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6-월

매주 주말 저녁 6시 경의 방송가는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총알 대신 ‘웃음’을 얻기 위한 준비장치들이 오고 가고, 타국의 영토 대신 시청자의 ‘마음’을 뺏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전쟁터에서 예능 PD는 한 부대를 이끄는 장군과 다름없다.   

예능 전쟁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를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은 부대가 있다. 바로 ‘일밤’의 ‘뜨거운 형제들’(이하 ‘뜨형’)이다.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뜨형’의 오윤환 PD를 만났다. 밀짚모자에 뻗친 머리를 한 그는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인 루피를 연상케 하는 앳된 외모와는 달리 전투를 준비하는 장군처럼 깊은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뜨거운 형제들’

-요즘 TV에는 남자들의 형제애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다. 이런 프로그램들 속에서 뜨형이 가지는 차별성은

오직 웃음 하나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능프로는 만화책처럼 한번 보고 웃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끝나고 나서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가하는 세세한 분석도 필요 없다. 나는 눈물을 자아내고 감동을 주려하는 소위 ‘착한 예능’이라 불리는 프로그램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예능프로그램이 진정한 예능의 의미를 퇴색시켰다고 본다. 예능의 진정한 목적은 시청자에게 눈물과 감동을 주는 것보다 한바탕 실컷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구성 방식이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갈수록 인위적이고 진부해지는 것 같다

우리 프로그램는 한 번도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적이 없다. 처음에 방송가에 리얼 버라이어티란 말이 생겼을 때도 동조하지 않았고, 편집자로서 실제와 경계가 없는 예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편집자의 의도와 출연자들의 연기가 덧씌워진 것이다. 인위적인 것은 예능 프로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보이는 것이 식상함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현 체제를 유지하되 보완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청 층을 좀 더 넓히려는 노력과 더불어, 게스트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모색할 것이다.

-지난해에 연출한 ‘대망’이라는 프로그램이 신선한 화면구성과 독특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방영 된지 한 달 만에 조기 종영됐다. ‘대망’의 실패 요인이 ‘뜨형’에 어떻게 보완이 됐는지 궁금하다

대망에서 했던 새로운 시도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렵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 같다. 전파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쉬우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뜨형’이 ‘대망’보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쉽게 다가가려 했다는 점에서 보완이 된 것 같다. ‘상황극’과 ‘아바타 소개팅’이 각각 개그 프로그램, 영화의 소재로 차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능 PD로 산다는 것

-예능국 PD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을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하고 웃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직업이라 좋다. 또한 양복을 입지 않아도 고,선후배 간에 위계질서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직업을 택했던 이유 중 하나다.

-시청자들을 웃기는 일을 하다 보니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웃을 일이 많을 것 같다

제작진이 좋은 반응을 자주 나타낼수록 촬영 분위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잘 웃어주는 편이다. 그러나 촬영을 준비 하는 과정에서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심각하게 회의한다. 예능 국에서는 한 시간 웃기기 위해 일주일 화내면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시청자에게 눈물을 얻는 것보다 웃음을 얻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된다.

-‘뜨형’의 ‘핫핫 핫핫’이라는 효과음, 무릎팍 도사의 ‘액션’이라는 효과음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감각이 탁월한 것 같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줬다. ‘뜨형’의 효과음은 미국 락밴드인 스매시마우스(Smash Mouth)의 "Hot"이라는 노래의 일부분이다. 무릎팍 도사의 ‘액션’은 킬빌 DVD 예고편에 나오는 음악의 일부이다.

-예능 피디로 일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얻은 것은 일에 대한 확신과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집에 들어갈 새도 없이 바쁜 생활을 9년간 해왔던 걸 보면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또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적 특성 덕분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진중권 교수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출연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무릎팍 도사 PD였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잃은 것은 건강과 주말이다. 입사 이후 9년간 새벽 2~3시에 일이 끝나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일요일 저녁조차도 월요일 시청률이 나올 때까지 밤을 새서 기다려야 한다.


# PD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대학시절에 했던 특별한 경험이 있으면 말해 달라.

미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유럽의 미술관에 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친구와 40일 동안 36곳의 미술관을 견학했는데, 그 중 클림튼의 키스를 실제로 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록은 노란색인데 진짜 황금빛으로 돼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만 보던 미술작품을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은 잊혀지지 않는다.

-미학, 음악,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인디 락 페스티벌, 페미니즘 단체에서 하는 월경 페스티벌, 레즈비언 축제에도 참가했었다.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폭넓은 사고, 남들과는 다른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내가 대학생일 때는 주류에서 벗어난 문화를 동경하고 멋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이 기업체에서 하는 인턴이나 공모전 활동에 주력하는 모습들을 보면 자신들만의 문화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PD가 되기 위해 꼭 갖추어야 될 소양은

정치적 올바름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건 특정 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있어서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소양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프로그램에도 반영이 된다. ‘내가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걸러내야 하는가’ 하는 보편적인 판단 기준을 가져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웃겼지만 보편적인 도덕률을 무시한 개그라면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PD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이것만은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연애다. 나 또한 대학 시절 가장 많이 한 것을 꼽으라면 연애이다. 그게 짝사랑이 됐든 서로 좋아하는 관계이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얻지 못하면서 어떻게 시청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연애라는 것이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이고 지나고 나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좋은 경험이다.


1시간 30분여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오 PD에게 있어 예능 프로그램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가 제작한 프로그램들만큼이나 창의적이고 신선한 답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너무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예능이다” 조금 황당해하는 기자의 표정을 관찰하던 오 PD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어떤 PD가 편집을 하고, 어떤 사람들이 출연하든 예능프로그램은 ‘사람을 웃겨야 하는 것’ 그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좀처럼 웃기 힘든 일들이 많은 요즘,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는 한바탕의 웃음이 절실하다. 웃고 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찰나의 그 순간을 위해 밤새워 고민하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영화, 만화, 음악 다양한 소재를 그만의 색깔로 변용할 줄 아는 오 PD, 그와의 인터뷰는 진정 뜨거웠다.

유서현 기자 smpysh78@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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