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개의 문> 홍지유 감독을 만나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생존권을 호소하며 망루에 올랐던 이들은 25시간만에 싸늘한 시신이 돼 내려 왔고, 살아남은 이들은 범법자가 됐다. 철거민의 불법폭력시위가 참사의 원인이라는 검찰의 발표와 공권력의 과잉진압이 참혹한 사건을 만들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양립하는 가운데,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 영화 <두 개의 문>은 중립된 시각으로 농성민들과 특공대원 양쪽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영화를 제작한 홍지유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부터 영화 제작을 계획했던 건 아니다. 사건 발생 이후 직접 찾아간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기 시작했다. 1심 재판에서 사법부가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했지만 그 희망은 산산이 무너졌고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매일 속보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만으로는 세상의 관심을 사기에 부족했고,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고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두 개의 문>은 여성주의 미디어 공동체인 연분홍치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한 편씩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소통해야 하는 관객들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됐다. 재미나 전달력,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영화가 가지는 특유의 감동과 영화적 표현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는 ‘예술의 영역’과 ‘문화운동’ 두 가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장르고, 다른 장르와는 선명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큐형식을 추구했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용산참사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 속에서 왜곡된 시선이 강화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까 걱정이 됐다. 영화를 통해서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관객들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제작이 어려웠을 것이다.


-민감한 자료를 모을 수 있었던 과정이 알고 싶다
25시간동안 이뤄진 진압작전을 끝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늘 현장을 찾아다닌 인터넷 생방송 매체 칼라TV와 사자후TV의 도움이 컸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고와 의지 덕분에 사건의 기록이 남았고, <두 개의 문> 작업도 가능했다. 그 외에 재판 속기록 같은 자료는 공개요청을 통해 얻었다. 속기록 이외에 영화에 담긴 경찰이 찍은 최종 영상이나 진압 당시 지휘부의 현장 무전, 녹취록은 변호인단에게만 공개됐다. 그래서 재판을 함께한 변호인단, <두 개의 문> 제작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인권활동가들이 영화에 담을 자료를 같이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자료를 쓰면서 비롯될 수 있는 법적공방과 부당한 힘이 작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힘을 보태줬다. 경찰 최종영상의 재산권이나 초상권에 대한 민사소송, 다큐의 극장 개봉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 덕분에 지금까지 드러나는 외압은 없었다. 다만, 대법원 판결에 법적 불이익을 미칠까 고려해 영화 공개 시점은 판결 이후로 정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압작전에 투입된 경찰이 “컨테이너를 타고 올라가 보니 문이 두 개 있었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출입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투입된 것이다. ‘몰랐다’라는 진술은 진압하는 자와 진압하는 대상, 양자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지 않은 진압작전임을 의미한다. 경찰도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았던 철거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아닐까. 사회적 약자와 공권력 사이에서 고민하는 성숙한 의식이 있는 사회구성원이라면 ‘두 개의 문’을 핵심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제목으로 정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논란이 많은 소재였던 만큼, 예상과 다르게 감정을 몰아가지 않고 화면과 이야기가 절제돼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절제는 의도한 것이었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본질은 현 정권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진압을 위해 특공대를 투입했고 특공대의 역할이 시위 진압으로 변질돼 유지되고 있다. 재개발 역시 오래된 사회적 문제다. 결국 어떤 태도를 지닐지, 무엇을 해야 할지 등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절제된 표현을 통해 관객들에게 판단을 맡겼다.


-영화에 대한 유족들의 반응은
영화 개봉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비가 많았다. 처음 영화를 볼 때 유족들은 화면을 마주하는 것마저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이후 관객과의 다양한 만남을 통해 소통하면서 유족들은 점차 희망을 갖게 됐다. 그들은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장면을 마주하기 위해 극장까지 찾아오는 관객들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억울함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실제로 그들에게 심적인 위로가 된다. 그들에게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3년 8개월 동안 사회로부터 고립돼 외롭게 버틴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고, 지금의 이 관심들이 잠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사건을 통해 잘못된 점들이 사회적으로 노출됐을 때 제대로 매듭지어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용산참사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을 겪고 어떤 누군가는 각성을 하지만 한편에서는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한다. 사건이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헤게모니가 강력하게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농성에 가담하셨던 분들은 불법을 자행한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계신다. 이는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전히 용산참사 현장을 지나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에는 혼자서 힘든 마음을 삭히는 것보다 영화를 마주하는 것이 건강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두 개의 문>은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다. 올해 12월까지 인디스페이스, 인디플러스에서 만나볼 수 있고 IP TV에서도 상영 중이다. 불편한 장면이라도 대면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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