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민승지 기자(alstmdwl@naver.com)

남녀공학 대학에서는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라는 서로 다른 학생 자치 기구가 존재한다. 총학생회가 곧 총여학생회인 본교 학우들에게는 낯선 이름이겠지만, 총여학생회는 남녀공학 대학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데 역할을 해온 곳이다. 그러나 최근 캠퍼스에서 총여학생회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고 한다. 남녀공학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여학생회 존폐논란, 숙대신보가 알아봤다.

 

◆ 대학가에 스며든 여성주의

총여학생회는 남녀공학 대학에 있는 학생 자치 기구다. 남녀 모든 학생들이 피선거권과 선거권을 갖는 총학생회와는 달리 총여학생회는 여학생만이 피선거권과 선거권을 갖는다.  

총여학생회는 국내에 여성주의 바람이 분 1980년대에 탄생했다. 여성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며 대학들도 이에 영향을 받게 됐다. 본래 여성조직은 총학생회나 민주화운동조직에 소속돼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1980년대 이후 그로부터 독립해 하나의 자치 기구인 총여학생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여성권익신장과 학내 양성평등을 구현한다는 목표아래, 홍익대학교(1986년), 연세대학교(1988년) 등의 남녀공학 대학에서 1980년대 총여학생회가 출범했다.

◆ 위기에 빠진 총여

총여가 등장한지 20여년, 대부분의 총학생회가 40~5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닌 총여학생회가 현재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서울 주요 대학 중 총여학생회가 있는 학교는 연세대, 홍익대 등 5곳에 불과하다. 고려대와 서울대는 이미 총여학생회가 해체됐다. 이은호 서울대 총학생회 부회장은 “1993년에 들어서면서 총여학생회장 후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해체됐다”며 “소위 ‘분리주의’적 경향, 즉 총여학생회가 있음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는 것을 경계한 측면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총여학생회의 해체 배경을 밝혔다.

총여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없어 10년 째 총여학생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뒀던 건국대학교는 올해 4월, 학생대표자회의를 열어 투표를 통해 총학생회 산하 여성국을 두고 총여학생회는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총여학생회가 존재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총여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이어서 존재 위협을 받는 대학은 건국대뿐만 아니다. 서울시립대는 2002년 이후 총여학생회장이 없어 올해 총여학생회 해체 표결을 하려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논의가 미뤄진 경우다. 올해 4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실시한 총여학생회 보궐선거에서도 출마한 후보가 없어 총여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이에 경희대학교 학보사 대학주보에서는 총여학생회 존폐에 대한 학우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총여학생회장이 있는 대학 또한 총여학생회 존폐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7년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는 ‘극단적 페미니즘과 비민주적 운영방식, 여학생들과의 괴리’ 등의 이유로 폐지위기를 겪었다. 그 후 2010년 연세대 학보사 연세춘추의 사설에 총여학생회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실리는 등 존폐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홍익대학교 또한 지난해 학생들을 상대로 총여학생회 존폐여부 투표를 실시했다.

◆ 총여는 왜 외면 당하는가

여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예방에서부터 월경으로 인한 불편함을 덜 수 있도록 생리 공결제* 이용을 권장하는 등, 총여학생회는 학내 여학생들의 복지, 권리 그리고 양성평등을 위해 존재해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총여학생회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일까.

총여학생회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총여학생회 운영비를 내는 주체와 총여학생회 활동으로 혜택을 입는 자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여학생회는 남녀 모든 학생이 납부한 학생회비 중 일정부분을 예산으로 사용한다. 현재 홍익대 총여학생회는 외부 기업에 후원을 얻어 행사를 진행할 때를 제외하고 학생들이 각 학기에 납부하는 학생회비의 6.8%를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다. 한양대 총여학생회 또한 학생들이 납부한 학생회비의 일정부분을 예산으로 분배받고 있다. 납부된 학생회비를 바탕으로 총여학생회는 자궁경부암과 같은 여성 질환의 예방 접종 등 여성 건강부문과 여학생 휴게실 관리 등 여성복지 부문, 학교 주변 여성 자취생들의 안전관리 등 여성안전 부문과 같이 주로 여성들을 위한 활동 및 사업을 진행한다.

