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육 

정문구(경기대 국어국문)

 

  내장을 긁어내고 있었다. 누워있는 놈의 뱃속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채 온기가 가시지 않은 내장부위를 하나씩 제거하고 있었다. 사람의 그것과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일 폐와 창자, 방광 따위를 차례로 떼어낸 뒤 마지막으로 위를 들어냈다. 물컹물컹한 선홍색의 위. 손바닥으로 받쳐 든 그 위장 속에서 무언가가 미끄러지듯 흘러나오더니, 댕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발치에 떨어진 그것을 빤히 내려보았다. 표면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위장액과 피 때문일까. 언뜻 보고서는 그것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런 괴이쩍은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질펀하게 쏟아져 나온 내장더미 사이에서는 종종 예상치 못한 특이한 물건이 튀어나왔다. 활대처럼 휘어 있는 늑골 안쪽, 딱딱하게 경직된 근육질 속에 파묻혀 있던 이물의 등장은 바쁘게 움직이던 우리의 손길을 일순간 멈추게 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놈들은 자신의 소화기관이 녹여낼 수 없는 단단한 재질의 이물을 배설하거나 토해내는 대신 원형 그대로 제 속에 품는 쪽을 택했다. 동전이나 바늘, 단추 따위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물건이었고 드물게 칫솔이나 조그만 장난감 따위도 나왔다. 그런 것들을 뱃속에 숨긴 채 살아온 녀석들은 대개 건강 또한 좋지 못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하거나 유난히 야윈 놈들의 배를 갈라보면 예외 없이 이물이 튀어나왔다. 인간에게는 유용한 물건이, 놈들에게는 악성적인 종양 덩어리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이십 년이 넘었다는 김은 “사람 손을 많이 탄 놈들이라 그렇다”라고 했었다. 하나도 놀랄 것 없다고, 곧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 말처럼 나는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장찌꺼기 틈에 섞여 있는 누군가의 유실물을 태연하게 골라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 반투명한 점막에 둘러싸인 채 위벽에 달라붙어 있던 콘돔을 발견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처음 접하는 종류의 물건이어서인지 폐기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참 망설인 끝에 이물의 겉에 묻어 있는 점액질을 소매 자락으로 닦아내었다. 기껏해야 싸구려 장신구쯤으로만 짐작했던 그것의 정체는, 놀랍게도 어느 귀부인의 보석함에나 들어 있을 법한 브로치였다. 내장 속에 들어 있던 것이라 그런지 이상야릇한 악취가 풍겼지만, 그쪽 방면에 지식이 없는 내 눈에도 제법 값나가 보이는 물건이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몸체에 유색 보석이 몇 개나 박혀 있는 브로치. 뜻밖의 수확물을 손안에 쥔 채 나는 고민에 잠겼다. 고기는 냉동고로, 그 외의 부위는 쓰레기통으로 가져가는 것이 도살장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이런 금붙이를 처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일러준 적 없었다. 비록 뱃속에서 나온 것이라지만 내장과 같이 취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점심때 다 됐는데, 여기서 뭐해?” 브로치에 온통 정신을 팔고 있던 탓일까.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기척도 없이 다가온 김이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하냐니까.” 말소리와 함께 새어나온 그의 구취에는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자위행위를 들킨 아이처럼 어깨를 바싹 움츠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취기로 게슴츠레한 그의 눈빛이 넋 놓고 앉아 있던 나를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죄송해요, 이놈까지만 마무리하고 금방 갈게요.” 등 뒤로 브로치를 감추며 말했다. 다행히 김은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서두르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그는 등을 돌렸다. 그의 손에는 완벽하게 손질을 끝낸 콜리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뒷다리 끝에서, 묽은 핏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얼룩덜룩한 바닥 위에 새로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팽개쳐져 있던 칼을 도로 집어 든 뒤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아담한 덩치의 강아지 한 마리가 배를 활짝 열어놓은 비참한 꼴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쭈그려 앉았다. 브로치 탓에 마음이 심란했지만 다행히 작업은 마무리 과정만 남겨둔 상태였다. 날렵하게 칼집이 나 있는 놈의 목덜미에 슬며시 손을 갖다댔다. 올가미에 매달아 놓고 핏물을 빼낸 놈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근육과 관절 역시 밀랍인형처럼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나는 너덜너덜한 놈의 뱃가죽을 한 손으로 붙잡고 들어 올린 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과도로 갈비뼈 안쪽에 남아 있는 내장찌꺼기를 훑어내기 시작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피부에 스치는 내피의 감촉이 불쾌할 정도로 축축했다.  
