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럴…1六2cm의 작은 내 몸을 뉘울 자리가 없다니… 

나는 방을 구하기 위해 30곳이 넘는 집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곳은 찾지 못했다.”

-숙대학보 15호에서 발췌

1976년, 이혜숙(국문 85)이 작성한 이 글에는 지방에서 상경한 학우가 방을 구하면서 느낀 설움이 가득 담겨있다. 35년이 지난 2011년 현재, 여전히 많은 숙명인들이 이 동문처럼 방을 찾아 헤매고 있다. 교내 기숙사는 들어갈 자리가 없고, 원룸이나 고시텔은 방 값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학우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하숙집’을 거주지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숙대신보에서는 학교 앞 하숙집의 실태와 현황을 알아봤다. 하숙촌이 밀집돼 있는 ‘청파동 2가’와 ‘청파동 3가’를 숙대 앞 하숙촌의 범위로 설정하고, 숙명인 500여명에게 ‘숙명인 거주형태 조사-하숙집 거주자 중심’이라는 주제로 설문을 받았다. 더불어 학우들이 겪은 피해사례도 들어봤다.


 

*학교 앞 하숙 실태

  2007년과 2010년 사이에 입학한 학우(9,314명) 가운데, 28%에 해당하는 2,623명의 학우들은 통학이 불가능한 지역인 부산ㆍ대구ㆍ광주ㆍ대전ㆍ울산ㆍ강원도ㆍ충청도ㆍ전라도ㆍ제주도 및 해외 출신이다. 이처럼 집에서 통학이 불가능 한 지역출신 학우들의 경우 기숙사에서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다수가 하숙이나 자취를 하고 있다.

   이는 우리 학교 기숙사의 최대수용인원이 470여명 밖에 안 될 뿐 아니라, 신입생에게만 입실 우선권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응답한 숙명인 500명 가운데 34%인 167명이 하숙집이나 원룸,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에서도 하숙집에 거주하고 있는 학우들(88명)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우리학교 근처에는 약 136개의 하숙집이 있는데(우측의 ‘학교 앞 하숙집 현황’ 지도 참고), 제 1 창학 건물 쪽인 ‘청파동 2가’ 에 43개가, 제 2 창학 건물이 위치한 ‘청파동3가’ 부근에 93개의 하숙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중에서 우리학교 학우들은 주로 제 1 창학 건물부터 숙대입구역 방향으로 0.44km 떨어진 ‘빵굼터’ 빵집사이에 위치한 하숙촌과, 도서관 후문부터 숙대입구역 방향으로 0.32km 떨어진 상점 ‘꼬치필때’ 사이에 형성된 하숙촌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학교 앞 하숙집 현황

 

*하숙집 거주하는 학우들 어떻게 살까

  하숙집에 거주하고 있는 학우들은 한 달 하숙비로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50만원 이상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41~50만원(35%)’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31~40만원‘(28%)’가 뒤를 이었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김복남(63ㆍ여)씨는 “방의 크기와 화장실 개인 사용여부에 따라 하숙비가 달라진다”며 “제 1창학 건물 뒤쪽부터 빵굼터 일대는 대부분 45만원선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방을 구할 때는 발품을 팔아서 구하거나(40%), 본교 홈페이지 내 학내게시판 인 ‘ 숙명인 게시판- 하숙/자취’코너를 활용(38%)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학기가 시작하는 3월과 9월에 하숙집에 입주하는 학우가 많았고, 이들 대부분은 학기를 마치는 6월과 12월에는 하숙집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파동 주민센터 주민등록팀은 “학기가 개강하는 3월과 9월에 청파동일대로 전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며 “이들 대부분은 숙대 앞으로 이사를 온 학생들이다”고 말했다.

  반면에 방학이 시작하는 6월과 12월에는 하숙방을 내놓는 학우들이 많았다. 작년 한해동안 ‘숙명인 게시판- 하숙/자취’코너에 올라온 매물 건수를 분석해 본 결과 한달 평균 22건의 글이 올라오는데 반해, 6월과 12월에만 35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학우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거나ㆍ유학ㆍ졸업등의 이유로 하숙집을 떠나게 돼, 자신을 대신해 하숙방에서 거주할 학우를 찾고 있었다.