총여학생회가 비판받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남녀 함께 운영비를 부담하는데도 총여학생회가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이 혜택을 입는 활동만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유 모 (한양대·22)씨는 “내가 낸 학생회비가 왜 여학생들의 예방접종 비용으로 사용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여성권익이 낮았던 80년대에 조직된 기구가 현재에도 굳이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본교 박진석(아시아여성연구소 소속) 교수는 “오늘날 대학 내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의 입지 및 권익이 매우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며 “별도로 총여학생회를 두기 보다는 총학생회 내에 여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산하기구를 마련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형렬(건국대·22)씨는 “여성의 권리가 어느 정도 신장된 이 시점에서 총여학생회의 필요성 을 잘 못 느껴서 최근 총여학생회가 총학생회의 산하 기구로 들어가게 된 결정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여학생의 권리보장을 위한 운동 및 사업을 추진하는 총여학생회의 역할은 총학생회 내에서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경희대·25)씨는 “올해 서울캠퍼스의 총여학생회장 보궐선거에 등록한 후보자가 없다는 것 자체가 여학우들의 인권이 총여학생회가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다는 방증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내 성폭력 사건 등에 대한 총여학생회의 대응 또한 학생들이 총여학생회 존재에 대해 회의를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성균관대학교 학보사 성대신문에 따르면, 2006년 3월 당시 성균관대 총여학생회는 성폭력 사해자의 실명과 학번, 소속 학과 등의 신상을 적은 대자보를 게시했다. 총여학생회 측에서는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신상공개를 요청했기 때문에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고 해명했으나 학생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도 성폭력 사건으로 입방아에 올랐었다. 2007년 당시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는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여성에게 성폭행을 가한 혐의로 피소됐다. 총여학생회는 학교가 조취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해당 교수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학교 측은 교수를 해임했다. 그러나 피해자로 알려졌던 여성이 해당 교수에게 앙심을 품고 조작한 사건임이 밝혀졌고 2009년 검찰은 교수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따라 총여학생회의 과잉 대응 논란이 일어났으며 무혐의 처분 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이 어졌다.

  학생들의 무관심도 총여학생회가 위기를 겪는 이유 중 하나다. 나선예(건국대·22)씨는 올해 총여학생회가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재편된다는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총여학생회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남자 친구들은 물론 여자 친구들조차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 총여 존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총여학생회 폐지에 대한 논란 속에서도 총여학생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있다. 총여학생회가 총학의 산하기구로 존재하게 되면 총여학생회가 진행하는 수준에 준하는 업무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자희 홍익대 총여학생회장은 “2009년과 2010년 총여학생회장이 없어 2년 동안 총학생회 산하의 여성국이 총여학생회의 역할을 대신했던 적 이 있었다”며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은 홍보 부족으로 접종자 수가 적었고 가격할인도 거의 되지 않은 채 진행됐다. 또한 여학생휴게실 관리도 부실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여성권익이 많이 향상돼 더 이상 총여학생회가 필요없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다. 김다예 한양대학교 총여학생회장은 “이전에 비해 사회가 (여성과 남성 간 차별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성차별과 폭력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축제기간에는 비일비재하게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강의실 내에서도 교수와 다른 학생들에 의해 여성 비하적 발언이나 농담들이 오가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양자희 홍익대 총여학생회장 또한 “현재도 캠퍼스 내에서 여자화장실 몰래카메라 사건과 변태 출몰 등을 비롯해 성 관련 사건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밝혔다. 왕복근(경희대·25)씨 는 “총여학생회가 여성의 권익 향상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부당한 성차별이 없는 학내 환경을 꾸리고자 하는 총여학생회의 존재목적은 현재에도 충분히 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총여학생회,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20여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총여학생회는 존폐의 기로에 섰다. 총여학생회는 이대로 폐지돼야 하는 것일까. 홍익대 총여학생회장인 양자희씨는 “초기의 총여학생회가 여성인권신장을 목적으로 설립됐다면 현재의 총여학생회는 이전의 총여학생회와는 다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불만을 갖는 사항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반영해 총여학생회 활동의 방향을 수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9일자 중앙대학교 학보사 중대신문의 <다양한 복지 사업과 적극적 홍보 필요>기사에서 이나영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는 “총여학생회가 생물학적 여성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젠더질서에 관한 문제를 다뤄야한다”며 “남녀 모두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일반적 인식을 개선하고 실천의 변화를 이끌어야한다”고 말했다. 과거 강한 남성중심사회에서 점차 평등한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총여학생회도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춘 활동을 넘어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희 홍익대 총여학생회장은 “총여학생회장으로서 총여학생회는 언젠가 꼭 없어져야할 기구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그 시점이 이러한 역할을 할 기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리공결제: 여학생의 건강권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서 생리때문에 강의에 결석을 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대학 중 경희대, 한양대 등 10개 대학 정도만이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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