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우리 예술가]

 

길종상가 대표 박길종씨 인터뷰

부르면 달려와 배수관을 고쳐주는 사람이 있다. 원하는 용도와 가격에 맞게 멋진 의자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이사갈 집을 함께 알아봐주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일이 한 상가에서 이뤄진다면? 바로 박길종씨가 대표로 있는 <길종상가>의 이야기다. ‘디자이너’라고 부르면 ‘디자이너’가 되고 ‘수리공’이라 부르면 ‘수리공’이 되는 그. 30살이라는 나이에 이태원에 <길종상가>를 개업한 그는 이제 홍대의 패션 편집매장에 팝업스토어를 낼만큼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예술가라는 호칭이불편하다는 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보광동의 어느 깊은 골목, 목공소인지 구제의류집인지 만물상인지 언뜻 보기에는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가게가 하나 있다. <길종상가>라는 상호명을 내걸은 이 가게는 주인 박길종(남·30세)씨의 가게다. 실제 오프라인 상가를 운영한지는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길종상가는 이미 이태원의 안팎으로 소문난 명소가 됐다.

‘한다 목공소, 밝다 조명, 꿰다 직물점, 있다 만물상, 간다 인력사무소, 걷다 사진관’라는 재미난 분류 아래 다섯가지 영업으로 운영되는 상가는 이 가게가 어느 하나의 단어로 정의내리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스튜디오 같기도 하고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의 공간을 갖기 위해 그런 명칭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스튜디오나 작업실은 한 가지 일들을 주로 하는데 비해 저희 길종상가는 여러 가지 일을 해요. ‘상가’ 개념이다 보니 제한 없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폭도 넓고요.”

그래서인지 길종상가라는 상호명으로 그가 해내고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간단한 가구를 제작하는 목공 일부터 전시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문화역 서울 284에서 하는 <인생사용법>전시에 참여하기도 했고, 11월 중순에는 패션 브랜드 편집매장인 에이랜드 홍대점에서 전시 및 판매를 하기도 한다. 그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듣고, 말하고, 마시고>라는 프로젝트 3탄은 가수, 요리사, 작가들과 길종상가가 함께하는 문화 행사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러한 상가를 차릴 결심을 하게 됐을까. 그 시작은 이태원이라는 동네를 중심으로 한 작업이 시초였다.

“2009년에 <이태원 주민일기>라는 책에 나난, 장진우, 홍민철등 젊은 예술가 8명과 함께 참여하게 됐어요. 이태원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작가들이 참여해 만든 책인데, 저는 보광동에 버려진 폐품을 활용해 가구를 만드는 작업을 지면에 담았죠. 그 작업이 지금의 길종상가 작업의 출발점이예요.”
그는 그 작업으로 인연이 닿아 지인에게 웹사이트를 분양 받게 됐고, 그 것이 현재 <길종상가>의 온라인 상가 가 됐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오던 영업은 올해 오프라인 상가를 개업하면서 더욱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아는 분의 일을 도와드리다가 동네 부동산 아저씨의 소개로 지금의 가게를 구하게 됐죠. 실제 공간이 생겨나니 동네 만물상 사장님, 조명집 사장님들과 함께하는 일들도 늘어났구요. 실제 상가를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봄 쯤에‘프랑스 빈티지 원피스 특집전’을 했는데, 100명이 넘는 여성분들이 이 골목까지 찾아오셨던게 아직 도 기억에 남네요.”

본래 그의 전공은 서양화였다. 그는 미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나서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림을 그려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죠. 그 외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전공과 상관 없는 일들을 하는데, 저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요.” 졸업을 한 뒤 작가들의 어시스트로 일하면서 그는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목공과 관련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우연히 1년 정도 그 곳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 곳에서 배운 기술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죠. 저에게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보다는 생활 속에서 직접 만지고 앉고, 쓰일 수 있는 가구 같은 것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그는 하나, 둘씩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드는 가구는 손님과의 일대일 상담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구 의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가구가 놓일 장소에 가요. 놓일 공간의 분위기에 최대한 맞게 만들려고 노력하죠. 만든 후에도 평생 무료로 수리, 재가공을 해드려요.”

언뜻 보면 가구 디자이너나, 상가의 사장님 정도로 보이지만 그가 하는 일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가구를 만드는 일 외에도 ‘간다 인력발전소’는 <길종상가>에만 있는 일대일 고객 방문 서비스다.

그가 ‘간다 인력발전소’를 통해 하는 일은 가스 배관 설치해주기, 세면대 고쳐주기, 문풍지 발라주기등 혼자 해보지 않아 선뜻하기 힘든 소소한 일들이다. “사실 막상 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닌데 하지 못해 망설이는 분들이 안타까웠어요. 그렇다고 동네 철물점이나 설비 아저씨들에게 부탁하면 돈을 요구하기도 하니까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대신 저는 돈 대신에 그 분들과 식사를 함께 한다거나, 물건을 받는 식이죠.”

소소한 잡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가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이사의 모든 것’이라는 일을 맡았을 때다.

“제가 집을 알아봐 드리고 이사도 도와드리고, 가전제품, 인터넷 설치까지 도와드렸었죠. 그 분은 지금도 이태원 이웃주민으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는 하는 일이 다양한 만큼 그는 보다 열린 시각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디자이너나 작가라는 수식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 말들 또한 원래 없던 말인데 누군가 만들고 정형화 시킨 거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은 디자인이나 작가에 관련된 일이 전부가 아니예요. 그런 일들은 저의 5%도 되지 않죠. 어디엔가 속하지 않는 것 같고 그러고 싶지 않아요. 굳이 부르라면 길종상가 대표 정도가 좋겠죠.(웃음)”

그렇다면 그의 길종상가 경영방침은 과연 무엇일까. “경영방침이요? 딱히 그런 건 없어요. 그저 하면 재밌을 법한 일들을 실현 시키는 거죠. 단, 과정이나 실패에 대한 걱정 없이요.”

조금은 넓고 가볍게, 그가 길종상가를 경영하는 방침은 그가 사는 방법과도 닮아 있었다.

“저는 재미있는 일이라면 그게 설사 전에 없던 일이더라도 해요. 사람들은 왜 다 취직을 하려고 할까요? 원시시대만 해도 취직이라는 게 없었는데 말이죠. 그 것들도 결국 살아오면서 누군가 만든 법이나 가치관들을 답습 하는거 잖아요. 저는 답습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제 방식대로 제 길을 만들고 살아가는 거예요. 제가 나름대로 길을 제시해 나간다면 누군가도 언젠가 이 길을 따라오겠죠. 그러길 바라고요.”

이제 그의 나이 서른. 모두가 취직을 할 때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없었을까. “다행히도 집안 반대는 없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가구 만들어 파는 일을 하고 있는 정도로만 알고 계시죠."

물론 그 역시 아무 걱정 없이 상가를 운영해 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일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예요. 사람마다 기준이라는 게 다 다르잖아요. 누군가에겐 10만원이 적기도 하고 많기도 하고. 저는 그걸 크게 신경 쓰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조심스레 10년, 20년 후의 길종상가 의 모습을 묻자 그는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웃음) 그렇게 먼 미래보다는 내일, 다음 달, 그리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뭘할까 생각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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