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상
오늘 날씨는 맑음
강선주(관양고등학교)
나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 살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칙칙하고 더러운 냄새로 잠 한숨 잘 수 없었고 햇빛이 쨍쨍거리는 날이라 해도 지하 방에선 비로 인한 칙칙한 냄새만 풍기지 않을 뿐 변함없이 어둠이 가득했다. 비가 오는 날, 그것이 지나가는 소나기면 다행이지만 며칠씩 쏟아지는 장마이면 집안으로 물이 차올라 몸을 피하는 일이 급급했다.
하루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지하 방’ 때문이었다. 늘 어둡고 쾌쾌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가끔 쥐도 나오는 집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자체가 무섭고 두려웠다. 그런데 그런 내가 용기를 내어 친구를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우리 집 문을 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울어버렸다. 문을 열었던 그 순간 문 앞에 숨어있던 쥐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와 친구의 앞으로 지나갔던 것이었다. 찍찍 소리와 함께 바람같이 그것은 사라졌지만 친구의 울음소리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멀어지고 또 다시 들려옴을 반복했다. 친구는 주저앉아 울었고 나는 그 친구의 등 뒤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쥐가 나와 놀랬지? 괜찮아, 저것도 오래 보면 꽤 귀여운 면이 있어. 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친구는 멈추지 않고 울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옷소매를 끌어당겨 쓱 닦아내더니 다시 엉엉하고 울었다. 10분. 아니, 그 보다 더 오래일 수도 있다.
나는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꺼내어 친구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런데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몇날 며칠 씻지도 않은 더러운 사람이 자신의 어깨를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친구가 돌아가고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토해내 버렸다. 친구가 주저앉아 울어버린 그 계단 모퉁이에서 나도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싫었고 아빠가 미웠다. 빛 하나 없이 촛불의 미세한 빛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생활도 지쳤다. 가끔 초라도 없는 날에는 감각만으로만 움직여야 하는데 난 너무 어려서 이 곳, 저 곳에 부딪쳐 그 만큼 상처도 늘어났다.
그 날 오후, 지친 어깨를 내보이며 엄마와 아빠가 집으로 들어왔고 나는 부어버린 눈을 손으로 애써 가려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힘없는 내 목소리에 놀라 엄마가 내게 다가왔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 그건 아닌데…….”
나는 말끝을 흐리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엄마는 왜 그러느냐며 재촉하듯 내게 물었고 나는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용기 내어 말했다. 내가 13년 동안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 해 가슴으로만 삼켰던 그 말을.
“나 이사 가고 싶어. 빛도 없이 더듬더듬 찾아가는 거 싫어. 창문도 없어서 비가 오는지 햇빛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장마라도 오는 날에는 기약 없는 청소와 빨래도 지긋지긋 해. 이사 가자, 응?”
나는 그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나는 부모님의 가슴에 칼 보다 더 날카롭고 바늘보다 더 뾰족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엄마의 울음소리는 칙칙한 지하 방에 맴돌았고 아빠의 다독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사실은 늘 있던 어둠이었지만 그 날은 어둠이 더 크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떴을 때 눈이 팅팅 부어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죄송한 마음과 밀려오는 후회에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밥을 먹지 않고 줄행랑치듯 집에서 빠져 나왔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아이들이 와있었지만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가고 붙잡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자 초조해졌다.
“너네 집에 쥐 산다며?”
교실에서 시끄럽기로 유명한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놀리듯이 말했다. 그러더니 종이와 연필을 꺼내 쥐를 그려달라고 말 하는 것 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밀쳐내고 가방을 챙겨 학교에서 나와 버렸다. 아침에 마음속에 자리 잡힌 죄송한 마음은 어느 순간 사라져 증오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학교를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 문을 열면 순간 밝은 빛이 쏟아져 내리길.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 쉬고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나 현실은 비참했다. 여전히 어두워 빛 하나 없는 칙칙함과 코를 찌르는 쾌쾌한 냄새는 변함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신발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맞은편 벽에 큰 종이 하나가 붙어있었다. 몸을 일으켜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 종이 위에는 서툰 솜씨로 빨간색 해와 하늘색 구름, 초록색 풀, 뛰어노는 여자아이 그리고 파란색 창문이 그려진 도화지였다. 그리고 옆에는 엄마의 편지도 붙어있었다.
「딸아, 엄마가 미안해. 돈 많이 벌면 그땐 우리 딸이 원하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 진짜 창문을 사주진 못하지만 엄마가 선물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창문을 보고 우리 힘내자. 이 창문을 보면 늘 맑아서 장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리 예쁜 딸, 사랑해.」
나는 방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10년 치 눈물을 쏟아 내었다. 엄마의 사랑을 가슴에 묻고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오늘 날씨는 맑음. 파란 창문에 뜨거운 태양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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