  한편, 하숙은 일정한 방세와 식비를 내고 남의 집에 머물면서 숙식하는 일종의 임대차 계약이다. 하숙집을 임대한 학우들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거해 주인에게 낙후된 시설물에 대해 수리를 요구하거나, 계약할 때 맡긴 보증금을 보호 받을 수 있다. 단, 이러한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우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관련법규를 잘 모르거나, 하숙집을 주거지 보다는 단순한 임시거처로 여겨 행정절차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김미진(경영 08)학우는 “하숙비를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드렸고, 계약한 기간 동안만 거주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도의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또한 하숙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들도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에게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필요한 신상정보를 요구하기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영수증이 계약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하숙업을 해왔지만 한 번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신종려(52ㆍ여)씨는 “계약서를 쓰면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다 기록해야 한다고 들었다”며 “학생들의 기분이 상할 까봐 배려하는 차원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숙비 1년치 선납, 해결방안은

  그렇다면 하숙집에 거주하는 학우들은 어떤 불편을 겪고 있을까? 우리학교 홈페이지 숙명인 게시판에는 하숙업체의 횡포를 고발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하숙집의 위생불량과 시설낙후부터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만까지 다양한 글이 있지만, ‘1년 치 하숙비를 한 번에 지불하도록 강요받았다’는 불만이 가장 많다.

  숙명인 게시판에 글을 올린 오민지(경영 07)학우는 ‘1년 치 하숙비 선납 요구’ 때문에 방 구하기를 포기했다. 지난 겨울방학, 그는 하숙집 10곳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다. 방문하는 하숙 집 마다 모두 ‘1년 치 하숙비를 한 번에 선납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오 학우는 “아줌마들이 ‘우리 집은 1년 치 하숙비를 낼 수 있는 사람만 받는다’고 말 할 때마다 화가 났다”며 “이유를 물었지만 ‘다른 집도 다 그래’라고 대답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 우리 학교 앞 하숙집들의 ‘하숙비 1년 치 선납 요구’는 5년 전부터 하숙업체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관행이다. 하숙업체들이 하숙비를 한 번에 받지 않으면, 수요가 없는 방학 철에는 하숙방을 빈방으로 남기게 돼 얼마간은 수입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는 하숙집을 운영하는 업체 중 몇몇 가구들만이 ‘1년 치 선납’을 요구했지만, 이 관행이 확장돼 학교 앞 하숙업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담합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하숙을 운영하는 김○○ 아주머니는 “나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월 별로 하숙비를 받아 왔는데, 어느 날 ‘하숙협회’라는 곳에서 통지서를 받았다”며 “다른 하숙집은 모두 1년 치 하숙비를 한 번에 받고 있는데, 우리 집만 이를 안 지켜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이 제도를 따르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해 하숙비 담합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려줬다.

  이처럼 모든 하숙집들이 ‘이 지역은 다 그렇다’라는 이유로, 선납을 강요한다면 학우들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360만원 이상의 등록금과 1년 치 하숙비인 540만원(월 45만원 기준)을 한 번 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숙비 1년치 선납’ 요구는 학우들의 가계부담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계약 해지시에도 마찰을 일으키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손미나(정치행정 07) 학우는 1년 동안 하숙집에서 살기로 계약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방음이 전혀 안 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하숙집 아주머니께 여러 번 건의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중간에 이사를 가려했지만 돈을 돌려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1년을 살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마련됐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작년에는 허희수(정치행정 02)학우를 비롯한 4명의 학우들이 모여 ‘하숙집 담합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허 학우는 “하숙비 일시불납입에 불만을 느낀 학우들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하고 ‘좋은 하숙집 선정운동’등을 추진해봤지만 학우들의 관심이 적어 모임을 해체했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서울대학생연합이 ‘하숙집 담합 피해 해결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단발적인 관심을 모으는데 그쳤다. 추진위원회에 소속된 이동현(경희대 4학년)씨는 “기자회견에서 담합한 하숙집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향후 이 운동을 어떻게 전개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숙업체들의 담합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은 없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숙업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어사전에 하숙(下宿)이라는 단어는 ‘값싼 하급여관’으로 정의되지만, 사실 하숙업은 여관과 같은 숙박업체가 아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자유업’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 소속 조규백씨는 “하숙 업체는 숙박업체가 지켜야 하는 ‘공중위생법(시설 및 허가, 운영방법)’을 따를 필요가 없고, 국가에 업종신고를 하지 않아도 별도의 제재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렇듯 하숙업체들을 ‘자유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의 집단으로 인식하면, 담합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 하숙업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세입자인 학우 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상호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공청회를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와 관련해 변호사 박주민(법무법인 한결)씨는 “숙대 앞 하숙촌의 가격 담합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 되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정을 요청할 수 있지만 시일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다”며 “하숙을 하는 학생들과 하숙아주머니들이 대화의 장을 만들어 서로의 요구를 듣고,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가 합의한 규칙을 만들어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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