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청송
길거리에 놓인 벤치에 사는 여자 거지
김남희(중앙여자고등학교)
나는 지금 손과 발이 묶여 있다. 옆에서 야생의 습성을 절대 버릴 수 없는 늙은 개가 울부짖는다. 수 없는 늙은 개가 울부짖는다. 젖이 축 늘어져 새끼를 한 대 여섯은 낳았을 듯 싶다. 한적한 이곳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라고는 말 없는 나무들과 늙은 개, 그리고 우습게 묶여있는 나 자신 뿐이다. 냉한 밤공기가 내 폐 속을 비웃듯이 휘젓고는 빠져나간다. 옅은 기침을 해 보았지만 아까 너무 많은 소리를 질러서인지 쇳소리만미 나왔다. 갑작스레 봉변을 당한 나 자신조차도 구체적인 상황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을 할수록 내 손목에 감긴 줄은 점점 더 죄여 올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무섭다. 아니, 이것 역시 진심은 아니다. 내 진심은 어서 빨리 누구라도 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나를 이 꼴로 만든 빌어먹을 미친 자식이라도 상관없다. 새로 갈겠다는 낡은 아스팔트 위에 낡은 벤치. 나는 지금 그 벤치 위에서 황량한 달빛만을 의존한 채 눈만 떴다, 감았다 하고 있다.
나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다. 장애인만 보면 수근대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나를 거들떠 볼 필요가 없다. 때문에 그 사람들은 (불특정한 다수)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난 장애인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가능성 전혀 없는 웃기는 생각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원한 살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말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본래 타인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뛰는 행동 벗이 늘 조용히 살아왔다.
그렇다고 나에게 이런 장난을 칠 만한 그 누군가가 내 주위에 있다는 말인가.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이건 정말 터무니없는 발상이며 유치하고도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이성도 마비되어 가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하나씩 따져보기 위해 머리를 더 굴렸지만 젠장할. 왠지 더 답답해져 욕만 나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서 퇴근을 했고 사람 붐비는 지하철에 탔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고 창 밖을 스쳐가는 정체불명의 시꺼먼 어둠에만 집중했다. 몇 분만 더 걸으면 집이 보이는 고장 난 가로등 밑의 골목길, 다다닥, 뛰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무언가 딱딱한 것이 내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심하게 울렁거리는 어지러움만 기억한 채 나는 바로 쓰러졌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진동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지 안까지 뒤져갔다는 것일까. 만만하게 생긴 나를 지목한 ‘깡패’ 등으로 결정내리니 슬슬 배도 고프기 시작한다. 시간도 궁금했고 피가 맺힌 것인지 뒷머리도 따끔거렸다. 이제 슬슬 지쳐간다고 생각했다.
“배 안 고파요?”
순간 귀신인 줄 알았다. 길게 내린 머리카락 속에서 오직 눈만이 보인다. 말 그대로 영롱하게 빛나는 눈을 가진 이상한 여자다. 점점 굳어져 가는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다. 여전히 고프던 배는 이제 내장이 꿈틀거리며 위액을 받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잠깐만 기다리라는 여자의 뒷모습을 멍한 기분으로 바라봤다. 요새 어린 학생들이 많이 입는 청바지와 만화그림이 그러져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감상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저 귀신같은 여자는 분명히 묶여있는 모습을 봤을 텐데……. 인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대뜸 한다는 말이 배 안 고프냐니. 속으로 어이없어하는 내 자신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어서 빨리 여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여자는 정말 검은 봉지에 먹을 것을 잔뜩 사와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순간 비누냄새가 나서 여자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새 또 물기가 맺혀있다. 참 황당한 여자로구만. 여자 몰래 슬며시 웃고는 다시 자세를 바꿔 여자 쪽으로 등을 돌렸다.
“학생, 이 끈 좀 풀어줘요.”
“난 학생 아니예요.”
그 한마디 내뱉고는 여자는 빵을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난 황당할 뿐이었지만 다시 자세를 잡아 등을 내보였다.
“여하튼 이것 좀 풀어줘요. 보통은 다 그렇지 않나?”
여자는 그 말을 듣더니 한참을 숨 넘어 갈 듯 웃는다. 나는 입을 조금 벌리고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거 내 솜씨야, 이 양반아.”
