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란(이화여고)

글제 : 어른이 된다는 것

 

 

 

 

어릴 적, 아주 어릴 적 나는 어른과 한 몸이었다. 엄마의 배 속에서 연을 잇는 어른과 한 몸인 아이였다. 세월이 지나 세상의 빛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 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 그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무언가를 다짐한 주먹과 우렁찬 울음소리의 패기. 그것이 내가 세상과 마주한 방법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조금씩 어른의 도움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 스스로 걷고, 먹고. 때로는 내가 ‘어른’인양 화장품을 만져보기도, 두꺼운 책을 집어보기도 하였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랬었다. 나보다 보잘 것 없는 자유 몇 가지를 누리는 그 모습을 염원하면서,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그 삶을 동경하면서.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고 어렴풋이나마 세상을 이해하면서 곧 다가올 미래가 ‘나의 이상’이 아닌 ‘그들의 무거운 현실’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더 이상 나이 먹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노자가 말씀 하셨던가? ‘도(道)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갓난 아기와 같다는 것’을. 울고 싶을 때 울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세상의 제약 없이 사는 아이들.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인양 행동한다. 사물이 대한 인식이 가능할 때에도 예외는 아니다. 잘 익은 노을을 가로지르는 차 안에서도, 자신이 중심인양

“엄마, 왜 해님이 나만 쫓아와?”라며 묻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위해 어른은 “응, 그건 해님이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대답해준다. TV 속 용감한 전사들을 보며

“나도 정의의 사도가 될 거야!”를 외치며 친구들과 함께 그들이 되어보기도 하고, TV 밖에서 옷을 차려 입고 무전기를 들고 있는 경찰이나 TV 속에서 연설하는 대통령을 보고 “난 경찰아저씨가 되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거야!”라고 외치거나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잘 보살필 것이라고, 그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그들이 늘어놓는 꿈이 크든지 작든지 그들의 꿈에는 제약이 없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들에게 꿈의 제재를 가하는 사람들도 없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다르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스스로에게 제약을 둔다. ‘에이, 나 같은 인간이 어떻게……”라던가 ‘지금 살기도 빠듯해 죽겠는데 그런 것 꿈 꿀 시간이 있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제자리에 머무른다. 그러면서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행복해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그들이 긴 책임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겁고 시작이라고 외치기엔 주변의 비웃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분명 어린 아이들보다 가진 것 많고 아는 것 많고 힘도 센 어른들이지만 이제 그들은 아이들을 보며 순수했을 적 자신을 그리워하고 그 때로 다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책임이라는 짐 없이 순수했던 때를, 정신과 사고, 미래가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때를 동경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주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님에는 분명한다. 하지만 그 길이 모두의 숙명인 만큼 어른으로써 겪을 경험들이 있고, 그 경험들을 통해 배울 무언가와 느끼는 것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면 피치 못해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어른으로써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루는 순간, 그 어른은 어느 순수한 아이의 꿈이 되고, 그 아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가 예비하게 된다. 그들이 이루는 것은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고, 아이들이 지게 될 짐을 한 층 더 가볍게 해주는 것이다.

진짜 어른은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사람이다. 남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안주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힘쓰고 진실된 인류애를 통해 이타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어른’이라는 인식이 이와 같은 그림으로 아이들의 머리에 자리잡을 때 아이들이 살게 될 미래는 더 밝아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순수한 아이들의 미래를 향한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생긴 순간 어른과 한 몸이었고 그 순간부터 한 몸이었던 어른은 나를 끊임없이 사랑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거머쥘 듯 주먹을 꽉 쥐고 세상의 빛을 보았을 때부터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들을 거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의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아이들의 미래를 향한 맑은 거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훗날, 내가 태어날 때와 달리 손을 펴고 자연으로 돌아갈 때에, 인류를 이어줄 아이들이 쥐고 있을 세상이 더 귀하고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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