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주년 노동절 맞이 '4.30 전야제' 르포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운동을 이끈 스파이즈가 남긴 말이다.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은 평균 16시간에 달하는 노동을 하고도 고용자로부터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886년 5월 1일, 분개한 노동자들은 총파업 투쟁을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이른바 노동절로 불리는 ‘근로자의 날’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노동자들도 1923년부터 노동절을 기념해왔다. 한편, 1989년부터 대학생들은 노동절을 축하하는 의미로 ‘4.30 전야제’를 만들어 노동자를 위로해왔다.
올해에도 전국 대학생 연합 <대학생 대안찾기>가 ‘고용불안 해소ㆍ생활임금 쟁취ㆍ간접고용 철폐’를 주제로 노동절 맞이 '4.30 전야제'를 준비했다. 지난 30일, 고려대 민주광장 앞에서 열린 청년투쟁문화제 ‘맥박’을 찾았다.

 

 참, 억척스러운 날씨였다. 아침 일찍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바람에 고려대 민주광장에 마련된 무대와 조명이 온통 비에 젖었고, 행사는 자꾸만 지연됐다. 짜증이 날 법한 날씨였지만 광장에 모인 학생들은 비옷을 걸쳐입고 문화제가 시작되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이번 행사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전국철거민연합과 정치인, 서울 시내 대학 청소노조원 등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몸짓패들의 공연을 시작으로 드디어 투쟁문화제의 막이 올랐다. 노동가요 ‘풀’에 맞춰 박력 있는 몸짓공연을 선보인 장일영(26ㆍ남)씨는 “풀처럼 강인한 노동자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노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가도 굵은 빗줄기는 그칠 줄 을 몰랐지만, 성균관대 <아성>, 고려대 <비상> 소속의 대학생 몸짓패들은 우비마저 벗어놓고 노동자의 삶을 온 몸으로 표현해냈다.

   ‘평생 일만하고도 헌신짝처럼 버려질 때…우리의 바램은 평생 일터’라는 노래가 나오자 관객의 이목이 무대로 집중됐다. 60세가 넘은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이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이다. 아주머니들의 노래와 몸짓은 반 박자씩 느렸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더 큰 함성과 박수로 이들을 격려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명숙(62ㆍ여)씨는 “지난 3월, 직장에서 파업을 할 때 많은 학생들이 지지해줘서 굉장히 고마웠다”며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학내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이 무대를 준비한 송민석(22ㆍ남)씨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덕분에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투쟁문화제의 열기가 달아오른 덕분일까.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스피커에선 계속해서 ‘주먹을 쥐고 함성을 외쳐라! 진정한 자유는 우리의 움켜쥔 두 손에 있다’와 같은 노동가요가 흘러나왔다. 노래에는 노동자의 애환이나 바람이 담겨있었다. 노동가요를 부른 수원대 <새벽소래>, 성균관대 <아우성>은 간주가 나올 때 ‘단결’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올해 처음으로 행사에 참여했다는 한대호(22ㆍ남)씨는 “모르는 노래가 많지만 모두가 즐기는 축제분위기라 흥이 나서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노동자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쌍용자동차노조 기획국장 이창근씨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내 친구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며 “내 친구를 자살로 이끈 좌절감과 고립감은 현재 한국의 대학생들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연대해 사회내의 부조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외에도 청소노동자 김경순씨와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장 이백윤씨가 올라와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마음을 모으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발언을 하기 위해 나섰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안민지(22ㆍ여)씨는 “대학 내의 문제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쳐 투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무대밖에 서있던 심은영(20ㆍ여)씨는 “평소에 노동 관련된 행사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발언을 들어도 감흥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무대 밖에서는 이번 문화제에 참여한 다양한 단체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광장 반대편에 위치한 간이 부스에서는 전국철거민연합 소속의 시민들이 어묵을 팔고 있었다. 부스를 운영하고 있던 조규승(김포신곡6지구 위원장)씨는 “어묵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고 온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학내문제 뿐 아니라 지역사정에도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한 쪽에는 대학생들이 가판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진보 주간지인 <레프트21>을 소개하거나 노동문제를 다룬 소책자를 파는 사람도 있었고, 사회주의를 홍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서명을 받던 김연씨는 “우리나라 사람은 사회주의라면 무조건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장점과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행사가 시작 된지 2시간이 지났지만 광장은 여전히 노동절 전야제를 기념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민주광장 중앙에 세워진 ‘고려대 메이데이 실천단’ ‘실드ㅸㅣ’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 등 각 단체의 소속을 나타내는 깃발들은 마지막까지 힘차게 나부꼈다. “역사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것은 투쟁입니다” 행사를 기획한 단장 아로미씨가 구호를 외치며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그가 노동가 ‘인터네셔널가’를 선창하자 민주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함께 제창을 했다. 이로써 행사가 마무리 됐다. 그러나 조명이 꺼진 후에도,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연대하여 노동자의 기본권리 지켜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전야제의 열기를 이어갔다.

  이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이아혜(24ㆍ여)씨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대학생이고 그들 스스로 행사를 주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문화제를 통해 노동자들의 권리보장과 그들의 문제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절 전야제가 연중행사처럼 일시적인 행사에 그쳐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2005년부터 노동절 전야제에 참가해왔다는 양보은(26ㆍ여)씨는 “몇 년간 이 행사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노동자나 철거민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어렵다”며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공감해야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퍼포먼스 뿐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에 비해 행사 규모가 줄어든 것을 한계점으로 지적한 이도 있었다. 10년 전 노동절 전야제에 참가했다는 최고봉(33ㆍ남)씨는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4천명이 넘는 학생이 모였었는데, 지금은 그 때의 10분의 1도 안될 정도로 규모가 많이 줄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