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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백로상진보람(인명여자고등학교)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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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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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World.”


야간자율학습, 통칭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라탄 중년의 아저씨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때 마침 귀에 꽃혀있던 이어폰에서 흘려 나온 노래 가사는 “~아버지를 이해할 때 넌 어른이 돼.”라는 부분이었다. 늘 즐겨듣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라는 하나의 요소를 통해 아빠가 오버랩 되었으니 말이다. 축 쳐진 어깨와 피로감에 젖은 표정. 생기없는 움직임은 마치 우리아빠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항상 보아왔던 바로 그 뒷모습이었던 것이다.
 문득 돌이켜 보니, 어렸을때의 나는 아빠를 굉장히 싫어하던 아이였다는 기억이 난다. 아빠가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했기에 엄마는 언제나 어린 나에게 아빠에 대한 험담과 푸념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때 짧은 생각으로 어찌나 아빠를 욕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생각이 변하게 된 이유는 한번의 대화를 통 해 이뤄진 비밀스러운 화해 덕분이다.
 부정적인 것으로 아빠에 대한 많은 것을 채우고 있던 나였지만 자라면서도 그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머리가 크고 보니 엄마가 했던 나쁜 말들이 모두 맞는 것도 아니고, 아빠가 그렇게 나쁜 행동을 저지르고 다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덕분이다. 결정적인 화해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가족간의 사랑과 화합을 중요하다 강조했던 어느 강연이었다. 그 강연을 듣게 됨으로 인해 어설프게 쌓였던 부정적인 가치관이 왕창 무너져버렸다. 밖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와 상대적으로 자식들과 있는 시간이 많은 엄마, 자식된 입장으로써 어느 쪽과 교류가 많으며, 어느 쪽의 생각을 닮아가겠냐는 질문에 엄마의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나였다. 아빠를 향한 섭섭함과 불평, 그런 많은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떠벌리니 그 어떤 자식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겠느냐고 묻는 강사의 질문은 정말로 그간의 내 편견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그때 이후로 나의 잘못된 태도와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후회한 나는 아버지와 이야기해보려 애를 썼다. 그러나 항상 어색함으로 이뤄지던 대화가 하루아침에 따스한 부녀간의 담소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조심스레 이뤄지던 그 노력들은 아빠가 미국으로 출장을 가시게 되며 끊어지고 말았다. 고3이 된 나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다. 한참동안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느새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진 대화는 아빠가 돌아오고 나서야 내 생각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집에 오자마자 식구들 야식을 사러가겠다고 집을 나서는 아빠의 모습에 잊고 있던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동행하자 아빠는 의아한 듯 싶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참으로 길고 어색한 침묵, 초밥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한 초밥과 치킨을 좋아하는 오?를 위한 치킨 한 마리를 손에 든 아빠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한창 입시문제로 고민하던 나는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대뜸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는 꿈이 뭐야?”
내 뜬금없는 질문에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꿈? 니들 대학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는 거.”
“그게 어떻게 꿈이야? 하고 싶었던 일이나 직업 같은 것 없어?.”
나의 퉁명스런 대꾸에 아빠는 처연히 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 것 잊었노라고.
아빠의 얼굴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괜시리 미안해 진 나는 일부러 엄마가 하는 것처럼 아빠를 향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투덜거렸다. 아빠는 여전히 그 얼굴을 하고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참 많은 고통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고충과 괴로움을 조금 이해해달라며 넉살좋게 웃는 아빠를 보자 다시 금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빠라는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물질만 가지고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게 니 아빠라고, 그런 푸념을 들은적이 있었다. 약간 낯간지러웠지만 또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 싶었기에 나는 조그맣게 질문을 했다.
“아빠는 아빠다운 일이 뭐라고 생각해?.”
“니들 공부시키려고 열심히 돈버는거?.”
아빠는 내 표정을 보더니 계면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빠가 해줬을 때 기뻐하는 건 그런 것 밖에 없잖아.”
나는 그말을 듣고 나서야 아빠의 말을 이해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우리를 위하고 있었던 아빠의 모습을 이해했다. 아빠는 그저 서툴렀던 것 뿐이라는 자그마한 진실을, 나는 그제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어리석었던 행동들 하나하나가 새삼스레 떠오름을 느끼고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보폭이 큰 아빠의 뒤를 따라가다가 낟몰게 아빠의 신발을 밟아버린 나는 화들짝 놀라 사과했다.
“아, 미안!”
아빠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 순간 튀어나온 사과의 한마디가 여태까지 응어리졌던 죄책감에 대한 사과로 느껴진 탓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아빠는 알지 못했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계속되어오던 나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사과를 건넸다.
집으로 향하며 이어진 그 침묵은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빠의 옆에 나란히 서서 빙그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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