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의 소녀는 싸늘한 시신이 돼 있었다.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목숨을 빼앗긴 아이.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은 분노의 화살이 돼 납치 ․ 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길태에게 향하고 있다.

흉악범 김 씨의 전과는 상상 이상이다. 1997년 9살의 여자 아이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시작으로 2001년과 2010년, 두 명의 30대 여성을 감금, 성폭행한 전과를 가지고 있다. 교도소에서 출소하기만 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그 간의 행적으로 미뤄봤을 때 사실 이번 참사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출소 이후 김기태의 행적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동네 사람들은 그의 흉악한 과거에 대해 경고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소녀는 목숨을 잃게 됐다. 국회에서는 뒤늦게 전자 팔찌에 대한 법률을 강화하고, 성폭행범의 신상 공개에 대한 규정을 완화해 그들의 위험성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성폭행범을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킬 것을 주장하는 등 성폭행범의 출소 후 규제에 관한 법안을 앞 다투며 내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 하나. ‘지금 이 상황이랑 비슷한 경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조두순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조두순 사건은 57세의 조두순이 9살의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해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던 사건이었다. 여론은 연일 이 사건에 관련된 소식을 떠들어 댔으며, 정치권에서는 아동 성폭행범에 관련된 처벌과 출소 후 규제에 관한 법률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성폭행범의 처벌과 규제에 관련해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 같았다. 제 2의 나영이가 나오는 일만은 막자며 매체 안팍에서 열띤 토론을 하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화제가 된지 채 6개월도 되기 전에 조두순 사건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져갔다. 문제는 그에 따라 아동 성폭행범에 관련해 제기된 수많은 법안들이 함께 잊혀지게 됐다는 점이다. 20개에 달하는 법안 중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만이 국회를 통과했을 뿐, 그 밖의 법안들은 국회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명의 성폭행 희생자가 생겨난 것이다.

조두순 사건이 2009년 대한민국을 달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영이는 잊혀졌고, 성폭행범 처벌 강화와 관련된 법안도 흐지부지 처리돼 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적절한 법안의 통과와 이의 철저한 시행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도 조두순 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끝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언제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의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은 부디 모든 이들이 안심하고 살아가는 데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결말을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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