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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부문 매화상최은하(고양예술고등학교)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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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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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나는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예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연, 지각, 더러움 이 세가지입니다. 때론, 주위에서 넌 너무 깐깐하다며 지적을 하시는 분도 계시긴 하지만, 그건 자신이 지극히 게으른 사람이라는 걸 잘 모르는 분들이나 하시는 말씀이예요.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하루를 100조각으로 나누어도 모자르는게 시간이라는 걸 그분들은 아시는 거죠. 그러니까 나는 다른 분들보다 좀 더 알차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SS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어요. 젊은 나이에 뛰어난 면접과 토익점수로, 남들보다는 좀 더 특별하게 입사했죠. 물론, 그건 십년도 더 된 녹슨 이야기예요. 난 나이가 들을수록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옛날얘기를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또 실수를 하고 말았네요. 여하튼, 나는 나이 마흔에 기획팀 총괄 부장직을 맡게되었어요. 생각보다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요? 그렇지도 않아요. 난 아직 결혼도 안 한 노처녀에다 얼마나 꾸준하게 관리를 해왔는데요. 여하튼, 내가 부장직을 맡게 되면서 부터 나의 계획이 더 빠듯해졌어요. 아무래도 승진을 하니까 일이 더 많아졌을거라고요? 아니예요. 좀 똑똑하게 굴어봐요. 여러분. 승진을 하면 할수록 일이 더 적어지는 게 현재 대기업들의 실상이예요. 단지, 늘어가는 게 있다면 결제를 기다리는 서류들과 책임들뿐이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요즘 나와 나의 계획서를 바쁘게 만든 것은 나의 비서, 바로 그 때문이예요.
나는 십년동안 한번도 어긴 적 없는 기상시간, 아침 여섯시에 눈을 떴어요. 그 날 계획은 그 날 써줘야 변동상황이 적어지기 때문에 난 항상 일어나자마자 계획을 짜요. 다이어리를 펴고 <5월 17일 계획서>라고 제목부터 쓴 후, 나는 삼십분마다 각기 다른 세세한 일정을 짰어요. 오늘 일정의 주된 핵심포인트는 LN기업과의 협상 체결과 나의 비서 ‘최미남’과의 술자리 만들기예요.
앞서 말하듯 나는 우연, 지각, 더러움 이 세가지를 가장 싫어해요. ‘우연’만큼 계획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요즘 나에게 ‘우연’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바로 나의 계획을 빠듯하게 만든다는 ‘최미남’ 비서 때문이죠.
나는 나보다 12살 어린 최비서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이런 감정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그냥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마구 뛰어요. 그래서 난 연애를 시작할 때 결정적이라는 ‘우연’을 필요하게 된거죠.
내 성격상 마냥 우연이 일어나기만 기다릴수만 없던 나는 우연을 계획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내가 자꾸 최비서가 나의 계획서를 빠듯하게 만든다고 말한거예요.
난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계획을 짜고, 실행해 나갔어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성에게 다가갈 땐 서두르지 않을수록 좋아요. 한 번은 최비서의 차바퀴에 몰래 구멍을 뚫어 내 차를 함께 타고 가게 했어요. 우린 그때, 생각보다 많이 서로에게 가까워졌어요. 난 아주 계획적이고 성공적인 ‘우연’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나는 주로 회사가 아닌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우연’을 계획했어요. 물론 실행도 잘 되었죠. 이제 최비서는 나에게, 수치로 표시하자면 70%정도 넘어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도 계획한 우연대로 난 퇴근 후 그와 밥을 먹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에게 고백을 하리라고, 오늘 아침 여섯시 삼십분 경에 계획을 세웠죠. 그는 나보고 명동의 한 해물탕 가게로 오라고 했어요. 나의 계획과 30분정도 어긋난 시간이었지만 오늘같이 중요한 날, 그 정도의 오차는 감수해야겠죠?
난 정확히 아홉시에 해물탕 가게로 갔어요. 물론 나의 예상대로 그가 미리 와있었죠. 난 그의 반대편에 앉아 빨리왔네! 라고 말했어요. 그는 나에게 싱긋 웃어보였어요. 난 이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런데 그때 난 나의 계획된 장면과 현재의 장면이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로 최비서 그 옆에 여자 핸드백이 놓여있던거죠. 잠시 후, 핸드백의 주인이 젖은 손으로 자리에 돌아왔어요. 난 무척이나 놀랐죠. 이 핸드백 주인을 나도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핸드백 주인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내 언니의 딸이었어요. 조카는 시골에서 올라와 나의 집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는 그러니까 최비서는 핸드백 주인인 내 조카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이건 정말 상상해본 적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난 평소와 달리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어요. 이건 내 인생 최대의 오류상황이에요. 그래도 단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좋은 이모의 이미지를 빨리 계획해서 내 조카. 핸드백에게 물었죠.
“그래. 민정아. 근데 너는 최비서를 어떻게 알게 된 거니?”
핸드백은 작게 미소지으며 부끄러운 듯 말했어요.
“우연히요. 아주 우연히. 이모가 미남오빠네 데려다 주었을 때, 오빠네 집 앞에서 제가 옛 남친이랑 헤어지고 울고 있었거든요.” 그건 ‘최비서와 우연한 만남만들기’ 아홉번째의 내 계획이었어요. 난 핸드백에게 세상에서 가장 계획적인 ‘우연’을 만들어 준 꼴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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