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내에서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어느 콘텐츠에서든 동성애 코드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동성애 드라마’‘동성애 영화’ 만 검색해도 셀 수 없는 목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동성애라는 ‘라벨’이 붙어진 콘텐츠를 보면 동성애는 동성애다. 그런데 그 ‘같은’ 성이 대부분 남성임을 알 수 있다, 유독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에 대한 동성애 콘텐츠만 많은 것이다.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을 다룬 콘텐츠를 찾기는 쉽지 않다. 동성애 코드 중 ‘남성’ 코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TV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우선 TV드라마를, 그 중에서도 장편 드라마를 들여다 보자.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직접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이용한 TV 장편 드라마에는 1995년 처음 드라마에 동성애를 등장시킨 <째즈>와 2010년 방영된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롯해 최근 논란 속에 방영 중인 <오로라 공주> 등 많은 작품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게이가 동성애의 주체로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간접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사용한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 <미남이시네요> 그리고
<성균관 스캔들>까지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남장여자를 하는 역할로 나타났다. 남장여자를 작품 전면에 등장시켜 남성간의 동성애 코드를 연출한 것이다. 여성이 남성으로 변장하는 설정은 한 때 드라마 제작에서 유행으로 자리 잡을 정도였고, 남장여자가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연예인들이 거론되곤 했었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인 것처럼 꾸미는 여장남자 역할은 드라마에서 좀처럼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게이에 비해 레즈비언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현상은 단막극에서도 드러난다. 단막극은 장편 드라마에 비해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이 적고, 전통적으로 신인PD들이 많이 연출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재, 그리고 소재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의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따라서 드라마로 방영됐을 때 위험부담이 큰 소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동성애는 단막극의 단골 소재가 됐다. 대표적으로 1999년 방영된 KBS 단막극 <슬픈 유혹>과 <연인들의 점심식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막극 작품들 역시 게이가 주인공이거나 주변인물로 등장한다, 레즈비언을 다룬 작품은 보기 드물다. 그나마 2011년 방송된 <클럽 빌리스트의 딸들>이 레즈비언을 전면적으로 다룬 유일한 드라마다. 단막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레즈비언을 다룬 <클럽 빌리스트의 딸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영방송에서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다시보기를 중지하라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결국 KBS측은 드라마 홈페이지의 온라인 다시보기를 중단했다. 현재까지도 KBS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해당 드라마의 다시보기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 위주, 흥행성 낮아
그렇다면 스크린의 경우는 어떨까. 스크린 사정은 TV프로그램에 비해 조금 나은 편이다. 레즈비언에 대한 프로그램 자체가 희소한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는 여성주의 미디어공동체인 ‘연분홍치마’가 있고,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창피해>, <너의 결혼식, 나의 결혼식>, <여우비>, <코코아> 등 여러 레즈비언과 관련한 작품이 있다. 올해 4월에는 김효진과 엄정화 등 유명 배우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여성 퀴어 영화 <끝과 시작>이 개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게이 관련 영화와 차이점은 바로 레즈비언 관련 영화가 독립영화 시장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끝과 시작>을 포함해,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 모두 독립영화 혹은 저예산 영화로 제작된다. 또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게이는 독립영화 시장은 물론이고 상업영화 시장까지 그 영향력이 높아져가고 있다. 주진모와 조인성의 동성애 연기가 이슈가 된 <쌍화점>은 역대 한국영화 중 흥행 성적 32위를 기록할만큼 흥행 영화로 자리잡았다. 또한 남성 동성애 코드가 등장하는 <왕의 남자> 역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독립영화 시장에서도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바로 대표성이다. 동성애에 대한 대표적인 독립영화로는 대부분이 <로드무비>, <후회하지 않아>, <친구사이?> 등을 꼽는다. 그런데 이들 영화 모두 게이를 다룬 영화다. 대표적인 동성애 영화에 레즈비언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가 드문 것이다.

◆레즈비언 콘텐츠가 적은 이유
콘텐츠 속에서 레즈비언의 모습을 상대적으로 찾기 어려운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우선 여성의 커밍아웃 비율이 남성의 커밍아웃 비율이 더 낮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사무국장 홀릭(Holic)은 “우리 사회가 남성들 보다 여성들에게 결혼에 압박을 더 심하는 것 같다”며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남성과 결혼하지 않게 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커밍아웃 하지 않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사회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국내 여성들은 결혼 후 경제적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결혼한 후 커밍아웃을 하고나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부족한 여성들은 경제적 이유로 인해 사회적 활동을 못하게 되거나, 아예 원천적으로 커밍아웃을 포기하게 돼 결국 사회적으로 노출되는 레즈비언이 적어진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미디어 콘텐츠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성애 콘텐츠 속에서 게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남성과 차별되는 여성의 특성에서 찾기도 한다.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의 한 관계자는 “보통 여성들끼리 거리낌 없이 팔짱을 끼고 손을 잡는 행위를 아무렇지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여성들 간의 사랑은 성적지향과 연결된 문제라기보다 동성친구 사이의 우정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며 “동성애 콘텐츠 속에서는 아무래도 성적인(sexual) 측면에도 초점을 맞추게 되므로 콘텐츠 속에서 동성애를 나타낼 때는 레즈비언보다 게이의 모습이 보다 많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