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내 머릿속은 수학공식과 화학구조식들로 가득 차있었다. 항간에서 우스갯소리로 이과생들은 나뭇잎을 볼 때 잎의 아름다운 색을 보지 못하고, 광합성부터 떠올린다고 했는데, 그게 딱 나였다. 십 수 년 째 공부를 해왔지만, 내가 도대체 왜 이공부를 해오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그저 남들 하니까, 좋은 대학
에 가야하니까 맹목적으로 공부를 해왔었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는 너무나도 다양한길 앞에서 내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갈피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방황은 스물다섯 살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지속돼 왔다.

 하지만 지난 여름방학 때 정말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된 청년 캠프에서 내게 정말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인문학’이었다.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아우르는 학문인데, 이보다 더 인간적인 학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지 모를 부족함을 메꾸기위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봐왔던 것도 다 인문학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고 그런 문화생활을 즐기다가, 인문학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나서 그동안의 행동들에 대해 되돌아보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게 인문학이 무엇인지 알려준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이곳에 이렇게 글을 기고한다. 인문학을 통해서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인문학은 그 행복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훌륭한 도구의 역할을 해준다. 나에게 인문학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이곳저곳 다쳐 씁쓸해져 가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달콤한 케이크와도 같다.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의 말처럼 잘하건 못하건 인문학적으로 생각해보고, 행동하다보면 자신도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약학 12 권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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