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500주년이던 1946년에 공휴일로 지정됐다. 그러나 1990년, 경제발전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됐고 이후 한글날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다. 현재 한글날을 알고 있는 국민은 63%로, 2009년 88.1%보다 25.1% 감소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의식뿐만 아니라 한글을 표기 수단으로 삼는 한국어의 사용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말 한글의 우수성과 오늘날의 한국어 사용 모습을 되짚어봤다.

 

우리말 한글의 우수성
무엇보다 한글의 가장 큰 장점은 읽고 쓰기가 쉬워 배우기도 쉽다는 점이다. 발음의 최소 단위인 음소를 중심으로 만든 문자이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으로 무수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고, 조합된 문자의 수가 많더라도 제자원리만 이해한다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한글은 배우기가 쉬워 3500여 언어 소수 민족들에게 보급하거나 10억으로 추정되는 문맹자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 박사는 저서에서 “많은 학자들이 한글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체계’, 혹은 더 간단히 ‘세계 최상의 알파벳’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정된 자음과 모음으로 모아쓰기 형태의 글자를 생성해 낼 수 있는 한글은 컴퓨터의 계산 원리와 비슷해 현대의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글자로 평가받고 있다. 문자와 소리의 일치성이 높아 기계 번역이나 음성 인식 컴퓨터를 만들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글은 인터넷 보급과 컴퓨터 활용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달 또한 한글의 쓰임새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며 생각을 음성보다는 문자로 표현하는 일이 잦아지고, 그 과정에서 신속성과 간편성을 추구하면서 한국어의 변화를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한국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오늘날의 한국어 사용 모습
사례 1) 최근 KBS 드라마 제목 ‘차칸남자’의 맞춤법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공중파 드라마 제목을 맞춤법에 어긋나게 표기하면 어린이와 청소년의 올바른 언어습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로 제목을 수정하라는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작진과 일부 시청자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표현법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존중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으로 맞섰지만 결과적으로 ‘착한남자’로 제목을 정정하게 됐다. ‘착한’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차칸’과 같은 잘못된 표기는 실제 생활 속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윗층(위층이 옳은 표현), 왠만하면(웬만하면), 찌게(찌개), 떡볶기(떡볶이), 뵈요(봬요), 할께(할게) 등이 있다. ‘낳다’와 ‘낫다’, ‘되’와 ‘돼’, ‘데’와 ‘대’, ‘안’과 ‘않’의 경우는 발음의 동일성 때문에 쓰임새를 구별하지 않고 잘못 표기하는 일이 많다.
사례 2)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커피전문점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 표현은 잘못 사용되는 높임말이다. 유교 문화 영향으로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에는 높임말이 발달해 있다. 동사나 형용사에 붙여 존칭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시-’는 주로 사람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물에 ‘-시-’를 붙여 말하는 사물존칭 어법, ‘백화점 높임법’이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자주 쓰이고 있다. 이러한 사물존칭현상은 서비스업종의 고객만족운동의 부산물이다. 이것의 사회적·산업적 배경을 고려해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물존칭어법에 대해 이질감과 거리감이 느껴져 불편하고 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례 3) “아, 웃프다. 완전 멘붕이야!” 이와 같은 문장은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어 사용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다양한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웃기다와 슬프다를 합친 ‘웃프다’, 어처구니가 없거나 황당한 상황에서 정신이 붕괴됐다는 뜻으로 쓰는 ‘멘탈붕괴’, 왕년에 잘 나갔던 전성기를 의미하는 ‘리즈시절’,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지칭하는 ‘금사빠’, 버스카드 충전의 줄임말
‘버카충’, 결정적인 혹은 치명타를 뜻하는 크리티컬(critical)의 약자 ‘크리’ 등 수없이 많은 신조어들이 있다. 기존 어휘의 의미를 변화시키거나 오타와 외국어를 이용하는 등 신조어는 만들어진 과정과 방법도 다양하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간편한 표기를 추구한 결과 줄임말이 많이 나타난다. 신조어에 대해서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맞춤법을 파괴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신조어로 인해 한글이 파괴된다고 볼 수 없으며 문화를 반영하고 축약을 통해 경제성도 높인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다양한 신조어의 발생에 대해 본교 이홍식 교수는 “단어는 시대 환경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사회와 문화의 모습을 반영하는 새로운 신조어들이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러나 합의와 동의없이 만들어진 신조어는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신조어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덧붙여 “한글은 표기 수단으로써 한국어와는 구별해야한다. 틀린 맞춤법을 사용하는 것이 한글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한국어의 모습은 긴 시간을 거쳐 변화하는 과정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맞춤법에 어긋나게 사용하더라도 이를 잘못이라 규정짓고 기존의 맞춤법을 고수하도록 고집할 수는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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