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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나의 외길 인생… 바보의 길이지"고은 시인을 만나다
김지원 기자  |  smpkjw79@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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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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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1211호

 

   
 
  ▲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겨레말 큰사전 편찬 사업회 사무실에서 고은 시인을 만났다. 올해로 78세를 맞은 시인은 그가 시 만인보에서 보여줬듯, 모든 사람을 사랑스러워하는 태도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머슴 대길이, 쩔뚝발이 영자, 땅꾼 도선이……. 그의 시집 <만인보*(萬人譜)>는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는 인물들이 있고 그들이 보여주는 세월이 있으며 그런 그들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시인의 모습도 담겨있다. 20여년에 걸쳐 집필한 <만인보>를 지난 해 완간한 이후에도, 쉴 새 없이 작업 활동을 계속 해 나가고 있는 그. 문학에 있어서 ‘나에겐 슬럼프가 없었다’고 말하는 20대 못지않은 정열을 가진 고은 시인을 만나봤다.

   <만인보*> : 고은 시인이 20여년에 걸쳐 완성한 시집. 1986년부터 책으로 발간 돼 2010년 전 30권으로 완간됨.

   
#문학
-3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쓰신  <만인보>의 마지막 30권을 쓰셨을 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가 벗은 느낌이었지. 그런데 또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그 옷을 다시 입은 느낌이야.(웃음) 만인보 속 그들은 모두 내 주변의 실존인물이야. 그러나 고주몽, 이황, 이순신등 역사적 인물들 같은 경우는 고서나 역사로 남아있는 것일 뿐이니까, 시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상은 개입됐지. 문사의 흔적이나 유물의 토막으로 남겨져 있는 것을 나는 상상과 창작을 통해 인물들이 피를 돌게 하고 눈도 빛나게 하는 거지.
 

 

-그 중 더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으신다면
 난 그들 하나하나에 모두 애정을 가지고 있어. 물론 친한 사람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알고 그렇지 않은 이는 상대적으로 덜 아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 그들은 모두 똑같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야. 특별히 누군가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만인보의 작자로서 공정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만인보>가 선생님이 만나온 인물들에 대해 노래하는 시이기에 완간 이후에도 소재가 계속해서 생기지 않으세요?
 완간 후에도 시로 쓸 소재는 무궁무진해. 때문에 만인보는 본질적으로 끝이 없을 수밖에 없지. 30권을 완간한 이후에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쓰고 싶은 인물들이 생기거든. 그러나 30권이라는 나와 세상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고, 그 다음에 들려 줄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내려놓은 것이지.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무궁무진하면서도 그 양이 실로 대단한데요, 선생님의 작업 스타일은 어떠세요?
 옛적에는 생각나면 밤에도 쓰곤 했었는데 지금은 일정한 작업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편이야. 대체적으로 오전 10시에서 12시, 오후 3시에서 5시가 글 쓰는 작업을 하는 시간대지. 밤에는 주로 읽어야할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 어찌보면 학생들과 다름없는 규칙적인 시간표지. 마치 너희가 강의시간에 맞춰 수업을 듣듯이 말이야.(웃음)


-등단 52년동안 왕성한 문학 활동을 이어 올 수 있었던 선생님의 원천은 뭘까요?
 그 원천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다만 난 문학행위나 삶의 행위에 있어서 가장 먼저 가치를 부여할 것이 열정이라고 생각해. 열정이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 배를 저을 때도 손가락 하나로는 노를 젓지 못하듯 난 무슨 일이든 열정으로 온 힘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해. 열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무척이나 크니까.


#남북 공동의 사전 편찬 사업
-‘겨레말 사전* 편찬 사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언어는 본질적으로는 영원하지만 계속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때문에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으면서 우리 민족의 언어는 계속해서 달라지고 흩어졌지. 언어들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커다른 장에 모아놓는 잔치가 필요했어. 그게 바로 이 겨레말사전 편찬 사업이지. 남측과 북측 대표 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면서 작업을 해. 땅은 나중에 만나도 되지만 언어는 지금 모아두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에 이 사업은 통일을 위해 중요한 과정이야.


-선생님께서 누구보다도 통일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시대를 거듭할수록 통일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해지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60년 동안 통일이 안 된 상태를 지속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져 있지. 그런데 역사를 크게 보면 분단된 지금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낯선 시기란다. 지금은 꼬리 잘린 도마뱀과 같아. 본래의 형태가 아닌 것에 그저 익숙해져 버린 거지. 물론 휴전선을 그은 이후, 그 후세대들이 태어나면서 현재까지를 이뤘겠지만, 지금이 온전하지 못한 시대란 걸 인식해야 돼. 또한 반드시 다시 고쳐야 할 시기이기도 하고.

<겨레말큰사전*> : 분단 이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첫 사전.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극복하고 통일 이후 언어생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006년부터 추진해온 사업. 현재 고은 시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삶과 시세계
-선생님의 초기 시들을 보면서 한국전쟁의 아픔과 그로 인한 허무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요, 어떻게 그 허무감과 아픔을 극복하셨나요?
 나의 20대는 청춘보다 전쟁으로 인한 폐해, 초췌한 광경이 즐비한 참혹한 시기였어. 그때 지금 내 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젊은 나이에 죽었지. 그래서 젊은 시절은 황홀함보다 빚 같은 죄책감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어. 때문에 처음엔 생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허무 감정에 사로잡혔어. 그러나 시간이라는 위대한 힘이 있었으니까. 그것에 의해 비록 정신적 흉터는 남았지만 아프지 않을 정도로 치유가 됐고 그러면서 서서히 극복했어.

 
-미래를 이끌게 될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난 그들에게 특별히 해줄 말이 없어. 그들의 미래는 그들이 이끌어 가는 거니까. 다만 젊은이 고독함을 알았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히며 사는 거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도 혼자만의 고독함은 분명히 있어야 하거든. 고독함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 보는 시간을 찾는 거지. 그러다 보면 자아를 찾게 되고 또한 자신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하게 되지. 연대의식도 갖게 되고 사회에 동참하게 되는 거야.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고독한 시간을 가지려 하지 않고 일회적인 것만 쫒아 가는 것 같아. 누구를 그저 쫒기 보다는 주체적으로 사는 것. 고독에는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있어.

 
-예전에 선생님께서 ‘내가 죽고 나서 몇 년 뒤 누군가 내 무덤을 파헤쳐본다면 내 뼈 대신 내가 그 무덤의 어둠 속에서 쓴 시로 꽉 차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참 인상에 남았어요, 이런 선생님께 시란 무엇인가 여쭙고 싶어요.
 몇 천년동안 시가 있어 오면서 시에 대한 정의는 정말 다양하게 있어왔어.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하게 변화해온 시를 학문적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개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시는 무엇이다’고 단정 짓는 것을 하지 않고 있어. 아직까지는 나에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지. 언제 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은 질문인데요. 선생님은 왜 시인이 되셨나요?
 글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운명이였던 것 같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이 일 이외에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일엔 영 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이것만이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나에게 가장 맞는 길이야. 바보의 길이지.

 

글 김지원기자 smpkjw79@sm.ac.kr
사진 서현기자 smpysh78@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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