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설 작가의『나쁜 피』는 허름한 도시인 천변을 배경으로 하층민의 고단한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동네 사내들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엄마를 보고 자란 주인공 ‘화숙’.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적인 외삼촌을 증오해, 외삼촌의 딸인 ‘수연’에게 대신 복수하는 비뚤어진 인물이다. 화숙과 그의 주변 사람들은 서로 상처받고 상처주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결국 소설은 폭력적인 인물들을 배제한 채 남은 이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화해의 장으로서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이전 숙대신보 1190호 책면에서는 신인작가 김이설 씨와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나쁜 피』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궁핍하고 지독한 하층민의 삶,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에게 상처받는 여성, 서로 상처를 주는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김 작가에게 소설『나쁜 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줄거리가 충격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또 어떤 계기로 이런 소설을 구상하게 됐나
‘살아가는 것은 버티는 거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 삶을 살다보면 참을 수 없고 버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극한적인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생각하다 보니까 이러한 소설이 나왔다.『나쁜 피』를 소위 ‘독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주목받기 위해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고통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와 과정을 모두 담아내려다 보니 더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이다.


-소설의 장면 중, 독자들에게 이 부문은 기억해달라는 장면이 있다면
‘진순이네 집에서 함께 김장하는 하루 반나절’에 애착이 간다.『나쁜 피』대부분의 장면이 강하고 잔인한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결핍이 돼있고, 때문에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바랬던 화숙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화숙 엄마의 장례식 날에 화숙이 초경을 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품 속에서 소녀가 초경을 하는 장면을 자주 이용한다. 피는 가족과의 운명을 나타냄과 동시에 여자의 운명을 상징한다. 화숙이 초경을 한 날은 여성으로서의 화숙이 고단한 인생을 시작한 날이다. 나약하고 죽도록 미워했던 엄마였지만, 그 엄마가 죽음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화숙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불운한 여성이 죽음과 동시에 또 다른 불운한 여성의 인생의 시작. 이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일부 독자는 오히려 화숙보다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수연에게 더 연민을 느꼈다고 한다. 수연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수연은 맞는 것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폭력을 오랫동안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대의 폭력에 포기하게 되고 반항할 의지가 없어진다고 하더라. 그런 정보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실 화숙에게는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수연이 탄생한 것이다. 수연은 측은하고 불쌍한 인물이지만 주인공이 화숙이라 그런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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