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라이벌]

요즘 최고의 코미디언을 꼽으라면 단연 유재석과 강호동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사회는 거의 이 두 사람이 나눠 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도 이렇게 온 국민을 배꼽 잡게 웃겼던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바로 남보원과 지난 7월에 별세한 故 백남봉입니다. TV의 보급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그들의 인기는 지금의 유재석과 강호동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굉장했다고 하죠. 한국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코미디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백남봉과 남보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원맨쇼(One-Man-Show)’일 것입니다. ‘원맨쇼’라는 말 그대로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각종 장기를 선보이는 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장기의 종류는 차이가 있었죠.

故 백남봉은 주로 아쟁이나 가야금 같은 악기 소리를 흉내 내 흥을 돋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팔도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달인’이었습니다. 백남봉은 어린시절 전국으로 피난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각 지역의 사투리를 익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혼자서 아줌마와 할아버지부터 학생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모사하며 ‘꽁트’를 선보였죠. 단순히 대사로 구성된 ‘꽁트’는 그의 기막힌 재치와 만나면서 맛깔 나는 한편의 상황극으로 재탄생 했죠. 한편 남보원은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모사하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였습니다. 뱃고동 소리나 포탄 떨어지는 소리처럼 큰 성량을 필요로 하는 소리를 잘 냈죠. 이렇게 다양한 성대모사를 특기로 가진 그들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의 장기를 번갈아 선보이며 대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마빡이’로 유명한 정종철과 비슷한 코미디 배우였습니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 역할을 하기보다는 혼자서 좌중을 웃기는 데 뛰어난 코미디언이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지금의 KBS 2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사용하는 스탠딩 코미디 형식도 70년대에 그들이 유행시켰던 원맨쇼 형식에서 이어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덕분에 그들은 지금까지도 후배 코미디언들뿐만 아니라 많은 방송인들에게 ‘원맨쇼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보통 ‘라이벌’이라 하면 불꽃 튀는 경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지금까지의 ‘세기의 라이벌’ 시리즈에 등장했던 픽사와 드림워즈가 그랬고, 에디슨과 테슬라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故 백남봉과 남보원은 조금 특별한 라이벌이었습니다. 서로를 친 가족처럼 끔찍이 여기는 라이벌이었죠. 실제로 남보원은 한 인터뷰에서 “(백)남봉이와는 예능 극단인 ‘새나라쇼단’에서 처음 만났는데, 지(백남봉)나 나나 초라할 때 만나서 이후로 참 친하게 지냈었다”며 “남들이야 우리보고 서로 라이벌이라고 그랬지만 우리는 각자의 아이들이 우리를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7월 23일, 故 백남봉이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는 그들의 대결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순간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남보원의 모습에서 수많은 시청자들은 웃음을 넘어선 감동으로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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