  살점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부젓가락처럼 얇고 메마른 다리를 이리저리 젖히며 손질하다 보니 문득 놈의 숨통을 끊어놓았을 때가 떠올랐다. 나 같은 사람에게 개의 죽음을 보는 것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일이다. 퇴근할 무렵이면 내가 무슨 개를 잡았는지, 몇 마리를 잡았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조그만 개의 죽음은 유독 뇌리 속에 남았다.
  놈은 보름 전에 우리 도살장으로 실려 왔다. 비좁은 간이철창 속, 망아지만한 덩치의 다른 개들 사이에서 놈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숨어 있었다. 기민한 이미지를 주는 뾰족하고 큰 귀와, 연한 황갈색의 보드라운 털을 가진 치와와였다. 비록 거죽을 벗겨 내는 바람에 실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긴 했지만, 한창때는 귀염을 많이 받았을 듯한 놈이었다. 나는 놈을 바로 잡지 않았다. 한 손에 안기는 덩치의 치와와 종은 애완견으로서는 제격인지 모르겠지만, 도살장에서는 상품가치가 없는 계륵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며칠 더 살려두면서 살을 찌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신경 써서 만들어준 사료도 놈의 몸집을 찌우는 데는 효과가 없었다. 놈은 끼니마다 쓴 소태를 삼키듯 힘겹게 식사를 했고, 그렇게 먹은 음식조차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전부 토해내곤 했다. 날이 갈수록 살이 찌기는커녕 오히려 골반과 갈비가 앙상하게 도드라질 정도로 야위어가기만 했다. 더 기다리는 건 사료낭비라는 게 나를 포함한 도축업자들의 판단이었고 결국 오늘 아침, 나는 놈을 잡았다.
  개는 인간을 닮아 유독 생에 대해 미련이 많은 족속이다. 우리에서 끌려 나가는 순간이 자신에게는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놈들은 도축업자들의 억센 손길에 붙들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잠시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보겠다고 버둥거린다. 금방이라도 각혈할 듯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는 놈도 있고, 철창살을 앙 다문 채 이빨이 부러져 나갈 때까지 안간힘으로 버티는 놈도 있다. 참다못한 우리가 휘두른 몽둥이에 몇 대 두들겨 맞고 나서야, 놈들은 겨우 미련을 버린다. 그런데 뱃속에 품고 있던 브로치 탓이었을까. 치와와의 행태에는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내가 목줄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자, 놈은 기다렸다는 듯 순순히 이끌려 나와 내 팔에 안겼다. 완력으로 개를 제압하는데 익숙해져 있던 나는 놈의 낯선 반응에 당황했다. 종잇장처럼 얇은 몸피 밑으로 느껴지는 심장박동은 감지하지 힘들 정도로 희미했고,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어디에서도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하게 끔뻑거리는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놈이 이미 죽은 상태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놈은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날카로운 칼끝이 목덜미를 깊숙이 꿰뚫었을 때, 경련하듯 뒷다리를 푸들거렸을 뿐이었다. 나는 놈을 죽이는 내내 이미 죽은 개를 또 한 번 죽이는 듯한 찝찝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한낮 고깃덩어리 신세로 전락한 치와와의 시체를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껍데기만 남은 몸에선 거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놈의 존재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나는 비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바닥에 산산이 흩어져 있는 찌꺼기를 대충 쓸어 담은 뒤, 작업장 한구석에 서 있는 드럼통으로 가져갔다. 표면에 불그스름하게 녹이 슬어 있는 드럼통은 개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무덤이다. 그 안에는 우리 도축업자들에게 쓸모없는 부위들, 즉 내장이 들어 있다. 개들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관이지만 우리의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고기뿐이다. 끈적끈적한 기름기가 흐르고, 아무리 독한 향신료를 써도 지울 수 없는 지독한 누린내를 풍기는 개의 육질 말이다. 드럼통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뿌리째 뽑힌 안구와 끈끈한 곱을 흘리는 창자 따위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콧속을 파고드는 역한 냄새가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나는 옷소매로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치와와의 내장이 담긴 쓰레받기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푸드득. 단백질과 단백질이 서로 진득하게 들러붙는 소리와 함께, 잔해의 언덕은 조금 더 수북해졌다.

