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는 헤밍웨이가 즐겨마신 칵테일 모히또가, 아일랜드에서는 위스키와 커피를 섞은 커피 칵테일이 유명하다. 각 장소에는 그 곳을 대표하는 술들이 있듯이 국내의 각 대학가에도 명물이라 불리는 술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수많은 종류의 술이 존재하는 대학가 술들의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굳건히 대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곳이 있었으니. 바로 고려대학교의 유자주와 본교의 꿀동동주가 그 주인공이다. 숙대신보가 맛 본 두 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5년의 전통, 고려대 앞 유자주

고려대학교 명물이라는 유자주를 맛보기로 한 것은 8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이었다. 유자주를 맛 볼 수 있는 가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8월 말이지만 약간 붉은 빛이 돌았을 뿐 주위는 아직 환했다. 술 마실 시간 치고는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저녁식사 시간에 갔던 주점이 텅 비어있어 무안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부디 한 테이블이라도 있기를 간절히 빌며 어색하게 2층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자리를 둘러본 직원은 2층엔 자리가 없으니 위층으로 올라가야한다고 말했다. 보통 술집의 피크타임이 저녁을 먹은 후인 8~9시 이후임을 생각하면 낯선 풍경이었다.

도착한지 30분 정도가 흐르자 위층도 반 이상이 꽉 찼다. 대부분의 테이블에는 유리병에 담긴 유자주가 놓여 있었다. 유자주는 가게 주인인 임정택 씨가 개발한 술로서 탄산수와 유자청을 소주와 함께 넣어 만들어진다. 유리병 바닥에 노란 빛을 띠는 것이 바로 유자주에 들어가는 유자청이다. 유자주와 함께 나오는 긴 스푼으로 유자주를 바닥에 가라앉은 유자청 과 술을 잘 섞으면 유자청 자체의 식감도 느낄 수 있다.

 특허로까지 출원됐다지만 그것만으로 고대를 대표하는 술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주점이 밀집해 있는 고려대 앞에서 유행에 민감한 대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유자주의 매력은 무엇일까. 소주의 씁쓸한 맛이 싫어 소주칵테일 종류를 많이 마신다는 김병관(고려대‧22)씨는 “술 맛이 나면서도 씁쓸하지 않은 것”을 유자주의 매력으로 꼽았다. 소주의 씁쓸함을 없애는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머뭇거리던 임씨가 “비법의 70%만 알려 주겠다”며 밝힌 비법 은 다름 아닌 숙성기간이었다. “파인애플 주나 요구르트 소주와 같이 소주와 섞어 만든 술들의 대부분은 주문을 받으면 바로 섞어 손님상에 내기 때문에 소주의 맛이 살아있어 끝 맛이 씁쓸하죠. 유자주의 끝 맛이 씁쓸하지 않고 깔끔한 이유는 바로 하루정도 숙성기간을 갖기 때문이에요” 하루정도의 기간 동안 소주와 유자청 그리고 탄산수를 섞은 술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씁쓸한 소주의 맛과 달콤한 유자청의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의 술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유자주를 마시고 있는 풍경을 지켜보다 각각의 테이블의 공통점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모두 같은 안주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김치떡볶이가 그 주인공인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맛이란다. 달콤한 유자주가 살짝 매콤한 김치떡볶이가 만나 최상의 맛 궁합을 보이는 셈이다.

유자주의 탄생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로에서 주점을 운영 중이던 임씨는 고려대생이었던 절친한 친구의 권유로 1998년 고려대학교 앞으로 가게 터를 옮겼다. 대학가에 터를 잡은 만큼 대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술을 구상하던 임씨는 당시 유행하던 매실주, 석류주 등 소위 ‘소주칵테일’에 착안해 유자주를 개발했다.

처음부터 유자주가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야심찼던 임씨의 마음과는 다르게 당시 유자주는 좀처럼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유자로 만든 술이 당시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들렸던 것 같아요. 유자라 하면 유자차 정도 밖에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독특한 술 맛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하나 둘 유자주를 찾았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지금, 어느 덧 유자주는 고려대 앞의 대표적인 술로 자리 매김하게 됐다.

