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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을 향한 몸짓
김예람 기자  |  smpkyr72@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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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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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 위치한 ‘들꽃향기’는 홍신자 동문의 아지트라고 할 만큼 그가 자주 찾는 전통 찻집이다. 그곳은 짙은 나무 향내가 코를 기분 좋게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인터뷰 내내 들리던 전통 음악, 달콤한 전통 차, 모두에게서 홍 동문의 빛깔과 어울리는 연륜의 멋이 느껴졌다.

자유로운 행위 속에 담긴 꿈

   
 
   
 

홍 동문은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무용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용가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을 향해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호텔경영학에 매력을 느끼고 공부하던 중 우연히 현대 무용가 알윈 니콜라이의 공연을 보게 됐다. 이는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됐다.

니콜라이의 공연에서 ‘저것이다!’하는 느낌을 받은 후 무용을 향한 홍 동문의 꿈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는 스탠튼의 빈민촌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할 만큼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이같은 노력은 니콜라이의 무용학교, 콜럼비아대학 무용과 대학원 석사과정, 뉴욕 예술학교에서의 안무 공부까지 모두 마칠 수 있게 했다. 후에 홍 동문은 작품 <제례>의 성공과 함께 뉴욕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세계에 ‘무용가 홍신자’를 알렸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성공을 위해 달리기만 하던 그에게 알 수 없는 허탈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는 무용의 길을 잠시 접고 구도의 길을 찾아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그러나 춤추고 싶다는 열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홍 동문은 춤 없이 살 수 없어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계속 춤을 연마했다. “다락방처럼 좁은 공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몸이 녹초가 될 만큼 고된 훈련이 계속 됐지만 나에 대해 깨닫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견뎌냈지.” 그는 인도에서의 경험을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봤던 “나를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홍 동문의 인생이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과 같았듯 그의 결혼관 역시 자유로웠다. 날렵한 몸이 생명인 무용가에게 출산은 은퇴와도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은 환영이다.’라는 깨달음으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결혼을 한 후 출산도 했다.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시점에 선 그는 “나의 춤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전위 예술에 가깝기 때문에 80세가 되더라도 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예술을 통해 걷는 구도의 길

   
 
   
 

“나는 춤을 구도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하며, 내가 춤추고 있는 것 자체가 구도라 생각하네.” 홍 동문이 말하듯 그의 작품 세계는 단순한 춤이라기보다 행위를 통한 구도에 가깝다.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제례>는 오랜 세월 병을 앓다 죽은 언니의 인생을 작품화 한 것이다. 그는 예술을 테라피적인 것이라 했다. “첫 작품은 인생에서의 상처,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 자신을 뒤돌아보면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벗겨지고 그것이 곧 작품과 연결 되는 것이야.”라며 예술에 있어서의 자아 성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작품에는 죽음을 주제로 한 것도 있다. 홍 동문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해골을 끌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해골에 물을 받아 마시기도 하면서 죽음으로부터 초연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에 대해 관심 갖고 표현하고자 했던 이유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지. 죽음에 대해 알면 모든 두려움도 끝날 것이야.”라며 “죽음을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이며, 내 삶의 일부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싶었지.”라고 설명했다.

깊은 곳에서 만나는 ‘나’

홍 동문의 책 『자유를 위한 변명』에는 “춤을 추는 순간 춤은 보이지만 춤추는 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보는 자의 영혼에만 와 닿을 뿐 그 흔적은 남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그는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속에 자아가 있으면 이미 순수함을 잃고 흐려진 것이야.”라며 행위 속에서 자아는 사라져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자아를 찾는 연습을 하기 위해 빅 아일랜드의 정글 속에 오두막을 지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는 깊은 곳에 자리한 나의 에너지가 약해지기 쉽지.” 그가 정글을 택한 이유도 세속적인 방해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아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 동문이 자연 속 명상을 통해 깨달은 바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81년에 창단한 무용단 ‘웃는 돌’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직 움직이는 것만이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지. 우리 마음이 열려 있다면 돌에도 생명이 있는 것이 보인다네.” 그는 웃지 못해 돌보다도 더 죽어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며 안타까운 웃음을 지었다.

 

홍 동문은 인터뷰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면서 “얼마 전에 학교에 갔었는데 몰라보게 건물 수가 늘었더라구.”하며 “마치 밀림 같았어.”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새롭게 전환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겉에서만 맴돌고 있어. 깊이 깊이 자신의 소리를 듣고자 애쓰면 내면 깊은 곳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야.”라는 말을 전한다고 했다. 요즘 그는 6월에 있을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틈틈이 명상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하루 하루가 바쁘다는 홍 동문에게서 ‘들꽃향기’의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처럼 식지 않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삶의 깊은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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