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예술고등학교 김대연

도서관

책은 할아버지였고 도서관은 할아버지의 품 안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 댁의 뒷동산에 위치한 도서관을 찾아 다니셨다.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데 라는 투정을 입 밖으로 꺼낼 때면 할아버지는
“도서관만큼 재미있는 놀이터는 없을 거야. 오늘은 할아버지가 그림이 예쁜 걸로 읽어줄게.”
라고 하시며 어린 나의 투정을 잠잠해지도록 만들었다.
놀이터보다 도서관이 더 재미있다는 말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거릴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도서관의 내부모습이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하여 너무도 신기했고 흥미로웠다. 때문에 나는 어느새 도서관을 재미있는 곳이라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도서관에 가는 것을 즐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셨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내가 가고 싶다고 조를 때면 언제나 흔쾌히 가자고 말해주셨고 내가 엄마에게 혼이 나 기분이 울적할 때에는 먼저 가자고 제안을 하는 할아버지는 나의 소중한 도서관 파트너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가는 도서관에서는 늘 누룽지사탕의 냄새가 났다. 달콤한 냄새보다는 구수하고 중독성이 강한 냄새. 나는 그 냄새를 참 좋아했다. 도서관은 크기가 아담했다. 그래서 도서관 곳곳에서 누룽지사탕의 향이 스며있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냄새는 할아버지의 품 안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그래서 그곳은 아늑했다.
할아버지와 자주 가던 그곳을 가지 않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였다. 할아버지 댁에 방문하는 것조차 시간이 없어 불가능했기에 도서관은 자연스레 내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부를 하다가 화이트를 찾기 위해 책상서랍을 뒤적거렸고 그 안에서 익숙한 향을 맡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수없이 맡아왔던 익숙하고 아련한, 코 끝을 찡하게 만드는 향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에 알 수 있었다. 누룽지사탕.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어 입안에 넣었다.
혀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달지만은 않은 아련한 맛이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해 가슴이 욱신거렸다. 여러 차례의 울렁임이 멈추고 이미 작아져 버린 그것을 단단한 이로 부쉈을 때 나는 또 한번의, 하지만 전과는 다른 울렁임으로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입안에서 나와 할아버지의 도서관이 부숴졌다.
봉지만 덩그러니 남은 책상 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할아버지를 향한 수신호가 나의 귓가에서 웅웅거렸고 이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왔다.
“아이고, 우리 손녀 어쩐 일이야?”
감출 수 없는 흥분으로 높아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눈에 물이 고였고 왜 이제야 연락을 하는지에 대한 후회와 죄송스러움이 밀려왔다.
“할아버지, 우리 도서관 가요.”
도서관은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신 할아버지와 소중한 것에 무심해진 나 일뿐.
도서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낡은 책들의 오래되고 퀘퀘한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왔다.
“할아버지, 누룽지사탕 드실래요?”
나는 할아버지께 누룽지사탕 한 개를 드리고는 나의 입안에도 하나를 넣었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지난 주 토요일, 나는 할아버지가 없이 처음으로 그곳을 혼자 가 보았다. 어릴 적과는 사뭇 다른 그곳의 느낌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시금 누룽지사탕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입안에 품지는 않았다. 다만 발 밑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우뚝 서 있는 책장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세 번째 책상 앞에서 멈추었다,.
<샬롯의 거미줄>
할아버지가 친구 사이를 설명해주시며 읽어주셨던 책.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책을 꺼내 들고는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누룽지사탕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누룽지사탕을 좋아하셨고 그래서 그것을 늘 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다. 때문에 할아버지의 품 에서는 누룽지 향이 났었다. 도서관의 곳곳에서 할아버지의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나를 눈물 나게 만드는 이곳의 책들은 할아버지였고 도서관은 할아버지의 품 안이었다.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음 번에는 꼭 할아버지와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을 펴 보았다. 쥐고 있던 사탕이 녹아 손을 진득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구수한 누룽지 향이 났다. 그 향은 도서관 내부에 아련하게 퍼졌다. 마치 내 가슴에 할아버지가 스민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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