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시윤(고양예고)

글제 : 사이버 세상의 질투

 

 

나는 엉겁결에 반문했다. 여자의 말이 황당했기 때문이다. 재빨리 여자를 훑어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워야 할 과거가 있으신가요?”

여자는 태연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자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고 H라인의 단정한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여자의 전체적인 인상과 특히 눈을 살펴보았을 때, 여자는 상당한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런 부탁을 처음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의 손님들은 하나같이 비굴하고, 혹은 허세를 부리더라도 쫓기고 있는 듯한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는 달랐다. 여자의 당당한 태도가 신기했다. 애초에 이 곳에 이런 부탁을 하러 오는 것이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곳은 ‘개인 신상 정보 탐색 사무소’이다. 어느덧 한 칸짜리 방이나마 마련해 어엿한 사무소가 되었다. 하는 일은 흥신소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는 탐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의뢰 받은 인물의 정보를 추적해나갔다. 내가 찾지 못할 정보는 없었다. 인터넷 곳곳에 사람들의 꼬리가 남겨져 있었다.

현대인들은 두 개의 세상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사이버 세상이다. 그 곳에는 우리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빠르게 업데이트 된다. MSN, 트위터, 미니홈피, 블로그 …… 수많은 일기장들이 펼쳐져 있다. 기록하고, 주목 받고, 공유하는 일기장이었다. 나는 활짝 펼쳐진 일기장들을 읽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화제가 된 인물들의 신상정보를 캤다. 루저녀, 지하철 막말녀, 치한남 등등……. 캐면 캘수록 건수가 나왔다. 지탄받을 만한 건수가. 나는 정보로 그들을 심판했다. 알 권리를 주장하며 정보를 퍼뜨렸다. 모두가 그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러한 처벌의 기록 역시 커다란 일기장이 되어 사이버 공간에 남았다.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갈수록 수요도 많아져 괜찮은 직업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여자의 사정이 궁금했기에 질문했다.

“캥기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꼭 지울 필요가 있나요? 다들 기억하지 못해 안달인데. 이처럼 편리하고 똑똑한 일기장은 없어요.”

본업은 정보 추적이지만, 역으로 정보를 지우는 것도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선택을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하지만 기억할 권리가 있다면, 잊고 잊혀질 권리도 있죠. 똑똑한 일기장도 질투할만한 인간만의 능력이자 권리니까요.”

잊혀질 권리가 있다고?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나는 여자에게 알았다고 대충 대답한 뒤, 서둘러 내보냈다.

여자의 신상정보를 지우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순위에 ‘국물녀 오해’, ‘연예인 과거’ 따위의 단어가 뜬다. 며칠 전에 터진 연예인의 막말 파문이 아직껏 식지 않고 검색 순위 1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우리 과거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개인 정보들을 찾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다면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나 다름 없다고. 지목 받고, 파내기만 하면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건 한 순간이라고.

인터넷 곳곳에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그들은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빠르게, 더 빠르게 정보를 올리고 있었다.

화면 가득 난무하는 정보들이 사람들의 일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사람의 팔다리, 지워지지 않는 기록의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급히 컴퓨터 화면을 껐다. 번들거리는 검은 화면이 거울처럼 나를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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