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의 비애


'세상이 밉습니다. 한국의 대학 사회가 증오스럽습니다! … 정교수가 되려면 1억 5000만원에서 많게는 3억 원을 내야한다더군요.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 …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이는 지난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간강사 故 서정민 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10년 동안 여러 대학의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그는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이자, 한 가정의 듬직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정교수가 되기를 희망했던 그는 시간강사와 정교수 사이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끝내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는 유서에서 어느 정교수를 대신해 54편의 논문을 대필했던 사실을 폭로하며 “시간강사 제도를 그대로 두면 안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밝히고 싶었던 대학 내 ‘시간강사’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2011년 현재, 한국에는 7만 5천 명의 시간강사가 있다. 이는 전국 4년제 국·공·사립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13만 5천 명 중, 55%에 해당할 정도로 많은 수이다. 우리가 강의실에서 만나는 교수 중 절반 이상이 실은 시간강사인 셈이다.


 

◆철저히 차별받아온 시간강사…저임금과 고용불안, 각종 복지혜택에서 제외돼      
  그동안 대학가에서 시간강사는 언제나 차별의 대상이었다. 특히, 전임교원과 시간강사 간의 임금격차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4년제 일반대학 시간강사들의 강의료는 평균 3만 6400원이다. 한 명의 시간강사가 2학기 연속으로 전임교원들처럼 주당 9시간을 강의할 경우, 117만 원의 연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임교원의 연봉이 평균 5천만 원 이상임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5년째 서울 소재 사립대학에 출강 중인 시간강사 A씨는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한다는 측면에서 전임교원의 노동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우리도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강의료는 전임교원의 절반도 받지 못해 억울하다”고 말했다.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점 또한 시간강사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다. 현행법상 그들은 ‘교원’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6개월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당장 시간강사로 고용돼도 다음 학기의 고용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리 강의를 준비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역사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 B씨는 “다음 학기에 강의배정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장기적인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가 어렵다”며 “방학만 되면 강의를 배정받기 위해 대학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전전긍긍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시간강사들은 교원이 아니기 때문에 ‘학사참정권·교과목개설권·총장선출권·개인 연구실 사용’과 같은 복지혜택에서도 항상 배제돼왔다.


◆시간강사, 49년엔 '교원'으로 인정받았으나, 77년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돼 
  사실, 시간강사가 처음부터 이렇게 홀대를 당했던 것은 아니다. 1949년「교육법」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 시간강사도 교수와 같은 ‘교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1977년 말,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시간강사를 교원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교육법」이 개정됐다. 이때부터 시간강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지위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됐고, 이후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간강사는 ‘교원’이 아니라, 시급을 받으며 강의를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로 살아가고 있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하려 나선 시간강사와 국회의원
  그래서 1988년, 전국의 시간강사들이 모였다. 이들은 ‘전국대학강사협의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2007년 ‘한국 비정규교수노동조합’으로 이름을 바꾸고, 1인시위·천막농성·간담회 등을 개최하며 시간강사의 권리를 회복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들이 노력한 덕분에 우리 사회에는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에 국회의원들도 이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최순영 의원과 한나라당의 이주호 의원 등이 ‘시간 강사 전원을 교원으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18대 국회에서도 6명의 국회의원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각 법안의 명칭은 달랐지만, 시간강사의 권리를 회복시키겠다는 취지는 같았다. 그러나 이 법안 모두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22일, 시간강사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해소 내용 담은 '개정안' 국회에 제출돼
  최근에도 시간강사의 고용 및 복지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이 국회에 접수됐다. 지난 3월 22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위 법안이 통과되면, 국·공·사립대에서 시간강사는 정식 ‘교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또한, 강사의 계약기간도 최소 1년 이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고용불안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이 법안의 개선책인 ‘시간강사 급여 인상안’도 내놨다.

  이에 따라 국·공립대 시간강사들은 올해부터 시급이 6만원으로 오르고, 매년 1만 원씩 임금을 인상받아 2013년이 되면 최대 8만 원까지 받을 수 있게된다. 황영숙(교육과학기술부 대학선진화과) 주무관은 “본 법안이 통과하면 시간강사도 교원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시간강사는 임금을 더 받게되고, 임용과정과 신분보장 측면에서도 기존 교원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위 개정안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측과 '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입장 밝혀
  그러나 이 법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는 의견도 많다. 특히 ‘강의료 인상안’은 법적 강제성을 갖지 않기 때문
에 실행될 확률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인상안에는 국·공립대학교에서만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사립대학교에선 권고안의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 중 78%가 사립대임을 고려하면, 이번 인상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간강사의 수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김상목 사무국장은 “이 법안은 시간강사를 대학의 교원으로 인정한다고 명시했지만, 기존교원과 다른 ‘교원 외 교원’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부여했다”며 “시간강사는 ‘교원’이라는 이름만 갖게 됐을 뿐이지, 여전히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및「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의 혜택은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노조 뿐 아니라 사립대학측 또한 ‘강의료 인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해 예산안이 이미 짜인 상태에서, 시간강사에게 임금을 더 주려면 추가적인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립대학 총장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등록금 동결을요구하면서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이다”며 “이는 정부가 시간강사의 강의료 문제를 사립대학교와 학생에게 그냥 떠넘기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 미뤄지는 동안, 삶 비관한 7명 시간강사가 자살하기도
  이렇듯 각계각층에서 시간강사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몇 몇 시간강사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00년 이후 7명의 시간강사가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연달아 자살을 한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저임금 때문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거나, 정교수로 채용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대해 시간강사의 노동법적 지위와 보호를 주제로 연구한 권혁교수(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시간강사는 단순한 ‘근로자’가 아닌 ‘독립적인 교육 및 연구자’이다. 이들을 특별한 사회보장적 보호대상으로 인정하여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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