요.”

◆ 가수 에릭남
그는 재작년 9월 소속사와 계약한 후 곧바로 ‘천국의 문’을 타이틀곡으로 한 미니앨범 <CLOUD 9>을 발표했다. 위탄으로 인한 높은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쉬워요. 수록곡들은 다 좋은 것 같은데, 제 생각이나 의견들을 (앨범에) 많이 못 담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급하게 준비했던 앨범이었어요. 제 색깔은 잘 전달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완성도가 낮았던 것 같아요. 지금 들어도 ‘어, 내가 왜 이렇게 불렀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죠.”

올 4월로 컴백 예정일을 잡고 있는 그는 음악 얘기를 하며 본인의 자작곡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어릴 때 배운 피아노와 첼로 등의 악기로 코드진행을 익혔고, 주변 지인들에게 컴퓨터로 작곡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나는 멜로디를 부르고 그걸 녹음해서 코드로 따요. 친분이 있는 작곡가 형들에게 제 자작곡을 들려주고 조언을 받기도 하죠.”

자작곡의 영감은 주로 영화, 책, 여행을 통해 얻는다. 노래를 작곡할 때는 당시의 기분이 많이 반영된다. “작년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던 한 해였어요.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슬럼프였죠. 컴백이 계속 미뤄지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이런 힘들고 답답한 내용들이 곡에 많이 묻어났어요. 만든 노래들을 지금 들어보니 정말 우울한게 느껴졌거든요.”

자신이 가진 가수로서의 매력을 물어보자 그에게서 주저 없이 ‘보컬 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 목소리가) 지금 대한민국에는 잘 없는 톤인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도 아니고, 성량이나 고음에 자신 있지는 않거든요. (저만의) 느낌과 톤이 조화됐을 때 사람들에게 색다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시죠..”

 ◆ 새로운 도전
불안정한 곳에서 익숙해졌을 때쯤, 그는 안주하지 않고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택한다. 연예계 소식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인 <섹션TV 연예통신>(이하 <섹션TV>)에 리포터로 들어간 것이다. 한국말이 아직 서툰 그에게, 유창한 한국말 실력이 필요한 <섹션TV> 리포터는 커다란  언어적 장벽이었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한국 연예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알지도 못하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처음 들어보는 작품이나 노래에 관한 질문을 했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특성상 인터뷰 당일 질문지를 받고 준비를 해야 했다. “녹화 처음부터 끝까지 저 혼자서 한국말로만 진행해야 돼서 정말 힘들었어요. <섹션TV>를 시작하고 한두 달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한국말 못 하는 꿈도 꾸고, 학교에서 F 받고 낙제하는 악몽들을 많이 꿨죠.(웃음)”

그러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편함은 달콤한 과실이 되어 돌아왔다. 언론에서 ‘인터뷰 대상자를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리포터’라는 극찬을 받은 것이다. 해외스타들과의 인터뷰 후에도 칭찬이 잇따랐다. “아직도 (제작진들에게) 혼나긴 해요. 열심히 하다보니까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죠. 해외스타들과의 인터뷰가 유독 반응이 좋은데, ‘만약 내가 한국말을 영어처럼 유창하게 하면 더 반응이 좋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은 항상 있어요.”

한동안은 가수와 예능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생각이 깊어진 때도 있었다. 그의 본업은 가수지만 대중들의 눈에 비친 에릭남은 ‘영어 잘하는 엄친아 리포터’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가수로 (현 소속사와) 계약을 했는데, 리포터로 연락이 많이 들어오니까 ‘(내가) 뭐하는 사람이지?’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섹션TV>를 통해 한국말이 능숙해지고 방송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어요. 이 일이 없었더라면 저는 그냥 노래만 하는 사람이었겠죠. 제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자신의 도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하세요. 하고 싶은데 왜 고민을 해요. 아는 동생이 ‘정말 하고 싶은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길래, ‘왜 하고 싶은데 안하느냐’고 물어봤어요. (어떤 일은) 부딪칠 때까지 모르는 거예요. 설령 그 일이 잘 안되더라도 배울 점 또한 많고요. (도전하는 것 자체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요.”

영화의 마지막은 월터의 직장인 <라이프>지의 모토로 장식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에릭남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인생의 목적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에릭남 탐구생활>

 

 

‘에이, 벌써 끝이야?’ 아쉬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비하인드 컷! <에릭남 탐구생활>에서는 기사의 흐름상 지면에 담지 못한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Q. 인터뷰만 진행하다가 이렇게 인터뷰이가 됐는데,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A. 제가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계속 질문을 받기만 하니까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요(웃음)

Q. 고등학교 시절, 유튜브에 본인의 노래 동영상을 올렸다
A. 고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만든 추억의 메들리를 유튜브에 올렸어요.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계속 올리다 보니 40개 정도까지 올리게 됐죠. 제 노래를 (다른 사람이) 듣고 반응 해주면 기분이 좋아요.

Q. 대학 때 봉사활동을 매주 15시간 씩이나 했는데
A. 이기적이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봉사활동으로 인해 저도 많이 깨달아요.  ‘내가 가진 게 정말 많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다들 전화기의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잠깐 배고프면 짜증내잖아요. 봉사장소에 가면 불평을 할 수 없게 돼요. 전기나 물 같은, 생활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그곳엔 없거든요.

Q.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유난히 SNS를 자주 이용한다
A. SNS는 무시할 수 없어요.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tool)죠. 저는 팬들과 소통하고 싶고 팬들이 저에게 가수로서, 연예인으로서 원하는 것을 알고 싶어요. 음악을 만들어봤자 저만 좋고 팬들이 싫어하면 소용이 없는 거잖아요.

Q. 김태희급 두상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자신의 얼굴을 평가한다면
A. 에이.(웃음) 전 그저 그런 것 같아요. 한국 와서 살이 많이 빠져서 작아진 것 같은데, 원래는 (얼굴이) 빵빵했어요. 술 많이 마시니까 붓더라고요.

Q. 가장 좋아하는 외국배우로 클레어 데인즈를 꼽았다
A. 미국드라마 <홈랜드>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연기를 정말 잘하세요.

Q. 최근 본 오디션은
A.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3>예요. 감독님께서 연기는 기대 이상으로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한국어 발음이 너무 교포 같다며 떨어뜨리셨죠.

Q. 인간 남윤도는 어떤 사람인가
A. 저는 정말 평범해요. 연예인이 대중들의 어떤 시선을 받게 돼서 특별하게 보일 뿐이죠. 다만 저는 평소에는 굉장히 밝지만, 생각과 고민이 굉장히 많아서 제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에요. 지금 제 옆에 있는 매니저도 분명 제가 피곤할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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