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홍신자 동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인사동을 찾았다. 이날 인사동 주변의 거리는 FTA 반대 시위 물결로 가득했다.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엄청난 인파를 이룬 시위대는 깃발을 높이 들고 끊임없이 행렬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필자에게 알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날, 홍 동문은 “무용이라는 적극적 행위를 통해 나의 사상을 표현하고자 평생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서도 역시 강렬한 무엇인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느꼈다.

필자를 강렬히 사로잡은 두 가지 경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열정과 과감한 추진력이었다. 간절히 원하는 열망을 성취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을 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필자의 마음속에서는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작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회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며 매주 수요집회에 참가하겠노라 결심했던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또한 대학에 입학하면 정기적으로 장애인 시설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겠다던 다짐도 바쁘다는 핑계 속에 자취를 감춰 버린지 오래라는 것이 필자가 부끄러웠던 이유다.

‘He's all talk, and he doesn't even lift a finger’ 그 친구는 항상 말 뿐이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는 법이 없다는 이 속담은 행동에는 옮기지 않으면서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이처럼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 어떠한 의미도 될 수 없다.

얼마 전 노숙자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드린 일로 ‘목도리녀’가 화제가 됐다. 때로는 한 마디 말보다 용기 있는 실천이 훨씬 강력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실천으로 옮겨보자. ‘바빠서’ ‘어려워서’는 모두 의지 없음의 또 다른 이름일 뿐, 진정으로 열망하는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실천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리저리 핑계를 둘러대기보다는 몸소 실천하는 필자의 모습, 머뭇머뭇 주저하기보다는 진정한 용기를 내 성취의 기쁨을 맛 볼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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