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편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성이 순백의 발레복을 입은 한 소녀를 응시하고 있다. 그 소녀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우아한 발레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에드가 드가(1834~1917)의 《무대 위의 무희》로 1870년대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 그림은 어린 소녀의 발레 동작만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숨은 뜻을 알고 나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당시 가난한 부모들은 돈을 받고 자녀를 무용단에 입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용단에 입단한 소녀들은 부유한 후원자의 수입에 의존해 고급매춘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즉, 이 작품 속 무대는 아름다운 예술의 현장이 아닌 소녀들이 돈으로 매매됐던 시대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 그림처럼 많은 미술작품 속에서 ‘여성’은 흔히 작품의 소재로 사용됐고, 작가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당시 사회상 등을 담아냈다. 대표적인 작품 몇 점을 통해 명화 속 여성들의 모습에 어떠한 상징들이 담겨져 있는지 알아보자.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 《유디트》

이 작품은 주인공인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유태인들에게는 충성스럽고 고귀한 여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그려진 유디트는 약간은 마른 듯한 몸매에 입은 반쯤 벌리며 퇴폐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일반적인 인식 속의 유디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이미경(서양미술사 전공) 강사는 “당시의 작품들은 그 시기에 확산됐던 성병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며 그 두려움을 *팜파탈로 승화시켰어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대한 남성의 공포감이 있어요. 산업혁명 이후 여성의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남성의 고유한 활동으로 여겨진 경제활동이 위협을 받은 것이죠. 따라서 당시 많은 작품들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팜파탈의 이미지로 여성을 왜곡시키기도 했어요. 《유디트》는 그러한 작품 중 하나에요”라고 설명한다.

*팜파탈(femme fatale):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용어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1869~1954) - 《오달리스크》

프랑스인인 마티스는 작품 활동 중반 경에 오스만 터키 제국의 후궁들이 거쳐했던 장소인 할렘의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이에 마티스는 이곳에 살던 *오달리스크를 주제로 작품을 연재했고, 연작들에는 《노란 옷의 오달리스크》, 《가로 누운 오달리스크》 등이 속한다. 이국적인 외모의 《오달리스크》 속 여성들은 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보는 이들은 가장 먼저 ‘강렬함’, ‘에로티시즘’ 을 떠올리겠지만 이 작품들은 여성의 지위와 관련해 중요한 사실을 품고 있다. 마티스가 이 작품들을 그렸을 당시는 프랑스 내에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점차 향상됐는데, 이는 미술 작품을 그리는 작가와 그림의 대상이 되는 여성모델 사이에서도 반영됐다. 그동안의 모델들은 작가의 지시에만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오달리스크》에서는 모델도 작품의 참여주체가 됐다. 이에 이미경(서양미술사 전공) 강사는 “《오달리스크》는 모델과 작가가 작품에 대해 협의를 시작하면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1940년대 이전에 여성의 지위상승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라고 덧붙였다.

*오달리스크: 오스만 터키 제국의 후궁들이 거쳐하는 할렘에서 시중을 드는 노예를 뜻하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할렘의 여자들을 총칭해 오달리스크라고 불렀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 - 《해변의 여인들》

천재화가 피카소의 작품 중 하나인 《해변의 여인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작품 속 여성들의 팔과 다리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지 않나? 긴 팔과 다리는 마치 사마귀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피카소는 여성을 사마귀처럼 표현한 작품을 여러 점 만들었다. 사마귀는 교미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곤충인데, 피카소는 이러한 사마귀의 습성을 이용해 자신이 여성에게 가졌던 두려움을 대변하고 있다. 바람둥이로 유명했던 피카소지만 많은 여성과의 교제로 인해 성병에 걸려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이성 관계에 대해 공포심을 가졌던 피카소는 이 작품에서 사마귀의 모습을 띈 여성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잘 드러냈다.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여성을 통해 자신의 불안한 심리나 자신의 내면 등을 간접적으로 표현기도 했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 - 《마망》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미 형상의 이 조각상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이 작품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아버지의 외도에도 평생을 고생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거미라는 소재와 거미의 알집이다. 거미는 실을 뽑는 동물로 이는 여성성, 특히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거미의 알집은 거미의 알을 보호하는 것처럼 가정을 지키려고 했던 어머니의 희생을 나타낸다. 이러한 어머니를 측은히 여겼던 루이스 부르주아는 거미라는 소재로 당시 어머니의 역할과 가부장제 하에 고통 받는 여성을 표현해 낸 작가로 유명하다. 물론 루이스 부르주아 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 등 많은 작가들이 어머니를 모티프로 해 작품을 그렸다.

위의 《유디트》, 《오달리스크》, 《해변의 여인들》외에도 여성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고갱의 《타이티의 연인들》, 뭉크의 《마돈나》 등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의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해 그림 속에서만 등장했던 여성이 화가로 등장하기 시작해 미술사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이미경(서양미술사 전공) 강사는 “현대 미술에서 여성작가들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과거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해 거부하는 작품을 주로 그려요. 따라서 작품 속 여성을 볼 때 남성의 시선을 대변하는 수동적인 여성인지, 혹은 그러한 남성의 시선을 거부하는 여성이 됐는지 한번쯤 구분해보길 바라요”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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