 
  종일 갇혀 일하는 우리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였다. 매일 수십 마리의 개가 죽어나가는 도살장 내부의 공기는 소나무 진액처럼 끈끈한 혈장을 머금고 있다. 도살이 멈추지 않으니 그 농도는 날이 갈수록 짙어져 간다. 한 번 들이쉴 때마다, 그 무색투명한 입자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검질기게 스며들곤 한다. 아마 우리 몸에서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몇 토막으로 나눈 고기를 파란색 김장봉투에 담아 냉동고에 쑤셔 넣은 뒤, 흘긋 철창 쪽을 바라보았다. 곧 복날이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놈들은 혀를 길게 빼놓은 채 장마철 빨래처럼 늘어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놈들의 괴로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도살장은 작업시간 동안 밖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굳건하게 닫아놓은 채로 일한다.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개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폐쇄된 도살장 건물 안에서 우리 도축업자들은 덜덜거리는 소음을 내는 고물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며 개를 잡는다. 나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훔쳐내며 도살장을 둘러보았다. 마감이 덜 되어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선 끊임없이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버려진 내장 더미에서는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이 풍경을 본다면 혹시 이곳이 지옥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현재 도살장에서 일하는 업자는 나를 포함해 모두 세 명이다. 김과 윤, 그리고 나까지. 이곳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일해 왔다는 김은 사장을 대신해 도살장의 모든 대소사를 관리한다. 그는 나와 윤이 한나절에 걸쳐 간신히 해내는 일을 고작 서너 시간 만에,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해치우는 사람이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도축업자로서 단련된 그는 세상의 모든 개를 걸어 다니는 고기쯤으로 본다. 지난 십 년간 거의 쉬지 않고 도축을 해왔다고 했으니, 여태껏 족히 수만 마리도 넘는 개를 잡았을 것이다. 개들은 그가 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숨소리를 한껏 죽이고 대가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한다. 윤과 나는 그런 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아직 신참티를 벗지 못한 도축업자들이다. 우리 셋은 하루에 적게는 이삼십 마리, 많게는 오륙십 마리의 개를 죽이고 정육한다. 그렇게 생산한 개고기는 시내의 보신탕 전문점과 개소주집 등에 팔려나간다.
  우리는 작업할 때 반드시 피를 본다. 다른 도살장들과 달리 약을 먹이거나 목을 조르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몸에 피가 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개의 피로 오염된 손을 휴지로 문질러 닦으며 도살장 한쪽의 휴게실로 향했다. 김과 윤은 이미 식사를 시작한 듯했다. 나는 버릇처럼 코를 킁킁거렸다. 비릿한 피 냄새에 섞여서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도축업자들이 적어도 일주일에 대여섯 번씩은 이용하는 단골 중국집, 풍림반점의 음식 냄새였다. 딱히 서비스가 좋다거나 구미를 당기는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곳은 도시에서 가장 음산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우리 도살장에 배달와주는 몇 안 되는 가게 중 한 곳이다. 인근의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우리 도살장의 주문을 꺼린다. 거리가 너무 멀다거나 배달원이 가게를 그만뒀다는 식의 조악한 핑계를 대가면서까지 말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오전 한나절 동안에만 열다섯 마리의 개를 도살한 김의 옷깃에는 핏자국이 얼룩처럼 튀어 있었다. 점점이 박혀 있는 선홍색의 핏자국은 오랫동안 햇볕을 못 받아 창백한 그의 피부색과 확연하게 대비되었다. 윤 역시 만만찮은 모습이었고. 금방 지옥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끔찍한 얼굴들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 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내 몫으로 남겨둔 듯한 자장면은 이미 퉁퉁 불어 있었다. 식욕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식사는 해야겠기에 그릇을 팽팽하게 감싸고 있는 비닐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묻어 있는 끈적끈적한 기름기 때문에 자꾸 미끄러졌다. 뜯어낸 비닐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버린 뒤, 슬쩍 다른 직원들의 모습을 훔쳐봤다. 김은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으면서도 고추기름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을 안주 삼아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잔도 없이, 연방 마른기침을 뱉으며 병째로 들이켰다. 나는 빠른 속도로 비워져 가는 소주병을 잠시 흘겨봤다.
  볼을 타고 흐른 땀방울이 그릇으로 떨어졌다. 나는 동료의 몸에서 풍기는 진한 피땀 냄새를 맡으며 젓가락으로 국수를 헤집었다. 찐득찐득한 떡처럼 변한 면발을 가닥가닥 흩어놓기는 쉽지 않았다. 속에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짐작할 수 없는 시커먼 빛깔의 자장면을 한 젓가락 집어 올리는데, 도무지 입 안에 넣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춘장의 달콤한 맛은 거의 느낄 수 없었고, 대신 시큼한 밀가루 향기가 얼얼한 입천장 밑을 감돌았다. 음식이 아닌 생고무를 씹는 듯 가슬가슬하고 질긴 면발. 오후 내내 개들과 씨름할 것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삼켜야 했다.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낀 나는 물을 들이켜 텁텁한 밀가루 덩어리를 간신히 식도 밑으로 내려 보냈다. 
