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마치 고3이 되자마자 대학생이 되는 그런 속도’라며 속도경쟁에 열을 올렸던 스마트폰 시장이 특수한 소재로 눈길을 돌렸다. 2012년 2분기에 출시 예정인 삼성의 ‘갤럭시 스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갤럭시 스킨은 본체와 4.5인치 스크린이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스마트폰으로, 빨래 짜듯이 비틀어서 사진을 보거나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갤럭시 스킨의 이러한 기능은 꿈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그래핀을 사용한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 2010년에는 그래핀을 연구한 교수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핀은 스마트폰 이외에도 텔레비전이나 태양전지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 더 깊이 파고들어 올 그래핀에 대해 알아보자.

꿈의 소재, 그래핀

나노 물리학과가 주최한 제 8차 콜로퀴움인 ‘이상한 나라의 그래핀(Graphene in Wonderland)’이 지난 8일(화) 과학관에서 열렸다. 이날 콜로퀴움에 초청된 세종대학교 물리학과 홍석륜 교수(그래핀 연구소 소장)는 그래핀에 대한 소개와 특성 등에 대해 강연했다. 그래핀은 2004년에 처음 발견돼 ‘꿈의 소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물리학계의 주요 연구 소재로 떠오른 물질이다.

◈그래핀이란?

그래핀이란 육각형 모양의 탄소가 벌집처럼 연결된 2차원 구조체이다. 그래핀을 이루고 있는 탄소는 원소들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탄소는 플러린과 탄소 나노 튜브, 그래핀 그리고 흑연 등의 형태로 존재한다. 플러린은 탄소 원자 60개가 축구공 모양으로 이뤄진 것이고, 탄소 나노 튜브는 탄소 원자의 막이 원통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연필심의 재료인 흑연은 탄소가 층층이 쌓여 있는 형태이다. 그래핀은 이 세 가지 탄소 동소체의 기본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래핀을 동그랗게 말면 플러린이나 탄소 나노 튜브가 되고 여러 겹으로 쌓으면 흑연이 되기 때문이다. 홍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그래핀이 ‘흑연계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graphites)’라는 별칭이 있다는 여담을 하기도 했다.

◈그래핀의 도약

플러린이 1985년, 탄소 나노 튜브가 1991년에 발견된 것에 비해 흑연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여러 층의 탄소 원자로 이뤄진 흑연을 단일 원자 층인 그래핀으로 분리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그만큼 오래 됐다. 그러나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셀로판테이프를 흑연에 붙였다 떼는 간단한 작업을 통해 그래핀을 추출했다. 이 연구 결과 덕분에 업계는 그래핀의 상용화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또한 홍교수는 가임과 노보셀로프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그래핀을 추출하는 손쉬운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보드카로 휴대폰 액정을 깨끗이 닦아내고 연필심을 묻힌 셀로판테이프를 액정 위에 여러 번 붙였다 떼는 방법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휴대폰의 액정에 그래핀이 남는다고 한다.

◈그래핀의 특성

그래핀의 두께는 0.2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두께는 우주에서 가장 얇은 물질로 손꼽힌다. 그러나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그 강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 높다. 게다가 휘거나 비틀어도 부서지지 않고, 신축성이 좋아서 늘리거나 접어도 전기 전도성이 유지된다. 뿐만 아니라 그래핀은 기존 반도체보다 전기의 흐름이 최소 100만 배 이상 빠르며 빛을 98% 이상 투과시킬 만큼 투명하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그래핀이 휘거나 접는 디스플레이 또는 입는 컴퓨터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의 주재료였던 실리콘은 늘리거나 구부릴 때 전기 전도성을 잃고 파괴되지만 그래핀은 이런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핀의 연구

꿈의 소재 그래핀은 지난 2008년 MIT 선정 10대 유망 소재에 포함됐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MIT 뉴스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내 그래핀에 대한 논문이 6% 가량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핀에 대한 국내 연구진들의 연구 또한 활발하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그래핀을 100대 유망 연구 분야에 포함시켰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주요 있는 산업 기반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혁신을 가져올 소재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과 기업들은 그래핀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응용 및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성균관대학교 안종현 교수와 삼성전자가 손잡고 세계 최초로 그래핀의 투명 전극을 소재로 한 30인치(762㎜) 크기의 커다란 스크린 개발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투명 전극은 휴대폰이나 텔레비전의 터치스크린, LCD의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등에 사용될 수 있는데, 이 투명 전극 시장은 2015년에 6조 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홍교수가 속해 있는 그래핀 연구소에서도 합성을 통해 변하는 그래핀의 전기적, 광학적 성질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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