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최영정(단국대학교 문예창착학과)

 

1. 치자 꽃물 같은 황토물이 삽 끝으로 달달하게 물들어 갈 즈음이면 긴 하품처럼 늘어지는 전깃줄 오선지 삼아 음표가 되어 지저귀던 작은 새들이며, 물푸레나무 가지 끝에 앉아 가쁜 숨 골라내던 하늘 잠자리의 물집 같던 말랑한 눈알에도, 긴 단 잠이 녹아들고, 삶의 해묵은 빗장 풀어헤치고 사람들도 잠이 드는데, 그럼 달도 스르륵 외눈을 떠, 그림자 같은 몽유도원도를 환하게 그린다.

2. 빗금 창 넘어 적막하고 환한 달빛이 수척한 그녀 곁에 다가서며 한 무리 고요한 달무리로 그녀의 야윈 허리를 휘감고선, 흐릿한 밑그림부터 다져가던 연둣빛의 몽유도원도. 늘 환자복에 맨발이던 그녀가 자유롭게 허공마다 나지막한 숨 흩뿌리며 한가로이 그곳을 거닐 때면 난 한갓 풀벌레처럼 그녀 결에 붙어 숨죽인 채 두 눈이 새벽보다 먼저 젖는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