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용진을 만나다

▲ 지난 8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8살 때부터 대학로 소극장에서 코미디를 시작했다는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사진 = 최윤정 기자>

 

 그는 ‘더 독한 것’을 찾고 있다고 했다. 멀끔한 생김새와 달리 망가지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었다. “마지 심슨 분장 이후 3번의 방송이 더 남았는데 뭘 해야 할 지 고민이예요”라며 웃는다. 분장을 지운 그의 얼굴에는 “좋으다”를 외치던 예삐공주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10년차 코미디언, 28살 이용진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의 코너 ‘웅이 아버지’ 이후로 <코미디 빅리그>의 ‘라이또 게임폐인’(이하 라이또)으로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인기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아요. 코미디언은 배우나 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반짝’ 스타가 많은 편이예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라이또’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게됐나
박규선의 아이디어예요. 규선이의 아이디어 중에 ‘라이또’는 우리가 가장 보여주기 쉬운, 우리다운 아이디어였죠. 전체적인 틀은 규선이가, 캐릭터는 세형이가 잡았어요. 제가 맡은 ‘예삐공주’는 처음에 그저 천방지축 여자 캐릭터였는데 첫 회때 PD님이 여고생 컨셉을 잡아주기도 했어요. 막상 말하고 보니 전 한 게 없네요.(웃음)


-박규선, 양세형씨가 이용진씨를 코너에 영입하기 위해 설득했다고 들었다

맞아요. 당시 저는 제대한 뒤 다른 일을 하려다 잠시 국내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여행 중 제주도에 있을 때, 규선이가 찾아와 코너를 같이 하자고 했지만 쉽사리 결정 하지 못했어요. 결국 나중에 세형이에게 “오늘 4시까지 결정 해줘”라고 전화가 왔는데, 그 때가 12시였고 저는 낚시를 하고 있었어요. ‘4시 전까지 고
기가 잡히면 함께 코너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고기가 잡혔죠. 사실 고기가 잡힐 줄 알았어요. 그 넓은 제주 바다에 고기 한 마리 없겠어요? 애초에 코너를 하기 싫었다면 고기가 잡히지 않게 미끼를 안 끼웠을 테죠.


-군 제대 이후 코미디가 아니면 어떤 일을 하려고 했나
원래는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 작가, 넓게 말하면 모험가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프랑스를 좋아하기도 해서 파리에서 여행 가이드를 할까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코미디 쪽에 조금 더 마음이 있어요. 무대가 참 무서운 게 한번 올라가 그 맛을 보게 되면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참 줏대 없죠.(웃음) 일단 지금은 <코미디 빅리그>의 다음 시즌을 준비할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동생 양세찬이 곧 제대를 해서, 그 친구까지 함께
새로운 코너를 할 생각입니다.


-<웃찾사>와 달리 <코미디 빅리그>는 본격 경쟁 프로그램이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개인적으로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경쟁은 잊고 제 코너에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려 하는 노력하고 있어요.

-원래 경쟁 프로그램을 즐기지 않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경쟁 형식이 결합 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저는 경쟁 형식으로 코미디의 질을 올리는 것 보다는 프로그램 안에 있는 각각의 코너가 재밌고 그 것들이 한 곳에 모일 때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경쟁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되면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그 것이 코미디의 본질을 흐리게 되는 것 같아요.


-<코미디 빅리그>에도 그런 과열 현상이 있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만큼의 과열 현상은 없어요. 모두가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재밌게 일하고 있죠. 지금처럼만 하고 싶어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재밌게 즐기면서요. 저뿐만 아니라 같이 호흡을 맞추는 동료 코미디언들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편이예요. 팀 내에서 한 명이라도 일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오히려 그 사람을 바보 취급하죠. “우리끼리 재밌게 하면 되는 건데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상금 욕심나?”하
고요.(웃음) 팀워크가 잘 맞는 것은 이런 마인드 덕분인 것 같아요.

 

-18살 때부터 소극장에서 일을 시작해, 이제 코미디 10년차라고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죠. 지금 제가 있던 소극장에 후배만 백 명이 넘어요. 얼굴도 잘 모르는데 말이죠. 웃찾사 소극장에 가서 공연을 한다고 하면 내가 No.3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왠지 선배가 돼서 이상한 개그는 하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도 생겨요.(웃음)

 

-시청률에 따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쉽게 없어지기도 한다. 일부 코미디언들이 직접 무대를 찾으러 다니기도 하는데

저는 <코미디 빅리그>를 하고 있어 그나마 괜찮지만, 주변에 그런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죠. 튼튼한 공개 코미디프로 그램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얼마 전에도 MBC와 종편채널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어요. 그 곳에 몸 담았던 코미디언들은 실직자가 됐죠.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된다면 결국 코미
디언들은 겉돌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낙오하기도, 인기에 편승하려하기도 해요. 안타까워요. 현재 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동료 코미디언들을 격려하는 일 뿐입니다.

 


-최근 비틀즈코드2와 같은 예능 MC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공개 코미디와 예능 사이에 구분을 안두는 편인가
구분 짓지 않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요. 공개 코미디와 예능 모두 결국 사람들을 웃게 한다는 것은 똑같은데 굳이 가려가며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요. 한 쪽에서는 연기를 하고 한 쪽에선 말을 한다는 차이일 뿐이죠. 만약 뉴스에서도 웃길 수 있다면 뉴스를 할 거고요.

 

-코미디언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코미디언의 세계에는 공식이 없어요. 지름길도 없고, 배경도 중요치 않아요. 그저 자신이 웃기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요즘 둘러보면 자신의 능력을 키우려 하기 보다는 사람을 먼저 사귀려는 친구들이 있던데.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과 친해져 거기에 편승해 가려는 거죠. 하지만 적어도 꿈을 꾸는 젊은이는 그래선 안돼죠. 그런 짓은 나이 사오십 먹고 회사에서 승진 못하는 사람이 나 쓰는 방법이 아닌가요.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디어 짜고 연습하는 데에 노력하기를 권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뚜렷한 미래를 설계하고 가는 스타일이 아녜요. ‘30세에 결혼을 하고, 35세 때 내집 장만을 하는’ 이런 계획 자체가 사람을 옥죈다고 생각해요. 왜 꼭 남들과 같은 방향에 발을 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천만 대군이 걸어갈 때 누군가는 등 돌리고 자신만의 길을 가면 좋겠어요. 코미디도 마찬가지죠. 남들이 했던 것은 피하려고 해요. 이미 나왔던 건달이라는 캐릭터를 하더라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달 캐릭터를 내놓는 것. 그런 걸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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