고대 앞 유자주를 마시러 왔다는 연락을 받고 나온 친구는 예고도 없이 자신의 대학친구도 함께 데려왔다. 말로만 몇 번 전해 들었을 뿐 만나 본 적 없던 이였다. 대강 인사를 나눈 뒤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것도 잠시, 달콤한 유자주를 몇 잔 나눠 마시니 긴장이 풀리고 친근해진 느낌마저 든다.

“한번은 부부가 오더니 단체석에 앉아 유자주를 주문하더라고요. 대학시절 이곳에서 단체로 미팅을 해서 처음 만났다고 하더군요” 스쳐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임씨가 말했다.

 10여 년 전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2013년의 청춘들도 여전히 서로 마주 앉아 유자주 한 잔씩을 기울이며 하나의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대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꿀동동주

처음 학교 앞을 거닐 때, 거리 곳곳을 빽빽이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카페들에 넋을 놓곤 했다. 그런데 카페로 즐비한 학교 앞에도 다른 학교 학생들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술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꿀동’이다. 꿀동은 동동주에 달콤한 꿀을 일정 비율로 섞은 술이다. 술집 찾기가 쉽지 않은 상권 속에서 꿀동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3곳이나 있다는 것은 꿀동의 남다른 인기를 실감케 한다.

꿀동을 파는 가게가 학교 주변에 처음 생긴 지 5년이 넘었다. 몇 세대를 걸쳐 내려오는 전통을 가진 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숙대의 명물로 자리 잡은 꿀동. 그 맛을 보기 위해 학교 근처에 처음으로 생긴 원조 가게를 찾았다.

꿀동을 마시기 위해서는 가게 오픈 시간 전 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인적이 드문 한적한 방학인 만큼 가게 안이 한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4시 40분 쯤 이미 한 무리의 학생들이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고 오후 5시, 시곗바늘이 영업 시작 시간을 가리키자마자 첫 손님들이 들어 왔다. 아직 해가 길어 여전히 밖은 환한 오후 6시. 가게 문을 연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10개의 테이블 중 8개는 이미 만석이었다.

테이블에 앉은 후 꿀동을 시켰다. 주문을 한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곧바로 꿀동이 나왔다. 언뜻 보아 항아리에 담긴 꿀동의 빛깔이나 냄새는 보통의 동동주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항아리 바닥을 바가지로 휘휘 젓기 시작하자 끈적한 무언가의 촉감이 느껴졌다. 항아리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그것, 바로 꿀동의 핵심인 꿀이었다.

인터넷에서는 꿀동에 들어간 것이 꿀이 아닌 물엿이나 요리당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하지만 사장인 여동생과 함께 가게를 운영 중인 최용석 씨에 따르면 꿀동에 들어가는 것은 “여동생이 직접 지인한테 부탁해서 공수해 오는 꿀”이다.

동동주에 꿀만 넣었다고 해서 모두 꿀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꿀동의 맛은 꿀과 동동주의 적절한 비율에 달려있다. “달콤하지만 동동주의 맛을 해치지 않는” 비율이 중요하다. 동동주와 꿀의 황금비율은 까다로운 여대생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동동주보다는 약간의 꿀이 섞인 꿀동의 맛이 달달하고 더욱 맛있어요” 다른 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본교 손나영(경영 09), 손미경(경영 09) 학우의 말이다.

꿀동이 이토록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데에는 푸짐한 안주도 한 몫 한다. 이곳을 찾아갔을 때는 주방 사정으로 인해 유명한 모듬전을 맛볼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모듬전 대신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 떡! 성인 여성 두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해물 파전이 나온 것이 아닌가. 이 때 방금 주문을 마친 옆 테이블 학생들은 커다란 해물 파전을 힐끔 쳐다보더니 재빨리 메뉴를 해물파전으로 바꿀 정도였다.

꿀동과 파전을 먹으며 입이 즐거운 사이 가게 안은 꿀동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마주 앉은 남녀는 서로의 술잔에 꿀동을 따라주며 담긴 그들만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건너편 단체석에 앉은 학생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신나게 웃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마감하고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학교 앞 꿀동동주를 맛본 하루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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