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재(고양예술고등학교)

비탈길

그는 자신의 몸을 뒤로 뉘여 본다. 뒤에 아무도 없지? 새삼스레 뒤를 돌아본 뒤 그는 버튼을 누르고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힌다. 달리는 고속버스 안. 창문 유리로 빗방울의 몸이 파열되어 흐른다. 창밖의 건물들이 내 몸으로부터 수직으로 서 있다. 이 정도 경사가 아니었나? 그는 어느 비탈길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의 경사를 조절해 본다.
그는 어느 시골 마을을 찾았다. 그것은 도심으로부터 무작정 도망을 온 것이었다. 그는 도심의 각박한 생활이 너무도 싫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차를 몰고 회사로 가는 것. 그곳에서 직장 상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들이 던져 놓는 문서를 복사하는 것. 그러는데도 승진으로의 길은 까마득하고 애 엄마 뱃속의 두 번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괴로워서 그는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고속버스를 타고선 시골로 내려왔다.
그가 도착한 마을에서 처음 본 광경은 한 백발 노인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지팡이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겨우 오르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는 오랜 세월 노인을 보좌하느라 자신의 몸을 살피지 못한 것 같았다. 지팡이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한걸음에 다가가 노인을 도왔다. 노인은 주름진 입으로 고맙다는 말을 오물거렸다. 비탈길을 오른 그들은 한 허름한 집에 다다랐다. 노인은 자신의 집이라며 들어오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그는 거미줄이 곳곳에 쳐져 있고, 어쩐지 악취가 나는 듯한 그 집에 들어가기가 굉장히 껄끄러웠다. 그러나 달리 갈 곳도 없었으므로 노인의 말동무나 해 주자는 심산으로 그 집에 들어갔다.
노인은 귀한 술이라며 단지 하나를 잔과 같이 놓았다. 노인은 잔에 술을 따르며 그에게 이런 시골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하자면 길지요’라는 상투적이고 거창한 말로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 노인은 그의 이야기를 몹시 궁금해 했다. 그래서 얼굴을 그의 쪽으로 쭉 빼밀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그는 노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현란한 손동작까지 더하여 그 장엄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노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노인은 참을 수 없었는지 그의 말을 도중에 잘라 먹고 흥분한 채로 말했다.
“예끼, 이 눔아. 그 까정 일이 뭐시라고 마누라 자식새끼 팽겨치고 왔우. 이 눔아, 이 썩어 빠진 놈!”
노인은 그렇게 윽박지르고서 그의 술잔을 낚아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너무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인은 술잔을 머리 위에 털고 말을 이었다.
“시지프스를 아누? 그 눔이 말이여, 쌔빠지게 가파른 언덕에서 내려오눈 거대한 돌을 밀고 또 밀었어. 그 언덕이란 게 말이지, 우리 집 요 비탈길 보다두 더 가파랐어. 거의 수직이었단 말이여. 내는 기냥 요 앞 비탈길 오르는 것만으로도 삭신이 쑤시는디 그 눔은 어떻겄어.”
그는 노인의 윽박에 놀라 몸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갈 수록 노인의 애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시지프스도 처음에는 괴로웠지마눈, 나중에는 의미도 없이 기냥 밀어 올렸단 말이여. 지가 해야할 일인께. 너눈 이 눔아 시지프스에 비할 바가 아니여. 너눈 마누라두 있구 새끼들두 있잖여. 이유가 있는 거여. 이유가.”
노인이 말이 어느 정도 끝나자 그의 가방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여보, 어디있어요? 응? 아냐. 금방 갈게.
그는 노인의 집을 나왔다. 그는 아까 노인과 올랐던 비탈길을 그대로 내려왔다. 이 경사보다 높은 곳에서 돌까지 밀었단 말이지, 시지프스는. 그는 비탈길의 경사를 가늠해 보았다. 생각보다도 더 높은 것 같았다. 그는 비탈길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고속버스를 타러 발검음을 옮겼다.
버스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미동도 없이 좌석에 앉아 있다. 그는 노인의 말을 알아 들었고, 또 제법 흥미까지 느꼈지만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지프스는 대체 어느 정도의 고통을 이겨낸 거야. 그는 창 밖을 바라본다. 세로로 선 건물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가고 있다. 그는 좌석의 경사를 조절하는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몸을 뒤로 뉘여본다. 수직. 아직인데. 더욱 목을 뉘인다. 아직. 이내 몸을 완전히 뒤로 젖혀 그의 몸은 수평이 되었다. 건물들이 그의 몸 위에 수직으로 서 있다. 그는 새삼 경이로운 기분이 든다. 그는 팔 뻗는 시늉을 해 본다. 지구 만한 돌을 밀어 올린다면. 그는 화들짝 놀라 좌석의 경사를 되돌렸다.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참고 견디라니. 아무리 가족들이 있어도 무리야.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그의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그는 다시 버튼을 눌러 천천히 몸을 뉘인다.
“여보, 이 정도면 되겠어?”
“아니, 뭐라는 거야. 그 보다 지금 어디야?”
그는 아주 조금 더 뒤로 눕는다.
“그럼 이 정도? 이 정도면 당신도 만족하겠지?”
아내는 못 알아 듣겠다는 듯 몇 번이고 되묻다가 이내 화를 낸다. 그는 울상이 되어 자신의 몸의 경사를 계속해서 조절해본다.
“뱃속의 아가, 이 정도면 괜찮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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