내 등허리를 타고 땀방울이 흐르는 것 같아 순간 몸서리를 쳤다. 난 어느새 자세를 고쳐 여자 얼굴 쪽으로 고정시킨 다음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여자는 빵 한 개를 다 먹은 다음에야 내 눈을 마주한다.
“내가 몇 살인 줄 알아요?”
나름대로 학생 취급 받았던 거시 기분 나빠서였을까. 나는 무슨 말이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그저 노려보는 수밖에 없다. 여자는 손목에 매고 잇던 고무줄을 빼고는 자신의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는다. 훤히 드러난 얼굴은 정말 예뻤다. 아까 무섭게 생각했던 빛난 눈동자는 다른 이유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무표정이던 여자는 나에게 웃음을 부여주고는 또 입을 열어 낭랑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나 스물여섯이예요. 대학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 내가 여기서 살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 줄 알아요?”
스물여섯이라는 말에 그랬구나, 싶었지만 ‘여기서 산다’라는 말은 또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팔트 공사를 앞 둔 이 길의 주위에는 조그마한 저택도, 하물며 판자 집도 없기 때문이다.
“웃기는 소리 말아”
어느새 반말을 지껄이게 된 나를 힐끗 보더니 여자는 웃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풍경을 감상하듯이…….
“한 6개월 됐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던데요. 이 벤치가 내 집이예요. 풍경 괜찮고 자는데 불편한 데 없으면 됐지, 뭘 더 바랄까.”
사정이 있는 듯 했다. 미친 여자가 아닌 이상 이 곳에서 먹고 잘 이유가 없지. 남자한테 차이기라도 했나.
“전에 배우를 했었어요.”
어쩐지 예쁘더라니.
“근데 그게 어떤거였는 줄 알아요? 남자 손 타는 걸 비디오로 찍어 내보내 돈 벌어먹는 회사에서 자란 거예요. 하, 빌어먹을. 그래도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라도 꾹 참았었는데.”
난 그대로 생각했다.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가요, 아가씨.
“나 내쫓은 사장하고 똑같이 생겨서 착각했어요. 순간 머리가 돌아서 아무거나 들고 내리쳤는데……. 그게 각목이라 그나마 다행이지. 안 그래요?”
이제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어느 새 날아 든 비둘기들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렇게 찾았던 살아있는 것들이 이 여자가 오니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저씨 일어나면 얘기라도 할까 해서 안 풀었어요. 도망 못 가게 묶어논건데 많이 아파요?”
“알았으니까 빨리 풀기나 해.”
여자는 이번에는 우유를 뜯더니 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을 한 번 훑고 또 다시 입을 연다.
“그래도 그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여기에서 살게 됐어요. 벤치에 한 여자 거지가 살고 있다, 고 하면 동네 꼬맹이들이라도 찾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운도 지지리 없지. 하필이면 장소를 여기로 잡아서 고생만 해요. 사람도 고픈지 오래됐구요.”
“그럼 지금이라도 장소 바꾸면 되지 않아? 사람 많은 곳으로…….”ㅋ
여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쓰레기를 봉지 속으로 같이 넣고는 벤치 아래에 둔다. 그리고 내 등을 돌리더니 줄을 풀기 시작했다. 꽉 묶었었는지 한참이 지나 겨우 풀었다. 풀리자마자 화 좀 내볼까, 했지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방은 벤치 아래에 있어요. 휴대폰 바지에 넣으면 배겨서 아프니까 같이 넣었구요.”
속을 알 수 없는 여자다. 얼른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꺼져있어 문든 드는 아내 걱정에 바삐 걷는다. 뒤에서 여자가 외친다.
“아무리 낡은 몸과 마음이라도 지조는 있어요! 저도 여자잖아요? 사람들 이 곳에 몰려와 유명해질 때까지 난 아무데도 안 갈꺼야!”
벤치 위에 사는 여자라……. 그래, 네 말대로 거지랑 다를 바가 없는데 왜 굳이 그러려고 하지? 늦은 보답으로 아내에게 네 얘기를 해줄게. 조만간 아줌마들 사이에 네 얘기가 오르 내릴꺼다.
아까보다 훨씬 더 밝아진 달빛을 받으며 나는 어느새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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