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FTA로 난리이다. 교육계가 가장 큰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는데 교육계의 반응은 정작 잠잠하다. 두말 할 것 없이 FTA에 장기적으로 탄탄하게 대비해야 하는 분야는 대학교육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대학사회는 유연성 없는 경직된 이기주의 집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10년도 기약하지 못하는 전공이 세상의 무책임한 요구에 유행처럼 흔들려 생기고 사라지고 합병되고 있다. 이는 기초학문을 경시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는 우리 국민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장기적 전략 없이 사회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대학 내에 생긴 전공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포화상태가 자기 전공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열등의식이 뒤엉켜 전공간의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다른 전공분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학제 간의 원활한 소통의 길을 방해하며, 책임 전가의 남발로 인해 결국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에 이르는 것을 많이 봐왔다.

지난 3월 말 모 대학에서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미래의 학문분야 중심에 관계학이 선다는 주제의 콜로키움을 가졌다. 각 전공의 경계를 넘나들고 뒤섞이고 배움의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 대학생들에게 이를 지도하기 위해 융합교과과정을 시도하려는 모임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대학원에 학제 간의 통합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대학도 많으며, 특히 BK21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많은 대학이 이미 많은 연구결과와 성과를 내놓고 있다. 20세기를 지배한 오토매틱사고에서 비롯된 지나친 세분화가 가져오는 폐해를 이제야 깨닫고 벗어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어느 대학은 학부에 융합과정을 신설한다고 한다.

이 융합과정이 또 하나의 유행을 타지 않고 자리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회복해야 한다. 다른 전공에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전공에 심취해 자신감을 갖고 다른 분야를 들여다 볼 여유가 생길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융합과정이 성공하려면 각 전공이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 내 분야의 전공이 침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흡수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간에 내주고 드나드는 영역, 합쳐지는 영역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과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천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불필요한 가식, 오만과 불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주변을 살피고 다름을 존중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작은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는 소박한 순수성을 유지하며,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한다. 대학이 진정한 대학으로 다시 서고, 배움의 길을 열어 긴 기다림을 인내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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