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매화
<잃어버린 밤>
김경희(영신여자고등학교)
내 동생 K에게
K야. 여름감기에 걸려버린 너는 어젯밤에도 일찍 잠이 들었더구나.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살짝 너를 깨워봤지만, 역시 소용이 없더라. 너는 종종 “언니는 도대체 어떻게 밤을 새는 거야?”하며 신기해했지.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내 또래들보다 밤을 많이 새는 편이니까.
밤을 새고 나면 엄마에게 들킬까봐 아침 해가 밝아올 때 즈음이면 밤새 나와 함께 달아올라준 형광등을 끄고 침대로 기어들어가서 자는 척을 하곤 했어. 엄마는 내 건강이 염려되어서 화를 내시는 것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밤을 새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
밤에 무엇을 하냐고?
밤만 되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단다. 가끔은 숙제 때문에 억지로 새우기도 하지만, 대개는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낼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새게 돼. 어릴 때 나는 밤에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았어. 다른 사람들이 자는 동안 혼자 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것은 정말 두근거리는 일이었지.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마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와 『삼국지』일 거야. 나는 밤마다 제제가 되어 밍기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루이스와 동물원 놀이도 하고 사랑하는 뽀르뚜까 아저씨의 죽음에 슬퍼하며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곤 했지. 또 한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삼국지』를 읽으면서 관우와 제갈량을 사모하기도 했어.
내가 가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너는 당연히 알고 있지? 나의 그 그림들은 대부분 그 까만 밤을 통해 나온단다. 가끔 그려놓고 마음에 들면 물감으로 색칠하기도 하고 스캔을 통해서 포토샵으로 꾸며보기도 하지. 가끔 작업이 하룻밤 사이에 다 끝나지 못하고 이틀,. 사흘로 이어지는 밤은 내게 잠을 자는 시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게 밤을 새워 그림을 완성했을 때의 그 뿌듯함! 그 뿌듯함으로 인해 나는 부족한 잠도 잊게 된단다.
밤동안 나는 온종일 생각만 할 때도 있어. 그럴 땐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그리곤 해. 먼저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생각해. 그리고 그것은 한 달 동안의 계획 짜기로 이어지고 그렇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대학생이 된 내 모습을 그리게까지 된단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내가 그 4년이라는 시간동안 다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야. 그래서 그 많은 것들을 상상으로 펼쳐본단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는 사회인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쓰고 싶은 책도 쓴단다. 그렇게 내 미래를 그리고 나면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말겠어.’라는 다짐을 하게 되지.
K야. 네가 보기엔 나는 단지 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그래. 나는 밤을 잃어버리고 있어. 하지만 내가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밤’일 뿐이야. 나는 그 ‘밤’을 잃어버리고 대신 내가 더 성숙해지는 시간을 얻는단다. 흰 종이에 싸인 연둣빛 포도가 햇빛을 잃고 풍성한 보랏빛 포도송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야.
나이팅게일이라는 새가 있대. 그 새는 밤에 울어서 나이팅게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구나. 그 새가 밤에만 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걸까? 그건 바로 아름다운 그 새의 울음소리가 밤에 더 잘 들리기 때문이야. 그 새는 밤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거야.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과 감수성을 키우고, 내 생각을 그림으로 나타내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면서 밤에 나는 내 자신을 키우고 가꾸어 나간단다. 밤을 잃어도 빛나고 있는 나의 별은 잃지 않아. 그러기에 나는 고단하지 않게 밤을 새울 수가 있단다.
K야. 밤을 새우는 나의 모습이 네게 이제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구나. 더 이상 쓸데없는 일로만 보이지는 않겠지. 언제 우리 함께 밤을 새우며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고 서로 다독여 주자꾸나. 그리고 잃어버린 밤이 섭섭해 하지 않도록 그 꿈을 이루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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