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뿐 아니라 시민도 참여… 사진 속 소녀, 이제 백발의 노인 위안부 문제 꾸준한 관심 필요해

지난 10일부터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문화행사<이야기해주세요>가 용산아트홀 대공연장과 전시장에서 열렸다. 10일부터 14일 까지 5일간 진행된 사진전에는 15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행사에는 사진 전시와 위안부 관련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상영됐다. ‘히스토리컬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콘서트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노래와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표현한 한국무용, 샌드 아트, 미디어아트, 그리고 사진 애니메이션 등이 어우러졌다.

 

전시가 열렸던 용산 아트홀은 우리학교에서 421번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용산구청, 용산아트홀’ 정류장에서 내리자 구청 앞에 걸린 <이야기해주세요> 플랜카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용산구청 밑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자 작은 카페를 옆에 두고 조그만 문이 열린 전시장이 보였다.
 아담한 공간의 전시장은 ‘ㄷ’자 모양으로 세 곳으로 나눠 사진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첫 번째 공간은 할머니들의 일상사진이, 두 번째 공간은 할머니들의 사진과 인터뷰가 함께 실린 액자가 전시됐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공간에는 각종 언론매체에 보도된 할머니들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처음 본 사진은 구본창 작가의 <나눔의 집에 대한 단상>이었다. 곱디고운 한 소녀가 빛바랜 앨범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래된 사진을 한 주름 많은 손이 가르켰다. 그 주름 많은 손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할머니의 아픔을 드러내는 듯 했다.
 첫 번째 구역에서 유독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사진이 있었다. 허현주 작가의 <할머니들의 가을 나들이>였다. 사진 속 할머니들은 혼자 또는 함께 바다를 등지고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사진촬영이 익숙치 않아 모두 무뚝뚝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보라색, 빨간색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계시는 모습에서 오랜만에 여행 와 신나하는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 영역의 첫 번째 사진은 한 할머니의 흑백 사진이었다. 조각한 듯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과 허공을 향해 있는 눈이 그가 겪었던 고통의 세월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 말 못할 고통의 세월이 만들어 낸 그의 모습이 체념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은 것은 그 꽉 다문 입술 때문이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딱 맞닿아있는 할머니는 마치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굳은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한체 사진을 응시했다. 그 때 사진작가이자 감독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한 전쟁평화여성 문화행동 시민위원회 집행위원인 안해룡 책임자가 다가왔다. “박옥련 할머니세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다시 시선이 할머니의 사진으로 향했을 때는 왠지 모를 죄송스러움에 고개가 숙여졌다.
 박옥련 할머니의 사진 뒤로 가지런히 정돈된 몇 개의 액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액자마다 할머니 한분 한분의 인터뷰와 사진이 스토리 보드처럼 이어져 담겨 있었다. 할머니들의 사진과 인터뷰를 읽던 중, 조용했던 전시회장에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옛날 옛날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할머니의할머니 아득한 먼 곳의 이야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해 여러 여성뮤지션이 제작한 *컴필레이션 음반<이야기해주세요>의 수록곡 중 한희정의 ‘이 노래를 부탁해’였다. 이 음반은 인디밴드인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보컬
송지은씨를 중심으로 홍대의 젊은 여성뮤지션 17명이 합심하여 발매한 자선음반이다.
 세 번째 구역에 다다르자 신문사 기자들의 보도사진과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사진을 둘러보던 중 장례식 사진 한 장에 발길이 머물렀다.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다. 2011년 5월 13일에 돌아가신 박옥련 할머니의 장례식 사진이었다. 몇 분 전 안해룡 감독에게 ‘돌아가셨다’고 들었을 때 느꼈던 먹먹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허탈함과 슬픔이 찾아왔다. 이날 전시회를 찾은 이경은(31ㆍ용산구)씨는 “할머님들이 많이 생존해 계실 때 일본 측의 진정한 사죄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구까지 이어지는 벽면에는 위안부 관련 보도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이 구역은 신문기자뿐 아니라 시민들이 찍은 사진도 전시됐다. 대부분 수요집회에 관련된 기사와 사진들이었다. 수요집회는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집회는 현재 1000회를 넘어서도 계속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진행된 집회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전시회를 관람하며 눈물을 보인 관객도 있었다. 최재원(33ㆍ강남구)씨는 “여태껏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 할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며 “위안부문제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통해 도와야겠다”고 말했다. 시민위원회 김성열 집행위원은 “지난 8월, 안세홍 사진작가의 도쿄 사진전이 무산되는 것을 보고 위안부관련 행사를 기획했다”며 “오는 11월 강동구청에서 개최예정인 위안부 사진전에도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소녀들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45년 동안 묻혀있었다. 몇 십년이 흘렀지만 일본군위안부로 살았던 그의 젊은 날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생생하다. 이제 막 성인으로서 삶의 날갯짓이 시작됐어야 할 그의 젊은 날은 일본에게 처참히 짓밟혔다. 이제 백발이 성성해진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돈도 사과도 아닌, 빼앗긴 ‘청춘’이다.
 전시회장에 오래 있을수록 ‘사진’이 아닌 할머니 한분 한분을 직접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문이나 뉴스로만 듣고 보던 이야기를 할머니들에게 직접 들었던 것이다. 할머니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들려주신 소중한 이야기들 잊지 않고 힘없이 당해야 했던 그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이제 우리가 노력하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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