  귓가에는 개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사람의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탁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윤이 거의 줄어들지 않은 음식그릇을 앞에 둔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개들이 수용된 철창 쪽을 향해 있었다. 그의 초점이 불분명한 눈동자는 언뜻 도살장에서 생활한 지 오래된 개의 눈과도 비슷해 보였다. 피로에 절어 있는 겉모습만 보면 족히 수십 마리도 더 잡은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오전이 다 가도록 단 한 마리밖에는 잡지 못했다. 그나마 그 한 마리조차도 혼자 힘으로 잡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늙고 병든 풍산개 한 마리를 붙잡고 몇 시간 동안이나 쩔쩔매던 것을 보다 못한 김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어떤 성과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래, 입맛이 없나?” 여느 때처럼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김이 손톱으로 이 사이를 쑤시며 윤에게 물었다. “예? 아, 예.” 넋을 놓고 있던 윤이 당황한 얼굴로 대꾸했다. 김은 새로 술 한 병을 더 따면서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먹어둬야, 일을 하지. 오늘치 작업량은 아직 절반도 못 채웠는데.” 윤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수그렸고, 김은 그런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정적이 불편해 머리를 긁적였다. “…한 술이라도 더 뜨지 그래?” 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괴로운 표정으로 볶음밥을 한두 숟가락 더 입 안에 넣는 척했지만, 결국 식은 볶음밥을 절반 이상 남겨둔 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는 축 늘어진 걸음걸이로 도살장 한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사료 수십 포대가 사람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그는 그중 가장 높이 올려져 있던 것을 힘겹게 끌어내린 뒤 시멘트 바닥 위에 내려놓고 밀봉을 뜯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진도.’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 만큼 많은 항생제로 범벅된, 그러나 빠른 속도로 체중을 늘리는 데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효과를 가진 사료였다. 그것은 동시에 개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음식이기도 했다.  
  개들은 도살장에 오고 처음 얼마간은 우리가 주는 사료를 잘 먹지 못한다. 인간의 손에 키워지면서 고급스러운 입맛을 가지게 된 놈들이기 때문이다. 사람 먹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애완동물용 음식의 맛에 익숙해져 있는 놈들은, 무엇을 주든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누렁이 잡견들과 달리 어린아이처럼 까다롭게 음식을 가린다. 자기가 사람이라도 된 양 착각하는 것이다. 놈들은 우리가 준 사료기가 불만족스럽다는 듯 주둥이로 그릇을 밀쳐놓곤 한다. 심지어는 본 척도 않고 외면하는 녀석도 있다. 그러나 철창 속에서 하루 이틀만 보내고 나면, 그렇게 시위하던 놈들도 결국은 고집을 꺾는다. 허기가 놈들에게 잡식동물의 본능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놈들도 자신이 언제 고상을 떨었느냐는 듯 그릇 속에 코를 처박고 게걸스럽게 사료를 처먹는다. 그렇게 도살장의 열악한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는 순간, 놈들은 때를 노리던 우리에게 비참하게 도살당한다.   
