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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청송상경기 나루고등학교 권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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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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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당장이라도 익어버릴 것 같은 더위였다. TV에서, 책에서, 학교에서 무수히 외쳐대도 잘 모르겠던 ‘지구 온난화’가 무엇인지 끝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로 이해했다. 손부채질에 속도를 더했지만 그다지 나아지는 건 없었다. 아, 에어컨이 그리웠다. 냉동실에서 제 몸을 얼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스크림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애초에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것이었으니 그저 참고 걸음을 계속했다. 그나마 희망은 저기 초등학교 너머로 아파트가 조금씩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점검. 두 글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눈동자에는 원망이 가득 찼다. 왜 하필. 왜 하필 오늘일까. 어제였어도 괜찮았고, 내일이라도 괜찮을 건데. 다시 한 번 나는 점검 두 글자를 내 눈에 담았다.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생각을 차분히 하고 나자 얼마 전 거실에서 울려 퍼지던 경비아저씨의 안내 방송이 생각났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1차 점검이었다. 그리고 그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다.
엘리베이터 점검이라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자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온 몸은 땀을 한 바가지는 부은 듯하고, 앞머리는 엉망이 됐지만 그럼에도 기운 내서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집에 가서 쉴 생각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아까보다 더 집에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쭈구리고 앉았다. 그나마 찬 기운을 품고 있는 벽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힘들어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계단으로 올라가자.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한 발자국 떼자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습기 찬 공기가 찝찝했다. 이미 온 몸이 땅으로 젖었는데 계단까지 올라가면 더할거다. 기세 좋게 했던 각오는 계단 앞에서 그렇게 부서졌다.
다시 찬 벽에 기대 쭈구려 앉았다. 잠시 동안 계단을 노려보다가 한숨과 함께 시선을 거두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찾은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더워 죽겠는데, 엘리베이터 고장이야.ㅠㅠ]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며 액정을 무의미하게 두드렸다. 덥고 습기 찬, 불쾌지수 높은 날이니까라고 무의식 중에 이 현실 도피를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오직 나의 편함을 위한 합리화는 성공적이었는지 어느 사이에 싱싱하다는 한가로운 소리나 내뱉으며 액정만 잔뜩 두드리고 있었다.
[계단으로 가면 되잖아.]
익숙한 진동음과 함께 수신된 무자는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귀찮고 힘들어.] 나 힘들다는 약간의 투정을 섞어서 답장을 보냈다. 이번에는 비교적 빠르게 그 답장이 도착했다.
[숨 쉬는 건 안 귀찮냐?]
순간 울컥했다. 그저 공감해달라는 것뿐인데 왜이리도 매정한지. 꼴도 보기 싫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머리를 벽에 기댔다. 찬 기운에 조금은 열이 식는 것도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점검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 눈에 와 콱 박혔다. 점검은 아마 6시나 되어야 끝난다. 다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곧 4시다. 시선이 자연스레 친구의 문자로 향한다. 내가 그렇게 한심한가. 가만히 앉아서 나를 되돌아 본다.
엘리베이터 점검이 끝나려거든 2시간은 족히 남았는데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힘들어 그냥 쭈구리고 앉아버렸다. 생각해보니 우습기도 하겠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바로 코 앞인 집도 못 간다. 나는 편한 길이 아니면 가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솟구치는 자괴감에 잔뜩 작아져 버려서는 나에게 물었다.
“정말 숨 쉬는 건 안 귀찮니?”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거였다. 그런데도 고작 그 것이 힘들닫고 칭얼거리고, 어리광 부리고 있었다. 편한 것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것을 당연하게만 느껴왔다. 그래서 이렇게나 작은 어려움마저도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만 치고 만다. 그래봤자 바뀌는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언제나 편하게 나를 이동시켜 주는 두 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두 발은 나에게 멀쩡히 붙어 있었다. 되려 저것은 때때로 족쇄였다. 그것의 편함이 내 눈을 가려 더 힘든 길을 못보게 만들었다. 인간의 간사함은 더 힘든 길을 보아도 못 본 것처럼 굴었다.
다시 정면을, 계단을 보았다. 알아버리고 난 이상 쭈구리고 앉아 있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언제까지 편한 길만 쫓을 수는 없는 거였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공기는 습했고 간간히 더운 바람이 불어 왔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올라가면 분명 덥고, 땀나고, 다리도 아플테지만 집에는 갈 수 있다. 분명 힘든 길이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 보다는 낫다. 적어도 무언가를 하고는 있으니까. 힘은 들지라도 바뀌기 시작할 테니까. 가만히 앉아있어도 변하는 것은 없지만 계단을 오른다면 집에 갈 수 있다. 땀이야 흘리겠지만 그건 집에 가서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으로 충분하다. 나는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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