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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매화상김하늬(상일고등학교)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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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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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


독한 냄새가 코를 욱신 찔렀다. 반 쯤 열어둔 차창으로 쇠똥을 섞은 거름 냄새가 들어왔다. 모서리가 닳아버린 돌을 타고 흐르는 도랑이 양 옆으로 보였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개구리 모양 돌비석도 나타났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떤 덕분에 해가 떨어지기 전 시골에 도착했다.
대문마저 없는 시골집 마당으로 짐을 끌며 들어가고 있는데 ‘왔는가’하는 억센 사투리가 가까이 들렸다. 외할머니가 나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앞다투어 인사를 했다.
인사는 원래 해오던 것보다 짧게 끝났다. 모두들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채에 들리지 않아도 되었다. 사랑채 앞에는 주인을 하늘로 보내버린 흰 고무신 두 짝이 가지런히 놓여있을 뿐이었다.
부엌에 상을 차리고 둘러앉아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밥을 먹었다. 향이 물씬 풍기는 쑥국을 떠먹고 있는 사이, 할아버지의 묘에 가기로 결정이 났다. 할머니의 제안이었다.
할아버지는 무덤을 만들지 않고 수목장을 치뤘다. 화장한 골분을 종이 그릇에 담아 땅에 묻고 그 자리에 비석 하나를 세운게 전부였다. 옆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비석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할머니의 집에서 이십 분만 걸으면 도착하는 그곳에서는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평생을 보낸 마을이었다.
예를 갖추고 물러나자 할머니는 천천히 비석에 다가갔다. 구부정한 뒷태에서 세월의 떼가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키가 볼 때마다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머리가 완전히 새어버린 것을 새삼 눈치챘다. 할머니는 어느새 비석을 쓰다듬고 있었다.
할머니의 뒤에 대고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생전에 그렇게 까칠했던 사람한테 뭘 그렇게 해주냐고 했다.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말임을 모르지 않았다.
할머니 세대의 가장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할아버지는 서릿발같이 엄했다. 할머니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밥을 먹다가 돌이 씹히면 난리도 아니였다고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면만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난 할머니가 왜 비석을 손 끝만 닿아도 깨질 유리인 양 정성스레 쓰다듬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것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단서는 하나였지만 그 하나로 충분했다.
추석 연휴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잠을 자고 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하필이면 부모님 모두 같은 동네에 있는 큰 집에 가 있는 때였다. 밖에 나가면 불빛 한 점 없는 시커먼 밤이 앉아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침까지 참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일단 나가보았다. 다행히 화장실을 지나있는 집 입구에 할머니가 서 있었다. 희뿌연 보름달빛이 실날같이 할머니 주위를 맴돌았다.
어째서 그 곳에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놓인 내가 걸음을 떼려던 차였다. 고무신 끄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대충 보니 술을 몇 잔 들고 오는 길인 듯 했다. 할아버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할머니에게 손을 쑥 내밀었다. 손 위에는 삶은 계란 한 개가 놓여있었다. 두 사람이 사랑채 아궁이에 나란히 걸터앉을 때까지 난 그 자리에서 늦가을 서늘한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지금,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나 땅을 밟았다 사라지듯 할아버지도 그랬다. 그렇지만 진짜로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계속 남아있을 지 모른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지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슴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불현듯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새빨간 꽃을 한무더기 사서 비석 앞에 심고 싶다고 했다.
옆에 우두커니 버티고 있는 소나무 잎이 흔들리며 바람이 일었다. 먼저 불어 간 바람이 사라졌다 싶으면 그 다음 바람이 왔다. 소나무가 만들어낸 바람이 쉬지 않고 할머니를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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