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경험은 언제나 신비롭다. 2007년 3월 대학에 처음 발을 디디는 1학년들인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고등학교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희열로 그 처음은 낭만적이고 해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에 첫 밤을 보낼 때처럼, 처음으로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산더미만큼 빌려 밤을 세워가며 보고서를 쓸 때처럼, 처음으로 누구를 사랑하게 됐을 때의 애틋한 마음처럼, 우리는 그 처음의 마법에 쉽게 빠지게 된다.


‘처음처럼’이란 말은 새로운 경험이 주는 경이로움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상태에서 이미 멀어졌다는 안타까운 고백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상태를 다시 경험하고자하는 간절한 욕망의 표출이기도 하다. 또한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매력, 새로움, 흥분으로 인해 그 처음은 정치인 혹은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설교하거나, 호소해야하는 부담을 가진 이들이 애용하는 ‘처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서’라는 단골 구호에 등장하거나, 심지어는 처음이 연상시키는 고혹함과 매력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듯한 상품 광고에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처음처럼’이라는 말은 오히려 어색하고, 나약하며 태만했던 과거의 ‘처음’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대학 1학년 처음 대학에 입학해 자유와 해방감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부평초(浮萍草)처럼 허송세월하며 그 처음을 보냈던 학생들에게, 원하지 않는 대학, 원하지 않는 과에 입학해 갈등과 고민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그 처음을 보냈던 학생들에게, 혹은 처음에 그릇된 길로 빠져 지성과 열정을 소모적으로 낭비했던 학생들에게 그 과거의 처음은, 비록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수많은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가리고 싶은 어두운 과거의 한 시점일 뿐이다.


나의 ‘처음’이란 과연 어떠했는가를 기억해 보면, 그 처음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도 해방적이지도 않았다. 막연한 기억 속에 자리한 대학 1학년 그 처음의 기억에는 환희와 해방의 빛보다는 혼동과 혼란, 미숙함의 그림자가 훨씬 더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당시의 처음은 나만의 독특한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민과 갈등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던 대학 생활의 첫 학기를 그때처럼, 그 처음처럼 보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처음의 과오(過誤)를 기억해 내고, 자기성찰 속에서 처음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는 성숙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


‘처음처럼’은 현재가 아니라, 항상 과거의 처음이라는 시점을 전제로 한다고 했을 때, 항상 우리가 회상하게 되는 것은 상상력으로 미화된 처음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과거의 처음처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항상 나의 처음으로 대하며 처음처럼 산다면, 우리가 회고할 수 있는 그 처음은 더 이상 회피하고 싶은 처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후회 없는 ‘처음처럼’을 외칠 수 있는 그 처음을 만들자. 내 삶에 활력과 생기를 더해 줄 그 처음의 순간이 바로 여러분 앞에 높여있다. 그것이 바로 처음처럼의 전제 조건이며, 그 처음은 바로 지금이다!

전세재 교수(영어영문학부 영어영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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