  윤은 이십 킬로그램이 넘는 사료포대를 허리 위로 들어올리기 위해 끙 소리를 내며 힘을 썼다. 힘에 부친 듯 두 팔로 포대를 떠받친 채 개의 침 찌꺼기가 말라붙어 있는 밥그릇에 사료를 조금씩 쏟아놓기 시작했다. 김은 그의 뒷모습을 아니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심사를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윤은 도살장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직원이었다. 일단 체격부터가 눈에 차지 않았다. 덩치가 크다고 꼭 일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부지깽이 같은 마른 몸으로 덩치 큰 개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그의 유약한 성격이었다. 착하다고 해야 할지 엄살이 심하다고 해야 할지. 항상 겁먹어 있는 듯한 인상인 윤의 얼굴은 죽은 개의 몸속에서 흘러나온 창자만 봐도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개를 잡다가도 구토기가 쏠리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피를 무서워하는 도축업자라니, 김은 한심하다는 듯 몇 번이나 혀를 찼었다.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결코 이 일을 할 수 없다. 그는 본업 대신 도살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갖은 잡일을 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하려는 듯했다. 때마다 개들을 위한 식사와 물을 배급하는 일은 물론이고, 개의 분비물로 더럽혀진 도살장 청소까지 혼자서 도맡아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다는 듯. 그러나 정작 개를 잡을 수 없다면, 그런 도축업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적어도 도살장에서만큼은, 그는 아무 쓸모없는 무능력한 인간이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허리가 뻐근해 왔다. 종일 격한 노동에 시달린 내 몸은 금방이라도 담요 속으로 녹아들 듯 피로했지만, 그와 반대로 정신만은 또렷했다. 나는 이불 속을 파고들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내가 도살일 중에 얻은 피로를 푸는 방법은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도축업자가 나처럼 조용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개를 죽이는 방법만큼이나 다양하다. 내가 경험한 동료 중에는 어렵게 번 돈을 모두 도박판에서 날리는 사람도 있었고, 언뜻 방언처럼 들리는 사주기도를 밤새도록 외며 자신의 업보를 속죄하는 사람도 있었다. 억눌린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풀지 않으면 제대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최고참인 김은 밤마다 싸구려 창녀를 사는 것으로 쌓인 욕구를 분출한다. 여인숙의 사장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네면, 그녀가 어디에선가 여자를 불러 방에 넣어준다고 했다. 낮에는 술을 마시고, 밤에는 여자를 안는 것이다. 알코올과 매춘은 그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링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해가면서까지 그가 도살장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축업자가 된 것은 작년 이 무렵의 일이다. 택지와 동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는 도살장 건물을 처음 구경했을 때, 그 음산함에 압도당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당시의 내 초라한 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주 젊은 나이였지만,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뼈가 물렁물렁해진 중노인과 다름없는 처지였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를 받아주는 곳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뿐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저급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3개월가량 일한 도로포장 일을 마지막으로 나는 우연히 그 존재를 알게 된 도살장에 취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축업자는, 특히 개를 잡는 도축업자는 그럴 듯한 학력이나 자격증 따위를 요구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형식적인 면접 한 번을 거치자마자 나는 곧바로 취직될 수 있었다. 사장은 나의 신변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으니, 그저 개만 잘 잡아주면 된다고 했다. 내 묵묵함과 어두워 보이는 인상에 오히려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빠른 속도로 도살장의 험한 일에 적응했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갓 도살한 개의 시체를 오래된 연인의 몸을 주무를 때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자, 종잇장처럼 얇은 베니어판 벽 너머로부터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 저 짓이군, 나는 담요를 얼굴 위까지 끌어당겨 귀를 막았다. 거의 매일 들으면서도 적응이 되지 않는 신음소리. 김은 벽을 맞대고 있는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목청을 높여갔다. 무심해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귀청을 파고드는 앓는 소리는 점점 선명해졌다. 머릿속에 중년 남녀 한 쌍이 벌거벗은 채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은 거친 음성으로 연방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며 창녀의 몸을 탐하고 있을 것이고, 늙은 창녀는 그에 반응하며 과장 섞인 교성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서서히 밑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늙은 창녀의 허물어진 몸매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 누우며 치솟는 정욕을 달랬다. 
  윤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몸을 뒤척거렸다. “용재 씨, 자요?”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말투로, 그가 나를 불렀다. 나는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이어 스르륵 이불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기 좀 했으면 좋겠는데. 좀 일어나 봐요.” 그의 음성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쉽게 물러설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애써 듣지 못한 척 돌아누웠다.
  늦은 밤중에 이렇게 칭얼대는 것은 윤의 이상한 버릇이었다. 자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서는, 따지고 보면 아무 사이도 아닌 내게 자기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식이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몇 번 받아줬지만, 몇 달 뒤부터는 밤마다 되풀이되는 그의 부름에 무시로 일관했다. 한 번 받아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의지하지 마세요, 몇 번이나 이렇게 쏘아붙이고 싶었는지 몰랐다. 
  무겁게 어둠이 가라앉은 방 안에서 그의 숨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이 바늘처럼 내 피부를 찔러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를 흔들어 깨우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참 지나도록 내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주머니 속을 뒤적여 브로치를 찾았다. 다행히 치와와의 뱃속에서 얻은 브로치는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브로치를 손안에 꼭 감싸 쥐었다. 금은방에 가져가면 어느 정도의 값을 받을 수 있을까. 내게 이런 재수가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보석만 떼서 팔아도 내 보름치 보수 정도는 될 듯했다. 나는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한없이 브로치를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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